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부동산만큼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리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과 부동산의 폐해는 굳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부터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비영리 금융·부동산 주체의 역할이다. 영리 아닌 목적을 추구하는 비영리 주체의 활동을 통해서 기존 폐해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국내의 기존 비영리 주체 중에서 금융 쪽에는 농협이나 신협, 새마을금고가 비영리법인으로 분류되고, 부동산 쪽에는 민간 주체라고 보기 어려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지방)공기업이 대표적인 비영리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존 주체는 상당수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정부의 필요에 따라 설립되거나 공익사업을 위하여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으로서 시민들의 필요와 자발성에 기반하는 민간 비영리 주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지난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그리고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의 시행 이후 영리 아닌 목적을 추구하는 법인의 설립 방법이 다양해졌음에도 눈에 띄는 금융·부동산업 주체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금융·부동산 관련 사회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럴 리 없다. 문제는 비영리 금융·부동산업 창업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매우 까다롭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의 설립과 지원에 관한 법률인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시행령에는 창업지원 제외 업종(제4조)이 명시되어 있다. 한국표준산업분류를 기준으로 금융 및 보험업(핀테크 제외), 부동산업, 숙박 및 음식점업, 무도장 운영업, 골프장 및 스키장 운영업, 기타 갬블링 및 베팅업, 기타 개인 서비스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해당 업종을 창업할 경우 사업자는 중소기업 관련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업종 목록을 훑어봤을 때, 고용유발 효과가 크지 않거나 유흥과 관련된 업종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금융 및 보험업, 부동산업이 여기에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기본법」도 마찬가지다. 금융 및 보험업을 (일반, 사회적)협동조합 사업의 목적으로 할 수 없다고 콕 집어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의 자조금융 조직으로 시작한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현재 조합원 400여명의 조직으로 성장하였으나 정식 협동조합으로 등록하지 못한 채 임의조직으로 머물러 있는 사례도 있다. 물론 신협으로 등록하는 방안도 있겠으나, 신협은 30인 이상의 발기인이 최소 5천만원 이상(특별시·광역시 지역조합의 경우 3억원)의 출자금을 모아 신협중앙회장, 금융위원회의 인가로 설립할 수 있다. 그나마도 1997년에 설립된 논골신협(서울 성동구)이 지역신협으로서 현재까지 마지막 인가 사례로 알려져있는 등 쉽지 않은 조건이다.

사단법인, 재단법인 등 「민법」상 비영리법인이 금융·부동산업을 하는 것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우선 금융·부동산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은 설립 인가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재단법인은 실무적으로 최소자본금(출연재산) 규정이 설립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비영리법인의 수익활동, 대출 등에 관하여 주무관청의 각종 규제가 예상되고, 비영리법인은 건설업 등록을 하지 못하는 등 제도적 제약이 많다. 다만 「협동조합 기본법」에 규정되어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으로 분류되며 부동산업으로 인가받을 수 있어, 민간 비영리법인이 부동산업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물론 금융·부동산업은 비교적 대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민간 비영리 주체들이 야기할 문제가 발생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시민들의 필요와 자발성에 기반하는 민간 비영리주체가 품고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들의 역할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서울시는 2016년부터 사단법인의 설립자본금 요건을 완화하고 인가에서 신고제로 변경하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고, 국토교통부는 최근 부처형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비영리 성격의 부동산업 창업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계획일 뿐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신협의 인가 조건을 완화하거나 사회적협동조합에 한해서 금융 및 보험업 제한을 없애는 등의 장치를 마련하여 민간 비영리 주체의 등장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By |2018-07-02T22:17:08+09:002018/02/13|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 |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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