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제, 주거, 노동,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위한 경제 조건이겠지만 주거, 교육, 육아, 건강의 문제 등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 중에서 양질의 보건의료는 경제 수준, 복지 수준과 함께 발전하면서 그 나라의 선진성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보건의료의 발전은 보건의료체계라는 틀을 통해서 달성되며, 그에 따라 각 나라마다 정해진 자원과 재정을 운용하면서 의료 인력 및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일차의료이다. 일차보건의료는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이 겪는 대부분의 건강상의 문제들에 대해 가장 먼저 접하고, 포괄적이면서 지속적인 관리를 하게 되는 과정으로서 질병의 예방과 교육, 적절한 의학적 치료, 여러 전문가들과의 통합적 환자 관리를 통해 나라의 건강지표를 향상시키며, 효율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선진 외국과 달리 한국은 12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의료의 질적 발달 보다는 양적 팽창을 중심으로 한 의료정책과 의사들은 자영업자 의식을 중심에 두게 된 관행적 사고 때문에 다소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오기도 하였다. 의사 수가 많아지고, 전문의 제도가 급속히 확대되는 가운데 1977년 공적 건강보험의 시작과 1989년 전국민건강보험제도의 확대 속에서 의사들은 비로소 사회와 의료공급자인 의사로서의 관계를 인식하게 된다. 건강보험제도는 다행히 자리 잡는 모습을 보였지만, 같이 시도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일차보건의료 개혁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국의 보건의료 문제는 점점 여러 가지로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그러한 위기 상황이 피부에 와 닿기 전이지만, 이제 의료 재정의 문제나 의료서비스 공급의 문제, 의료 자원 배분의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외국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심각하게 고민해온 의료개혁의 문제들이 이제 한국에서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들과 똑같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임을 선험적으로 인지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필요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 글은 이렇게 시민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 중에서 건강의 문제를 다룰 것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보건의료 정책의 내용을 풀어나갈 것이다. 여러 보건의료의 문제들을 간단히 요약하다시피 서술하면서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인 일차보건의료의 방향을 가장 중요하게 제안할 것이다. 물론 그 방향은 발달된 의료제도의 형태를 목적의식적으로 의식하면서 그 노정에 있게 될 현실 속의 일차보건의료제도의 내용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루지 못한 경제 발전과 건강지표의 달성과 같은 밝은 우리의 현실 뒤에는 노인 인구의 증가나 총인구의 감소, 소득 격차로 인한 건강 불평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의료 재정의 문제나 불완전한 의료 전달체계,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만족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들은 오래 지나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의료체계를 흔들 것이며, 의료서비스 수혜자인 국민들이나 공급자인 의사들 모두 힘든 시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모두가 인지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파행적 국정 운영에 대한 전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19대 대통령선거가 조기에 치러질 가망성이 있는 이 시점에 선거를 준비하는 집단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보건의료에 관한 정책 제안을 보내는 바이다.

Ⅰ. 한국 보건의료,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보건의료는 사람의 삶과 함께 해 왔다. 고열 때 일연의 단군 기록에 보면 환웅천황이 풍백, 운사, 우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들을 주관하고 무릇 인간사 삼백육십 여 가지를 주관하며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역사가 깊다.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의학이 발전하고 고려에 들어 제도화 되고 민중들을 위한 혜민국, 제위보, 동서대비원 등이 만들어지고, 정규 의학교육도 실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발전하고 고려 때의 것들을 계승하면서 역할과 이름도 비슷한 혜민서, 제생원, 동서활인원 등이 운영되었다. 한약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 등 중요한 의서들이 만들어지고, 의학교육의 정규화 및 의료체계가 자리 잡힌 것도 이 당시였다.

1880년대 말부터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한의학의 자리를 서양의학에 내주게 되었고, 의료 체계는 새로운 의학에 의해 재편된다. 서양 의학은 중앙을 중심으로 확장했고,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하다보니 지역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다행이 선교사들의 힘에 의해 여러 지역에도 의료기관이 세워져서 민중들을 위한 보건의료 활동이 이루어지고, 아직까지도 사람이 사는 곳곳에는 몰락해가는 한의원이나 한약방들이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의학을 발전시킨다거나 전국의 보건의료 문제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생각이 없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오로지 총독부를 중심으로 위생이나 보건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뤘고, 모든 것은 식민지 병참기지화나 일본의 침략을 위한 기반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에서의 의료체계는 발전할 수 없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시대,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제대로 된 의료체계를 만들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치다보니 지금까지 흘러왔다.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게 일차보건의료인데 여러 전문의들이 혼재되어 있는 기현상, 비효율적인 의료체계 속에서 의사나 의료 인력들은 불필요한 경쟁과 소모적인 노력을 경주하며 힘들어 하게 됐고, 시민들은 뭔지 모를 의료 체계 속에서 자신의 건강 권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나 정치인들은 어느새 방관자가 되거나 약소한 정책 변경 정도로 생색을 내고 있을뿐, 치솟는 의료비에 대한 대책이나 국가 50년 대계의 보건의료 체계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 한국 보건의료의 문제,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나?

(1) 의사들, 먼저 나서서 시민들을 위한 의료를 이야기하자.

한국 의료의 공공성 부재, 의사들의 자영업자 의식은 그동안의 역사에서 길들여진 것이다. 한국에서 보건의료 문제를 생각할 때 여러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흔히들 어떤 정책에 대해서 의사들의 반대가 심하다, 너무 자신들의 병원 경영에만 신경 쓴다 등 의사들의 이기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며 정책 실현의 어려움의 중심에 의사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래된 문제와 본질의 것이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사들은 원래 보수적이라서 웬만하면 정부 정책에 호응하며 지냈었다.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때처럼 독재정권이라면 힘에 눌려서라도 복종을 했고, 그 시절이 아니더라도 타협하며 지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을 여러 차례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주치의등록제도’가 의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고, 김대중 정부 초기에 야심차게 준비하던 ‘단골의사제도’ 역시 시작도 못해보고 묻혔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와 의사들의 대화가 잘되는가 싶더니 ‘선택의원제’ 문제로 다시 격돌했고, 포괄수가제 문제로까지 대립이 이어졌다.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의사협회장이 앞장서서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의사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들이 동참했다. 그다음에 돌아온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정책과 저숫가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의사들에게는 자승자박,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토양은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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