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갖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내년부터 보육료 지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잠시 술렁이는 듯 했으나, 부모들은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난 몇 년간 보육료 지원을 둘러싼 내홍을 겪은 바 있어 부모들은 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부처 간 예산을 둘러싼 기 싸움으로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교육감협의회 “누리과정 지원 중단” vs 정부 “위협”
사실 이번 사태는 지난달부터 예고되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9월 18일 열린 총회에서 결의문 “2015년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져라!”를 통해 내년부터 만3~5세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편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급기야 교육감협의회는 지난 10월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부금 예산으로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은 편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해 논란이 커졌다.
갑작스런 기자회견이 이뤄진 다음날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공통 보육과 교육 과정인 ‘누리과정‘ 제도는 2012년에 합의해 개정된 내용이며, 지방교육교부금의 자금 악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했다.
본질은 ‘대선 공약’ 파기한 정부 책임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선 공약’을 파기한 정부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유아 무상보육도 새 정부 시작과 함께 전 연령과 소득층으로 본격화되었으나, 정부의 재정 책임은 불분명해 매년 지방정부와 다투고 있다.
이번에 빚어진 교육감협의회와 정부 간 날선 대립은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 9.18 예산안을 보면, 정부의 전체 총지출은 376조원으로 전년 대비해20조2100억원이 확대되었다. 이 가운데 내년도 복지, 보건, 노동을 합한 복지분야 총지출은 115조5000억원으로 전년대비 9조1000억원이 늘었다. 이 중 보건복지부 예산은 51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조원이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의 증가한 예산의 절반은 공적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기금으로 지출될 부분이라, 사실상 이를 제외한 복지부의 증가한 예산은 2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노인 기초연금이 원래 공약보다 후퇴되었음에도 내년에 필요한 예산이 2조3800억원이다. 사실상 영유아 보육료 등 다른 분야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없는 안이다.오히려 영유아 보육 예산은 4000억원이나 삭감되었다. 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만3세아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2948억원이 줄었다. 이는 현재 교육감들의 반발을 산 해당 예산으로, 내년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몫으로 편성되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적정’ vs ‘부족’ 대립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둘러싼 시각차이도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내년도 예산만 문제가 될 뿐, 지속적으로 학생수가 감소해 교육복지 지출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 총액의 20.27%로 정하고 있으며,정부는 이를 적정규모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 관계자의 시각은 다르다. 1) 정부가 국민과 약속한 교육복지 부담이 계속 지방정부의 몫으로 넘어오고 있으며, 2)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지출과 관계가 깊은 학생 1인당 지출비와 교부금의 60%를 웃도는 교원의 인건비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다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3) 경기 불황으로 내국세 수익의 어려움이 총체적으로 맞물려 지방재정 압박이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정부와 지방정부 간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이 때문에라도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영유아 복지가 왜 중요한지, 이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와 합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보육료 갈등과 턱없이 부족한 ‘예산’ 은 부모들의 피로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결국 섣부른 선심성 공약은 근본적인 해법은커녕 불필요한 갈등만 부추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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