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시라면 모름지기 청년이 머물고 싶은 도시여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ㆍ수도권 밖에 청년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를 찾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이 꼭 (청년들에게) 좋은 도시라고 할 수도 없다. 가장 많은 청년들이 몰려 사는 서울은 전국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이기도 하다. 행정안전부는 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은 도시, 이른바 ‘청년마을’을 만드는 사업을 해왔다. 길게 보면 올해로 벌써 5년째, 지난 5월 청년마을로 뽑힌 12곳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 모두 27개의 청년마을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행안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기자말]
2021년부터는 해마다 청년마을을 12곳씩 뽑기로 했다. 목포 괜찮아마을(2018), 서천(한산) 삶기술학교(2019) 그리고 문경 달빛탐사대(2020)가 의미 있는 결실을 맺었다고 본 것이다. 때마침 국무조정실에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설치되고 ‘청년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청년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분위기도 생겼다. 이런 가운데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이 지역소멸이라는 위기를 청년 스스로 해결해나갈 사업으로 꼽힌 것이다.
지난해 12개 팀을 뽑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무려 144개 팀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벌써 두세 번 탈락했던 팀들도 여럿이었으니 자연스레 문턱도 높아졌다. 청년마을에 뽑히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 늘었단 뜻이다.
9년째 강화 지켜온 협동조합 청풍의 ‘강화유니버스’
인천 강화도를 무대로 활동하는 협동조합 청풍(이사장 유명상)도 2019년 1기부터 세 번째 도전 끝에 ‘강화유니버스’라는 프로젝트로 뽑혔다. 청풍은 강화에 터를 잡은 지 지난해로 9년째였다.
2013년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다른 또래 넷이 모여 강화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풍물시장 한구석에서 화덕피자를 구워 판 게 시작이었다. 하루에 피자 한 판 못 파는 날도 많았던 이들에게 이웃 상인들이 세끼 밥을 해 먹이면서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 속노란 고구마, 순무를 가져다주고 손질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세상에 없던 밴댕이 피자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때는 한 달 매출이 1000만 원에 달할 만큼 찾는 이들이 많았다.
대학 나온 청년들이 당당하게 장사하는 모습을 지켜본 나이 지긋한 상인들이 더는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자식들을 데려다 일을 가르치는 상인들이 늘면서 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5년째 되던 해인 2017년, 청풍은 오래된 3층짜리 건물을 빌려 1층엔 스트롱파이어라는 아담한 펍을 열고, 2층부터는 아삭아삭순무민박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그리고 ‘잠시섬’이라는 강화살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대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잠시 쉬면서 강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건데, 낯선 섬에 와서 뿌리를 내리기까지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다른 이들도 걸어볼 수 있게 하자는 뜻이었다. 괜찮아마을보다도 한해 빨랐던 셈이다.
“또래들이 많이 없다 보니 고립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기길 바랐다. 강화에서 살고 싶어도 기반이 없어서 주춤주춤 머뭇거리는 친구들이 많았고, 강화 산마을학교(대안학교) 졸업생들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청년마을 사업 공고를 보고 강화에 살고 싶은 청년들이 잘살아갈 기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김선아 이사)
이들은 줄곧 강화 안팎의 연결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강화유니버스’란 이름에도 강화 안과 밖에 사는 모든 이웃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며 하나의 우주로 연결된다는 철학이 담겼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어디에 사는가는 이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강화에 머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여러 번 오가면서 강화의 경험과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마음이 더 크게 움직이는 순간이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되도록 더 많은 이들이 강화를 경험하는 ‘탐색’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애써왔다. 청풍은 이들을 ‘링커’라 부른다. 지난 한 해 동안 강화를 거쳐 간 링커들이 무려 600명에 달한다. 다른 청년마을들에는 많아야 100명 안팎의 청년들이 다녀갔으니 청풍이 링커를 만드는 일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아무나 링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번에 모집 인원의 10배인 200명이 몰릴 때도 있었는데 ‘그냥 쉬고 싶다’는 이들 말고 뭐라도 이곳에서 해보고 싶다는 이들을 링커로 맞았다.
