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시라면 모름지기 청년이 머물고 싶은 도시여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수도권 밖에 청년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를 찾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이 꼭 (청년들에게) 좋은 도시라고 할 수도 없다. 가장 많은 청년들이 몰려 사는 서울은 전국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이기도 하다. 행정안전부는 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은 도시, 이른바 ‘청년마을’을 만드는 사업을 해왔다. 길게 보면 올해로 벌써 5년째, 지난 5월 청년마을로 뽑힌 12곳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 모두 27개의 청년마을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행안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기자말]

통계청이 지난 5월 26일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오는 2024년에 1000만 명(2020년 815만 명)을 넘어선 뒤 2050년이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40.1%(2020년 15.7%)에 달하게 된다. 거꾸로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72.1%에서 2050년 51.1%로 21.0%포인트나 줄어든다. 출산율이 크게 늘지 않는 한 이 시나리오를 뒤집을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건(2021년 0.81명) 청년들이 지나치게 서울·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탓이다. 날마다 경쟁에 치이며 살아가는 서울·수도권 청년들도 그렇지만 친구들이 모두 떠난 수도권 밖 청년들이라고 마음 편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리 없다.

지난해 8월 13일 감사원은 10년 넘게 이어진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인구 구조 변화 대응 실태를 감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저출산 문제는 청년층의 사회적 이동, 수도권 집중 현상과 관련이 있었다”라고 꼬집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기존 대응 방식을 넘어 지역 간 인구 불균형 문제까지 다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 그러니까 수도권으로 몰리는 흐름을 다시 밖으로 돌려세우지 못하면 아무리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닦달해 봐야 효과가 없을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청년마을 만들기는 아주 의미 있는 시도다.

청년마을의 뿌리 목포 ‘괜찮아마을’

목포 괜찮아마을이 없었다면 청년마을도 없었다. 2018년 행정안전부(사회혁신추진단)는 인구가 줄면서 오랫동안 버려지다시피 한 건물들의 쓰임새를 찾아 되살리자는 취지로 ‘시민 주도 공간활성화’ 사업을 벌였다. 지자체나 민간이 가진 빈 건물을 되살릴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면 5~7억 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다. 여기에 ‘공장공장’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박명호와 홍동우라는 패기 넘치는 두 청년이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혔다.

둘은 ‘우진장’이라는 목포항 선창가에 자리한 40여 년 된 여관 건물을 비롯해 비어있던 몇몇 건물을 빌려 도시 삶에 지친 청년들이 잠시 바다가 보이는 목포 원도심에 머물며 인생의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괜찮아마을’이었다.

‘지치고 마음이 아픈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와 꿈을 발견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현실이 되는 작은 마을을 만듭니다.’

2018년 여름, 6주간 괜찮아마을에 머물 청년 30명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127명이 몰렸다. 그렇게 2018년 한 해 동안 두 번에 걸쳐 60명이 세상 하나뿐인 마을에서 한 달 반을 살았다. 이들은 같이 밥을 해 먹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또 응원해주었다. 목포의 산과 바다, 가까운 섬을 여행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고, 동네에 버려진 공간들을 둘러보면서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지금껏 삶에 쫓기느라 시도해 본 적도 없는 새로운 일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한 달 반의 마을살이가 끝나고도 몇몇은 목포를 떠나지 않았다. 작은 공간을 빌려 목포에 없던 채식 식당을 차린 이도 있고,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로 취직한 이도 있다. 목포를 떠났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돌아와 ‘아주심기’에 들어간 셰프도 있다. 마을이 문을 연 지 2년쯤 지난 2020년 5월 기준으로 길게 또는 짧게 마을에 머물고 있는 주민은 모두 32명에 달했고, 이들이 운영하는 공간은 코워킹스페이스와 공유주방을 갖춘 ‘반짝반짝 1번지’를 비롯해 7곳으로 늘어 있었다.

