시민이 만드는 혁신적 사회 변화, 우리는 그것을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라고 부릅니다. 시민의 힘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아프게 경험한 우리에게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지금부터 그 쉽지 않은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낡은 사고와 행동방식을 바꾸려면 광범위하고 복잡한 사회적 학습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체를 사회 기술적 실험이 진행되는 거대한 실험실로 여겨야 한다.”

– 사회 혁신 디자이너 에치오 만치니

 

‘드 꺼블(de Ceuvel)’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에 조성된 사회 혁신 공동체이자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려는 거대한 실험실, 즉 리빙랩(Living Lab)이다(‘리빙랩’, 대체 뭐길래?). 유럽에서 가장 독특하고도 혁신적인 도시 진화 프로젝트로 꼽히는 드 꺼블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에 놓인 북해에서 북해운하를 따라 약 30km를 들어가면 네덜란드 북부의 오래된 부두에 닿는다. 1920년 포할딩(Volharding) 조선소가 세워진 뒤로 이곳에선 무려 80년간 배가 만들어졌다. 1972년 조선소가 꺼블 사에 인수되자 사람들은 이곳을 ‘꺼블-포할딩’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로 1,250㎡ 너비의 아담한 땅은 10년 넘게 버려지다시피 했다. 암스테르담 시는 고민 끝에 이 땅을 시민에게 내주기로 했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 그리고 2012년 공모를 거쳐 ‘스페이스&매터스(Space&matter)’를 비롯한 일군의 건축가 그룹이 이 땅을 넘겨받았다.

 

“우리의 도전은 쓰레기와 에너지 그리고 사람의 흐름을 순환 도시 모델로 연결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책임을 맡은 피터(Pieter)의 말이다. 이들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곳에 패기 넘치는 사회 혁신가들을 이곳에 불러 모아 더 오래 가는 도시, 생태 친화적 순환 도시를 세우기로 마음먹는다. 자원과 에너지가 허투루 버려지지 않는 미래 도시, 순환적 삶으로의 전환을 향한 개척의 땅이자 상징이 되길 바랐다.

 

시는 이들에게 25만 유로(약 3억2000만 원)를 대줬고 여기에 더해 은행에서 20만 유로(약 2억6000만 원)를 빌릴 수 있도록 보증도 섰다. 2014년 2년여의 공사 끝에 ‘드 꺼블’이 문을 열었다. 17개의 하우스 보트를 말끔히 개조해 곳곳으로 옮겨온 사무공간과 공연장, 한 켠에 넓게 지어진 카페 등이 버려진 땅을 되살렸다. 무엇보다 자원과 에너지와 사람이 순환하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같은 해 10월, ‘드 꺼블’은 “마치 유토피아를 보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는 찬사와 함께 네덜란드의 공공 디자인 상인 ‘프레임 퍼블릭 어워드(Frame Public Award)’를 수상했다.

 

초기 입주자들은 ‘단 돈 1유로에 마음에 드는 배를 가질 수 있다’는 광고로 모았다. 많은 이들이 몰렸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꼼꼼히 따져 입주자를 뽑았다. 지금은 공간을 빌리려면 1년에 1㎡ 당 65유로(8만 5,000원)가 든다. 암스테르담에서 비슷한 공간을 빌리려면 더 많은 비용을 달마다 내야 하니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리빙랩

 

이 곳에선 흙 한 톨, 물 한 방울, 햇볕 한 줌도 그대로 버려지는 일이 없다. 곳곳에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려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공유되고 실험된다. 이곳을 ‘클린테크 놀이터(Cleantech Playground)’라고 부르는 이유다.

 

80년간 조선소로 쓰인 탓에 토양이 심하게 오염돼있었지만 퍼내지 않고 ‘식물을 이용한 토양 정화(Phytoremediation)’를 시도하기로 했다. 오염된 땅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나무 길을 올리고, 그 아래 오염 정화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식물들을 빼곡히 심었다.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흙은 ‘정화 공원’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약속했던 10년이 지나면 훨씬 더 깨끗한 곳으로 거듭날 것이다.

 

배설물은 퇴비로 쓴다. 배들마다 ‘퇴비 화장실’을 갖추도록 했다. 물을 쓰지 않는 화장실로, 마른 퇴비를 만들어낸다. 소변에서 인산염을 뽑아내 비료를 만들기도 한다. 퇴비는 병원균이나 잔류 약품, 금속 성분이 있는지를 검사한 뒤 온실로 보낸다. 온실에선 카페에서 쓸 채소와 허브를 길러낸다.

 

‘수중 생태계 온실(Aquaponics Greenhouse)’도 있다. 물고기 양식과 수경 재배가 결합된 순환 생태계로, 물고기 배설물은 식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쓰이고 식물은 물을 정화하는 자연 필터 기능을 맡는다.