다른 청년마을들과 달랐던 점은 또 있다. 이곳에선 창업이나 공간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탐색기에 맞게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도록 했다. 가끔 강화의 예술인들과 함께 연극 무대에 서보거나 춤을 배워 공연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는데, 익숙한 삶 말고 다른 삶도 얼마든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도 새로운 시선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이들은 믿는다.
청풍은 강화를 찾은 링커들이 먼저 뿌리 내린 이주 청년이나 토박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저녁마다 동네 친구를 한 명씩 불러 강화살이와 일을 주제로 링커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링커들이 강화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이자, 지역 청년들이 자신의 삶과 일을 다른 이의 눈으로 돌아보며 강화 밖으로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기회라 여겼다.
벨팡(베이커리), 책방시점, 다루지(카페), 소문난 감자탕, 루아흐(레스토랑)를 비롯한 여러 가게 주인들과 웹툰작가, 하모니카 연주자 등 강화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링커들을 맞았다.
“당장 이주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링커들이 많아져야 우리 삶도 풍요로워지고, 10년을 내다보며 이주하는 이들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김선아 이사)
유니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들은 로컬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성인지 감수성과 생태 감수성이 지역 안에 녹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마을에선 찾아보기 힘든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젊은 여성들에게 반말이나 성희롱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동네 분위기를 바꾸고 채식주의나 생태주의적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도 얼마든지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애썼다.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함께 받았고 성인지 가이드북도 만들어 돌렸다. 함께 모이는 자리마다 스스로 말투나 생각을 돌아볼 수 있도록 가벼운 퀴즈를 풀어보기도 했다.
이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반말과 삿대질이 몸에 배었던 어느 주민은 태도가 깍듯하게 바뀌었고, 식당에 가면 먼저 ‘고기 빼줄까’ 하고 묻거나 청년들이 내민 그릇에 두부를 담아주는 게 더는 어색하지 않게 됐다. 김선아 이사는 “굳이 비장하게 말하지 않아도 접촉을 늘려가다 보니 동네 문화가 이렇게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걸 느낀다”고 했다.
청풍에도 먹고 사는 문제는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올해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사업을 이어갈 생각이지만, 링커들이 강화에 오래오래 머물게 하려면 일자리가 더 많아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그게 청풍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청풍은 스트롱파이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땅을 사 2층짜리 아담한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있다. 돈은 행안부 지역자산화 사업과 크라우드펀딩으로 마련했다. 모두 빚이긴 하지만 강화에 발을 디딘 지 10년을 맞은 청풍은 이렇게 더 큰 꿈을 키워가고 있다.
“자산을 쌓아야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또 다음 세대 친구들과도 공유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그래서 자산과 수익 구조를 탄탄히 만들어가려 한다.” (김선아 이사)
공주 제민천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 퍼즐랩의 ‘자유도’
제민천이 흐르는 공주 원도심에서 4년째 ‘마을 스테이’를 조성해 온 퍼즐랩도 ‘자유도’ 프로젝트(총괄 이병성)로 지난해 청년마을에 뽑혔다. 이들이 지나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던 한옥 봉황재’에 닿는다. 봉황산 아래 고즈넉한 골목 끝에 자리한, 6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게스트하우스 봉황재가 문을 열면서 멈춰 있던 제민천의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봉황재를 다녀간 이들 가운데 몇몇이 이 마을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 몇 달 뒤 독립책방 가가책방에 이어 코워킹 스페이스 업스테어스와 공동체 교육 공간 와플학당을 잇따라 열었다. 이병성 대표는 봉황재 주인장 권오상과 함께 퍼즐랩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마을 스테이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이 대표가 처음 와플학당을 열었을 때만 해도 마을에서 함께 활동할 청년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넉 달쯤 지나자 와플학당으로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청년들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함께 찾아 나섰고 서로가 가진 생각들을 나누고 다듬으면서 제법 그럴 듯한 기획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기댈 곳이 마땅찮았던 청년들에겐 와플학당처럼 느슨하게 모여 함께 길을 찾아 나설 공간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 대표는 2020년부터 ‘지역 탐구’, ‘지역 살아보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청년들을 마을로 불러들였다. 한 해 동안 2박 3일짜리 프로그램을 네 번, 3주짜리를 두 번 진행하며 조금씩 더 길게 지역에 머물고, 더 깊게 지역을 경험하도록 했다. 일찍부터 공주만의 청년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행안부 청년마을로 뽑힌 뒤엔 처음부터 뚜렷한 밑그림을 가지고 서로 다른 여러 개의 마을살이 프로그램을 펼쳐냈다.