홍동우 대표는 그해 5월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이곳 목포에서 처음 찾았던 식당의 딸이었다. 박명호 대표도 올해 3월, 잠시 괜찮아마을에 머물렀던 한 참가자와 결혼했다. 지금도 청년들은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 최근 18기 12명이 활동을 마무리했고, 곧 19기가 또 마을을 찾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괜찮아마을 사람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란 이곳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2018년 행안부 지원이 끝난 이듬해부터 다시 2년간 서울시로부터 해마다 약 1억 원 안팎의 지원을 받으며 3년을 살아 냈지만 지원은 거기까지였다. 이 3년 동안에도 운영비는 늘 모자라 다른 용역으로 돈을 벌어 운영비를 보태야 했다고 한다.

“언제까지 지원에 기댈 수 없으니 자기 돈을 내고라도 오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용과 기간을 조금씩 조정해가며, 적절한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홍동우 대표)

스스로 설 준비는 차분히 해나갔다. 서울시 지원을 받던 2019년 3기부터 조금씩이라도 참가비를 받았고, 4기부터는 기간과 비용을 함께 조절해갔다. 2박 3일부터, 4박 5일, 일주일, 또 한 달 등으로 기간을 조정하며 비용도 그에 맞춰나갔다.

‘그냥 한 번 (로컬에서) 살아보자’는 제안을 넘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구매 요소를 찾고자 빈집 재생, 독립출판 등의 주제를 내걸고 사람들을 모아보기도 했다. 가령, 책을 쓰려는 (예비) 작가들이 한 달에 200만 원을 내면 집필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그렇게 완성된 원고로 책까지 내주는 프로그램도 시도했다.

결과물도, 반응도 좋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수익을 남기진 못했다. 지금은 4박 5일을 머무는 데 65만 원을 받고 있는데, 운영비에 운영자들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아직 빠듯하다. 별수 없이 크고 작은 용역에 매달려야 한다.

서울시 지원도 끝나가던 2020년 말, 이들은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아 직원의 3분의 1을 내보내야 했다. 최근엔 다시 1년여의 준비를 거쳐 ‘괜찮아마을’ 법인을 따로 떼어냈다. 돈을 쓰는 작은 조직을 떼어내 나머지 큰 조직(공장공장)은 돈 버는 일에 힘을 쏟을 수 있게 한 것.

작은 조직인 괜찮아마을도 올해 안에 스스로 서는 게 목표다. 지난 4년 동안 어렵게 일군 여러 가게와 공간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버틸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외국인도 찾는 글로벌 빌리지로 뻗어나가겠다는 포부다. 멀리 영국의 BBC를 비롯한 여러 외신들도 취재를 왔던 만큼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다면 벌써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최근 다시 찾은 우진장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박명호 대표가 지난해 투자자를 모아 우진장을 사들인 뒤 쉼과 일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바꿔나가고 있다. 6월이면 새롭게 문을 열게 될 우진장에는 모두 11개의 방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마을에 오래 머물려는 청년들에겐 여전히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낡고 오래된 빈집들이 많다고는 해도 아직 큰돈을 들여 집을 고칠 만큼 수요가 뚜렷하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공장공장 같은 청년들이 도맡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부동산 가치가 올라갈 것이란 기대도 없으니 투자를 끌어내기도 어렵다. 박명호 대표도 반짝반짝 1번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지 못해 차로 15분이나 걸리는 곳에 신접살림을 차려야 했다. 다행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목포에 매입임대주택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느새 5년째를 맞은 이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청년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청년이다. 마을에 사는 청년들이 행복한 게 중요하다. 이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게, 쫓기듯 실적 압박을 느끼지 않게 해주었으면 한다. 요즘 표현으로 너드(nerd)하다고 하는데,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청년들의 소신 있고 주체적인 문화를 믿고 지지해줘야 한다.” (홍동우 대표)

“진짜 성공한 사례, 또는 브랜드가 이 시장에 나와야 한다. 어중간하거나 말만 앞서는 것들 말고, 누가 어느 면으로 봐도 성공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례가 아직 없다. 그러려면 임팩트 투자도 같이 움직여야 하고, 공공(정부·지자체)도 기반 시설을 확보하고 제공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공공은 사업 기획부터 운영까지 직접 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러기보다는 민간이 뜻을 펼칠 수 있게 시스템과 자원을 아낌없이 제공해야 한다. 지금처럼 민간이 하려는 모든 일들이 공공의 관리 감독 안에 머물러선 안 된다.” (박명호 대표)

박 대표는 전국적 연대가 절실하다고도 했다. 인구 3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로컬 도시에서는 오래도록 지속되는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게 그가 5년 만에 내린 결론이다. 전국적 연대로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줄 때라야 “어쩌면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했다.