 

주방에서 쓴 물은 ‘염생식물 필터(Helophyte filters)’로 정화한다. 모래와 자갈, 조개껍질 등으로 층을 이룬 필터가 고체 오염물을 걸러내고, 특수한 식물들이 질소나 인과 같은 유기물을 먹어치운다. 필터를 거친 깨끗한 물은 그대로 땅으로 흘려보낸다.

 

필요한 전력은 태양 에너지에서 얻는다. 배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을 올렸다. 150개가 넘는 패널에서 해마다 3만6000KWh의 전력을 얻고 있고, 부족한 에너지는 친환경 에너지 업체로부터 공급 받는다. 또 배마다 공기를 덥히는 난방펌프와 열 교환기를 갖추고 배에서 빠져나가는 따뜻한 공기의 60%를 다시 배 안으로 끌어 들인다. 이런 기술들로 가스를 연결하지 않고도 난방을 해결하고 있다.

 

건물은 물론이고 벤치 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카페 드 꺼블’은 오래된 건물과 배의 기둥으로 지었다. ‘로직 워크(Logic Work)’는 네덜란드 곳곳에서 가져온 건축 자재와 이곳에 버려진 나무판으로 업사이클링 가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도시가 기술로만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매달 세 번째 수요일에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들과 함께 곳곳을 둘러보며 그린테크 기술을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네덜란드 최초의 블록체인 가상화폐 실험, 줄리엣

 

2017년 9월부터는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화폐(energy token)’를 도입했다. 개인과 공동체가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 에너지를 더 쉽게 관리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가상화폐다. 에너지 단위인 줄(Joule)에서 이름을 따와 ‘줄리엣(Jouliette)’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느 가상화폐들이 채굴에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것과 달리 줄리엣은 여분의 태양 에너지로 생성된다.

 

스마트 에너지 기업 스펙트럴(Spectral)과 최대 전기 그리드 운영사 알리안더(Alliander)는 줄리엣을 선보일 첫 번째 무대로 드 꺼블을 골랐다.

 

“줄리엣과 폭넓은 어플리케이션은 지역적이고 순환적인, 자원에 기반을 둔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상징한다.”

 

스펙트럴 CEO 필립(Philip)의 말이다. 중앙집중화 된 외부 송전망으로부터 독립적인 이곳의 스마트 그리드가 “어떤 제약도 없이, 시장의 걸림돌을 피하면서 에너지를 교환하는” 새로운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입주자들은 태양광 패널로 얻은 에너지 가운데 쓰고 남은 것들을 P2P(개인 간) 거래로 팔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에너지를 사올 수도 있고, 카페 드 꺼블에서 음료나 음식을 살 수도 있다. 남는 에너지를 전기 공급업체에 되파는 대신 지역 안에서 쓰도록 함으로써 재생 에너지 생산을 촉진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에너지 전환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타임 뱅킹(Time Banking, 재능이나 복지 서비스를 시간으로 환산해 교환하는 것)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를 비롯한 더 많은 곳에 줄리엣을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나아가 머신러닝 기술로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어느 정도의 재생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을지도 예측하고, 이를 네덜란드 전역으로 확대해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멀기만 한 도시 실험

 

드 꺼블은 지난해인 2017년 네덜란드에서 가장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주어지는 상인 ‘Duurzame Dinsdag(지속가능한 화요일)’ 상을 수상했다.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나온 이들의 여정은 순항 중이다. 앞으로 5년 뒤 이들이 어떤 미래 도시에 가 닿을지 궁금하다.

 

이들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6년부터 오염된 흙에서 스스로 자라난 식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이들의 정화 능력을 검증하고 있다. 더 많은 식물이 번성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는 유기농 식품 기업인 오딘(Odin)과 손잡고 양봉도 시작했다.

 

2015년 드 꺼블 인근의 이해관계자들은 모든 산업 지역에 순환적 건설의 원칙을 적용할 것을 합의했다. 또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순환적 삶의 원칙을 구현한 새로운 공동체가 건설될 예정이고, 이곳에서 새롭게 얻은 자원 재활용 기술로 새로운 건물도 지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드 꺼블의 실험으로 암스테르담 시는 다른 도시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와 정보, 기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도시들이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또 (정부는) 실험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해야 한다.”

 

Metabolic(대사 연구소) 대표 글라덱의 말이다. 사실 드 꺼블의 구상엔 불법적인 요소도 많았다. 하수 시스템과 가스를 연결하지 않은 것부터가 법 위반이다. 또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려면 복잡하고 값비싼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메타볼릭만 실험적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10년씩 자유로운 환경에서 실험을 이어가는 게 가능했을까. 시민의 참여 공간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겨우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무엇보다 공공과 시민,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탓이 크다. 그러나 신뢰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께 만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에치오 만치니 교수는 앞서 인터뷰에서 “미래에는 이런 실험적 접근이 ‘일상적’ 방식이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부디 우리도 너무 늦지 않게 그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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