이들은 모두 4단계의 프로그램으로 청년들을 불러 모았는데, 1단계는 4박5일 동안 자유롭게 마을에 머물면서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로그인 공주’였다. 마을 곳곳을 함께 돌아보는 것 말고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마을을 마음껏 누빌 수 있도록 자전거를 마련해주었고, 마을 공방에서 열리는 소모임을 비롯해 맛집 탐방, 비즈니스 리서치 등 여러 주제의 마을 소모임에는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짧은 워케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회사 팀 동료들끼리 함께 참여한 일도 있었다. 10명씩 8번을 모았는데 입소문을 타고 마지막 8번째엔 50명이 몰렸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는 “로컬에서의 일과 삶을 체험해보고 공동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라고 했다.
2단계는 마을에 먼저 자리 잡은 퍼즐랩, 곡물집, 이퀄컴퍼니 등 세 개 창업·창직(새로운 직종을 만드는 활동)팀들과 함께 서로 다른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2박 3일짜리 프로그램들이었다. 이 가운데 마을에서 곡물 카페를 운영하는 곡물집과 함께 한 ‘식경험 디자인 캠프’에선 조금은 낯선 토종 곡물들로 아이스크림과 잡곡밥을 만들고 맛보면서 토종 곡물이 가진 가능성과 가치를 함께 나눴다.
3단계는 조금 더 길게, 2주 동안 마을에 살아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찾아보는 프로그램 ‘소도시 모험 로그’다. 로그(항해일지)라는 뜻에 걸맞게 마을에 머물면서 인상 깊은 순간과 장면들을 기록하고, 서로의 취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창업·창직자, 주민들과 폭넓게 만나가면서 마을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거리도 떠올려 보도록 도왔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데 쓰는 시간보다는 마을 곳곳을 모험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보니 긴 여행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긴 했다.
마지막 4단계 ‘로컬 디자인 프로젝트’는 5주짜리 창업·창직 실험 프로젝트다. 리빙랩(생활 실험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을 하나의 실험 공간으로 삼아 새로운 기획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 두 주 동안 지역을 탐구하고 3주째엔 기획안을 만든 뒤 다시 마지막 두 주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을 곳곳에서 실현해보도록 했다. 14개 팀 21명의 청년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마을에 마련된 세 개의 팝업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물건을 팔면서 방문하는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지난 한 해 4개의 프로그램에 모두 142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6명은 곡물집과 퍼즐랩을 비롯해 먼저 마을에서 창업한 회사들에 채용되었고 3명은 마을에 남아 창업 또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08001 바르셀로나’라는 스페인 타파스 바를 차린 최나영 대표도 지난해 4월 소도시 모험 로그 2기를 거쳤다. 스페인에서 7년을 살았던 그는 함께 살던 친구 소개로 마을살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주 동안 마을에서 또 다른 삶을 꿈꿔보고는 여섯 달 뒤 이곳에 가게를 냈다. 그는 원도심이 가진 고즈넉한 정취도 좋았지만 2주 동안 머물며 지켜본 “자신의 일에 열중하면서도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굉장히 큰 자극이 되었다”고 했다.