청년마을 1기, 서천군 한산면 ‘삶기술학교’

괜찮아마을이 청년마을이라는 아름드리 나무의 뿌리라면, 삶기술학교는 땅에서부터 위로 곧게 뻗어 자란 단단한 줄기다. 괜찮아마을이 뜻밖의 성공을 거두자 행안부는 이듬해인 2019년 ‘청년들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사업을 내놓았다. 로컬을 되살리려면 ‘공간’보다 ‘청년’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총사업비는 9억 원으로, 괜찮아마을에 들어간 돈보다 더 많았다.

이 대담하고도 낯선 사업에 충청남도를 무대로 활동하던 IT소셜벤처 자이엔트(대표 김정혁)가 ‘전통 문화 기반 스타트업 플랫폼’ 프로젝트로 뽑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한산 모시와 소곡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려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들은 수익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청년들이 마을에 모인다고 해도 오래 갈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첫해엔 자립 공동체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슬로우테크 손기술, 오랫동안 축적된 삶의 기술을 배우고 거기에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 역량을 더해 마을 주민들과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김정혁 대표)

서천군 한산면의 작은 마을인 지현리에 그렇게 ‘삶기술학교’가 태어났다. 노인들만 살던 조용한 동네에 모인 청년들은 버려진 빈집을 고쳐 살면서 한산 모시와 소곡주를 비롯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실험들을 이어왔다.

이 마을에선 청년들 십여 명을 앉혀놓고 중요무형문화재 한산모시짜기 국가기능 보유자가 손수 모시째기를 가르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아직 서툰 삶기술이지만 청년들은 직접 함께 지낼 집을 손보고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입을 삶복도 함께 지어 입었다.

마을 어른들도 낯선 청년들을 반겼다. 청년들이 살 곳과 활동 공간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은 쓰지 않던 집과 가게를 내주면서 뭐든 해 보라고 했다. 삶기술학교 청년들의 아지트인 ‘아트스테이 노란달팽이’도 어느 주민이 5년간 그냥 쓰라고 내준 곳이다. 이 마을에서 무려 100년이나 이어져 온 대장간 한켠도 메이커스페이스로 탈바꿈했다. 대장간 명인이 청년들을 믿고 기꺼이 공간을 내줬다. 이곳에선 버려진 자동차 시트천과 한산 모시로 업사이클링 가방을 만들어낸다.

달팽이하우스, 스테이 허송세월 등은 비어 있던 집들을 청년들이 살만한 공간으로 되살려내 살고 있는 곳들이다. 그렇게 오래된 다방을 코워킹스페이스로, 식당을 유기 동물 보호 카페로, 인쇄소를 독립책방이자 사진관으로 바꿔낸 공간들이 10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커뮤니티호텔H다. 모시를 사러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의 쉼터였던 서광장여관을 세련된 레지던스이자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되살려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2019년 행안부 지원에 이어 이듬해엔 충남도와 서천군이 각 2억 원씩 모두 4억 원을 지원했고, 3년째인 2021년에는 그 절반인 2억 원을 지원했다. 삶기술학교도 2년째엔 ‘경제 자립 공동체’를 목표로 내세우고 ‘자신만의 삶기술로 삶을 실험하고, 창업을 해보고 싶은 청년’을 모으는 데 조금 더 무게를 두었다. 스스로 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마을을 떠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소멸 위험 지역에서 ‘머물고 싶은 마을’로 거듭난 일본의 가미야마도 2008년 “일감을 가진 사람, 청년 이주를 우선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세웠다. 한때 고령화율이 무려 48%에 달했던 이 깊은 산 속 작은 마을엔 그 뒤로 8년간 91세대 161명이 넘는 이들이 뿌리를 내렸다.