올해 4월엔 ‘미정작업실’이라는 이름을 단 마을 펍이 생겼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정희네’를 닮은 이곳 주인장 허미정도 지난해 4월 소도시 모험 로그에 참여했다. 그 뒤로 마을에 남아 자유도 프로젝트 운영을 돕다가 꼭 1년 만에 자신이 꿈꾸던 가게를 차렸다.
제민천을 따라 걷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동네 풍경에 놀라게 된다. 최근엔 금강 건너 신도시에서 이자카야를 하던 공주 청년들이 미정작업실 건너로 가게를 옮겨왔고, 멀지 않은 곳에 초밥집도 생겼다. 봉황재와 미정작업실 사이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던 카페 프런트는 옆 건물을 사들여 탁자와 의자를 놓았다. 이들 가게 마다 주말이면 긴 줄이 생긴다.
지난 4월엔 서울 서촌에 자리했던 오래된 책방 길담서원이 공주로 옮겨 문을 열었다. 독립책방 하나 없던 이곳엔 4년 만에 7개나 되는 개성 넘치는 책방들이 들어섰고, 하루 일을 마치고 편하게 찾을 동네 펍이 있었으면 하던 바람도 이뤄졌다. 아침마다 제민천을 따라 건강한 빵 냄새가 피어오르고 동네 곳곳에 둥지를 튼 청년 공예가와 예술가들은 빛을 잃어가던 동네에 자기만의 색을 입혀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변화를 퍼즐랩 혼자 만들어낸 건 아니다. 도시재생뉴딜 사업을 비롯한 다른 여러 사업들도 원도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나가던 도시에 다시 적지 않은 청년들이 찾아와 터를 잡기까지 자유도 프로젝트와 퍼즐랩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올해는 행안부에 이어 충남도와 공주시가 함께 2억 6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유도를 이끌었던 퍼즐랩은 더 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찾고 머물며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게 다른 용역에도 꾸준히 도전하면서 더 든든한 기반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이병성 대표는 공주 자유도 프로젝트와 청년마을 만들기가 청년몰과 로컬 크리에이터로 대표되는 (로컬) 청년 창업지원 사업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지원이 각 주체들이 지역 자원을 활용해 창업을 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면 청년마을 만들기는 그보다 큰 ‘지역성’이라는 자산을 기반으로 그 지역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봤다. 그러니까 청년마을 만들기는 로컬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 청년들을 모으는 사업인 셈이다.
“청년마을을 만들어가는 팀들이 사업을 수행한 뒤에도 각자가 가지고 있던 가치와 철학, 라이프스타일, 주민과의 관계성을 잃지 않고 마을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청년마을 사업을 거치면서 이런 것들이 무뎌지면 안 된다. 지역에 맞는 해법과 생존 방식도 본인들이 찾아내야 하고 결국 그것이 다른 청년들을 불러들일 브랜드가 될 테니까. 그러려면 마을마다 가진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한 사례들이 가진 가능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이병성 총괄)
열악한 곳에서 꽃 피워낸 신안 안좌도 팔금도 ‘주섬주섬’
신안 ‘주섬주섬’은 지난해 뽑힌 12개 청년마을 가운데 가장 힘든 조건에서 출발한 팀이다. 주섬주섬은 동물원(zoo)과 섬을 합친 말로 동물과 청년이 공존하는 섬마을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스스로를 해적단(단장 이찬슬)이라 부르는 이들은 목포역에서 차로 1시간을 더 달려야 닿는 작은 섬 안좌도에 닻을 내렸다. 노래방 하나 없는 작은 섬마을이다. 다른 마을들과 달리 당장 잘 곳은커녕 모여서 회의할 곳도 마땅치 않은, 그야말로 외딴 섬마을에 청년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허무맹랑한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찬슬 단장은 “그 누구도 경쟁하지 않는, 그래서 파이 나눠 먹기가 아닌 파이 자체를 키워낼 수 있는 상상력의 공간을 찾았다”라고 했다. 청년들의 상상력으로 파이를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로 그는 조용한 바닷가 섬마을인 와우마을을 점령했다.
먼저 일할 곳과 잘 곳이 필요했던 이들은 마을 한 가운데 커다란 마당을 가진 집을 찾아가 청소를 시작했다. 마당 가득 쓰레기가 쌓여있고 정화조에선 썩은 내가 올라왔지만 그 집에 혼자 살던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청소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곳이다.
처음엔 ‘뭐단디 치워야’라며 나무라던 할머니도 몰라볼 만큼 집이 깨끗해지자 남는 공간들을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비어있던 집 옆 농약창고도 덤으로 얻었다. 해적단은 그 넓은 마당을 캠핑장으로 바꾸고 동네 주민들을 불러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농약창고는 벽을 허물어 바다가 보이는 갤러리로 바꿨다. 처음엔 행안부를 등에 업고 들어와 마을에서 돈이나 벌어가려는 청년들이라며 흘겨보던 마을 사람들도 이들 청년 해적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군청 관사로 쓰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몇 년째 버려진 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가 또 청소를 시작했다. 이 단장은 정말 귀신이 나오는지 보려고 팀원 한 명과 둘이서 6개 방마다 하루씩 밤을 보냈다. 귀신은 안 나왔지만 뱀만한 지네에 물려 한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당장은 임대계약이 어렵다던 군청도 청년들이 치워 놓은 현장을 둘러보고는 다달이 8만 원에 3층 건물을 내줬다. 지금은 청년마을 숙소 가운데 가장 멋진 곳으로 꼽힌다.
어렵사리 몇몇 공간들을 마련하면서 6월에 첫 한달살이 참가자를 모으려고 광고를 내자 생각지 못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신안 섬들에서 벌어졌던 범죄들을 떠올리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영상도 만들고 찾아가는 설명회도 열었지만 한달살이를 해보겠다며 찾아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허구한 날 공사나 청소에 매달리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첫 한달살이 프로그램은 “망했다”.
“팀원들 표정은 참담했다. 청년마을인데 청년들은 싫어하고, 일은 힘들고 미래가 안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가슴이 뛰었다. 행안부도 불안하다고 난리고, 누가 봐도 실패할 것 같아 보였지만 난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수월하게 하려고 했으면 고향인 목포에서 했을 거다. 여기까지 온 건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다. 버텨내야 모험을 할 수 있으니까, 위기 속에 기회가 있을 거라 믿었다.” (이찬슬 대장)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간들을 마련해가면서 마을 활동들을 꾸준히 기록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SNS와 강의 등으로 해적단 활동을 부지런히 알려 나갔다. 다행히 진심을 알아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번엔 석 달 동안 마을에 머물며 예술 창작 활동을 비롯한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기면서 함께 마을을 가꿔 갈 청년들을 ‘플레이어’란 이름으로 모았다. 다행히 이번엔 15명이 모였다. 8월엔 다시 ‘당신의 상상을 돈으로 바꿔드립니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마을전당포’ 손님을 모았다. 섬마을에서 창업과 창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그들의 꿈을 담보로 돈과 공간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진을 찍는 명산 작가는 평생 사진 찍을 일이 없던 마을 할머니들을 날마다 찾아다니며 일손을 도왔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마을에 미술관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수지 작가는 마을에 공방을 차리고 실크프린팅으로 섬의 자원을 담은 굿즈를 만들었고, 약사인 재영은 섬의 특산품으로 단백질셰이크를 만들어 곧 회사를 차리려고 한다.