2년째이던 2020년 삶기술학교에 모인 청년들은 겨우 한 달여 만에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주민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팀은 소곡주 지게미로 빵을 만들겠다고 했고, 또 다른 팀은 소곡주 빈병을 모아 유리 공예품을 만들겠다고 했다. 마을 청년들에게 업사이클링 건축 시공을 가르쳐 함께 낡은 건물들을 되살리겠다는 팀도 있었다. 이날 모두 15개의 창업 프로젝트가 쏟아졌고 심사를 거쳐 팀마다 최대 1800만 원까지 모두 1억3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 뒤로 마을 곳곳은 프로젝트에 뛰어든 청년들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낡은 여관을 커뮤니티호텔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상도 이들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 허무맹랑해 보이던 구상은 몇 달 뒤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삶기술학교에는 지난해 8월까지 2년 반 동안 7기수 약 200명의 도시 청년들이 한 달 이상씩 머물렀고 이 가운데 63명(2021년 5월)이 마을에 터를 잡았다. 최근에는 1500년 역사를 이어온 69개 양조장의 전통주 96종의 디지털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도 해나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젊은 세대의 입맛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리브랜딩한 소곡주들도 내놓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지난해부터 이들은 마을의 오랜 자산인 유림회관을 디지털 노마드센터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해왔다. 처음 마을에 발을 디딘 낯선 청년들에게 나이 지긋한 유림들은 오랫동안 불이 꺼져 있던 유림회관 복도 한 켠을 내주며 마을의 전통과 기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했고, 청년들은 그 간절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2년이 지나 유림회관을 이름도 낯선 디지털 노마드센터로 바꾸고 싶다는 청년들의 제안을 유림들이 받아들였다. 청년들의 꿈을 믿고 응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0월 유림회관은 행안부 ‘지역사회 활성화 기반 조성사업’에 뽑혀 디지털 노마드센터 ‘한산회관’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작 10년 만에 다시 유림회관에 불을 밝히고 디지털 노마드센터로 거듭나게 했던 청년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몇몇 지방의원들이 지자체를 흔들어댔고, 지자체는 지방선거가 코앞이라며 손을 놓았다. 결국 준공 여섯 달이 지나서야 한산회관은 다시 제 주인을 찾았지만 아깝게 흘러가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청년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서 뜻을 펼치려는 청년들이라면 누구라도 맞닥뜨리게 되는 높은 벽이다.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누군가가 생색을 내려고 성과를 챙기려 한다. 처음부터 장소(유림회관)가 정해져 있었는데도 어떤 지방의원은 자기 지역구로 가져가려고도 했다. 또 나를 이 지역에서 정치하려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경계하기도 한다.” (김정혁 대표)

그는 청년이 머물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일을 ‘종합 비즈니스’라고 했다. “사회의 외부 영향과 내적 역량, 또 지역과 사업의 어울림 같은 것들이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운영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공동체와 일, 이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운영자여야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는 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여러 문제가 생길 텐데 그럴 때 이 청년들이 외롭지 않도록 해주는 게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5~10년 정도 로드맵에 우리 사회가 같이 공감해주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면 좋겠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 모두에게 바라는 점이다.”

청년마을 2기, 경북 문경 ‘달빛탐사대’

2020년 청년마을 2기에 뽑힌 경북 문경 ‘달빛탐사대’는 앞서 두 팀과는 운영 주체가 조금 달랐다. 이름에 걸맞게 ‘우리 생애 가장 매력적인 도전’을 내건 이 프로젝트는 석 달 동안 문경읍에 머물면서 지역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 창업 혹은 본인이 꿈꿔왔던 ‘작은 이룸’의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만들어가도록 했다.

청년협의체 ‘가치살자'(대장 주재훈)가 탐사대를 이끌었는데, 가치살자는 로컬 콘텐츠 그룹, F&B 그룹, 외식업, 식품가공 등 서로 다른 분야의 4개 청년 기업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기업의 대표들뿐 아니라 달빛탐사대를 이끌어가는 구성원 대부분이 문경에서 나고 자랐다.