사람이 늘면서 더 많은 공간이 필요했다. 우연히 들른 안좌도 옆 팔금도에서 버려진 폐교를 만났다. 교육청에 공간을 쓸 수 있는지 물었더니 결론을 내려면 석 달은 걸린다고 했다. 별 수없이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이번에도 청소부터 시작했다. 오물이 가득했던 변기를 닦고 벽과 천장에 가득했던 곰팡이를 긁어냈다. 곳곳에 날카롭게 드러나 있던 철골들도 잘라냈다.
다행히 행안부가 나서서 교육청과 군청 담당자들을 불러 모았다. 군청에서 모이자는 걸 해적단은 폐교로 모아달라고 고집을 부렸고, 마침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서 발전기를 돌리며 자신들의 구상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교육청은 2주 뒤 폐교를 쓸 수 있게 해줬다. 2021년 9월, 프로젝트 마감을 84일 남겨둔 때였다.
어느 날 군수가 학교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 단장은 군수에게 다가가 5분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매달렸다. 교실에 앉아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진 일들,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들은 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리고 명함을 건네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곧바로 연락하라고 했다.
어느덧 넷이서 점령했던 마을에 서른 명의 청년들이 모였고, 버려졌던 학교 1층은 목공실과 화실, 실크스크린 공방과 음악녹음실 등 청년 예술가들의 메이커스 공간이 되었고, 2층엔 ‘우실동물숲’이라는 동물원이 들어섰다. 멸종 위기에 놓인 열대 조류를 만날 수 있는 앵무새 놀이터, 커다란 육지거북이가 마음껏 돌아다니는 거북이 운동장 그리고 희귀 도마뱀을 만날 수 있는 드래곤 도서관이 있다. 팔금도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동물원이다.
올해는 전남도와 신안군이 함께 2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군은 학교를 사들인 뒤 2억 5000만 원을 들여 보강공사도 하고 있다. 올해 주섬주섬은 학교 주변에 쓰지 않는 관사 8채를 셰어하우스로 만들어 더 많은 청년들을 불러들일 생각이다. 또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우실동물숲을 생태테마파크로 더 크게 키워나가려는 작업도 해나가고 있다.
이찬슬 대장은 더 많은 청년마을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려면 “청년마을이라는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청년들이) 놀고 먹는 사업이나, 단순한 커뮤니티 사업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주섬주섬은 가장 오지라서 뽑혔다. (다른 마을엔) 쟁쟁한 운영팀들도 많은데 우린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마을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서 지자체들이 이 사업에 욕심을 내게 만들어야 한다.”
또 지자체들도 지켜만 볼 게 아니라 청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더 많은 자율권과 권한을 줘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두 편의 기사로 살펴본 6개 마을 말고도 지난해까지 모두 15개의 청년마을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더해 올해 5월 12개 마을이 더 뽑혔다. 길어봐야 뽑힌 지 5년밖에 안 된 마을들이고, 이번 기사에서 살펴본 3개 마을은 겨우 1년이 막 지났을 뿐이다.
한해 2억 원에서 많아야 9억 원 정도가 들어가니 동네마다 수백억 원씩 들어가기도 하는 다른 정부 사업들에 견주면 터무니없이 돈이 적게 드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정도의 변화를 만들어낸 청년마을들을 조금 더 응원하고 지켜보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그들의 바람과 당부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지난 정부 사업들은 어느샌가 하나둘씩 사라지곤 한다. 청년마을 사업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지방 소멸’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나라가 늙어가는 속도를 당장 늦추지 못하면 더 큰 위기들이 줄줄이 덮쳐올 게 뻔하다.
그 누구도 해법을 모르는 상황에서 남들이 가려 하지 않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가며 몸소 답을 찾아 나선 청년들에게 부디 더 큰 응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청년마을 실험을 이어온 청년들의 바람대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기업과 로컬 기업 그리고 지역 사회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깨를 걸 때 비로소 암울한 통계에선 기대하기 힘든 조금은 다른 미래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참고 자료]
‘자유도 매거진 STAGE OF FREEDOM'(2021),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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