주재훈 대장도 문경에서 태어나 20대를 서울과 영국, 호주 등에서 보낸 뒤 2014년 무렵, 28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 같이 자란 사촌동생과 작은 레스토랑을 열었고, 몇 년 동안 열심히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우연히 문경 청년 창업가 모임에 초대받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래들을 만나 서로에게 기대게 됐다. 청년마을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더 많은 이들을 모으고, 더 많은 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고 싶어서였다.

“한 심사위원이 문경이 뽑혀야만 하는 이유가 뭔지 묻더라. 그래서 ‘다른 곳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다른 곳에 과연 우리 같은 친구들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답했다. 토박이들이 모여서 다른 곳에서 오는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꾸준히 해온 곳이 문경 말고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주재훈 대장)

토박이들이 모여 일을 해나가다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다. 마을에서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어떤 점들에 눈살을 찌푸릴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돈벌이를 앞세워선 안 된다는 생각을 늘 잊지 않는다.

“우리가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주목을 받을 순 있겠지만 온갖 시기와 질투도 온몸으로 받게 될 거다. 그러면 더는 주민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 주민들이 못하는 부분을 우리가 도와서 같이 올라가야 한다. 마음과 달리 오해를 받기도 쉽다. 지천에 널린 자원으로만 바라보고 무턱대고 달려들면 후폭풍이 따라온다.” (주재훈 대장)

이들은 최근 경북도의 도움으로 문경시로부터 5년 가까이 비어 있던 제법 큰 콘도를 위탁 받았다. 방이 9개에 식당, 회의실 등을 갖춘 공간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을의 숙박업체들을 생각해 숙박업 등록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들 자기 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청년마을 사업에 필요한 기본 공간도 업장들을 조금씩 손봐서 스스로 마련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행안부나 지자체의 지원에만 기대지 않아도 된다. 첫해 행안부 지원금 가운데 30%를 인건비로 쓸 수 있었지만 이들은 그 돈을 나누지 않고 마을 청년들을 고용하는 데 썼다. 도와 시가 지난해부터 2년을 지원해주기로 한 돈도 처음엔 받지 않으려 했다. 지원을 계속 받다 보면 경쟁자들도 생기고 마을에서 안 좋은 이야기들도 나온다는 걸 이들은 잘 알아서다.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모두 122명의 청년들이 달빛탐사대를 거쳐 갔고, 이 가운데 22명이 문경에 남아 살고 있다.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이른바 관계 인구도 50명가량 된다.

첫해 처음으로 창업한 가게는 베이크샵 ‘연분’이었다. 주인장인 양지애 대표는 한식과 제과제빵에 이어 요리를 배우러 이탈리아까지 갔다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쫓기듯 돌아와야 했다. 엄마 이름을 딴 가게를 낸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만든다. 문경 사과를 조려 스콘 위에 올린 ‘애플크럼블스콘’이 대표 메뉴다. 사과는 동료 탐사대원이 꾸려가는 농장에서 가져온다. 연분은 지난해 말, ‘다시오후’라는 브런치레스토랑으로 거듭났다.

달빛탐사대는 2기부터 먹거리와 농업으로 영역을 좁혀 대원을 뽑았다. 지역에 필요하면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팀, 또 같이 호흡을 맞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익숙한 영역들이어서다. 잘 모르는 분야의 창업팀과 갈등을 겪었던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가치살자는 올해 3월 협의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서로가 조금 더 굳게 손을 맞잡아도 될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 주 대장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따윈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테고, 또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아니까. 그는 청년마을 사업은 오랫동안 지역에 살았던 이들이 중심이 돼야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탐사대원도 절반쯤은 지역 청년들로 채우고 있다.

“지역 출신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주재훈 대장)

(하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참고한 글]

  • ‘2020 달빛탐사대 사업성과 보고집 – MOON 두드려'(2021), 주재훈, 행정안전부.
  • ‘마을의 진화'(2020), 간다 세이지 지음, 류석진 등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