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나에게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보장해준다면 어떤 집이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들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운영하는 국민임대, 행복주택, 매입임대주택 같은 것을 떠올릴 것 같다. 우리에게 공적 임대주택은 임대차시장에서의 셋방살이 서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로만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공적 임대주택을 공공이 주로 공급하여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걸까.
공적 임대주택은 어떤 재화일까
재화는 그 특성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때문에 공적 임대주택의 공급 주체에 대해 고민해보기에 앞서 공적 임대주택이 어떤 재화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임대주택은 임대인의 재산권 대상인 동시에 임차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주거권의 대상이기도 하다.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임대료를 통제하면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가 침해받고, 임대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로운 계약해지를 허용하면 임차인의 거주안정이 위태로워진다. 이처럼 임대주택은 다소 상충하는 두 가지 권리와 밀접하기 때문에 임대주택만 놓고 보면 이를 사적재(private goods)로만 이해할 수도, 공공재(public goods)로만 이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주택이 가지는 ‘주거권’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해 적정한 공급량을 설정하고 공공재정을 투여하거나 부동산 시장에 개입하는 각종 주거정책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공적 임대주택은 이러한 재화로서의 특성이 더 강하다. 이와 같이 개인적 후생과 무관하게 정부가 사회적 후생을 설정하여 공공정책으로 공급하는 재화를 ‘가치재(merit goods)’라고 한다.
임대주택 자체는 그 재화로서의 특성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공적 임대주택은 공공재정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가치재’로 규정하는 것에 큰 논란이 없다. 공적 임대주택을 가치재로 이해한다면 공공이 주로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는 다른 가치재 공급 제도를 살펴보며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병원, 학교, 사회복지관의 공급 주체
가치재에는 보건의료, 교육, 사회복지, 주거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보건의료, 교육, 사회복지 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공급되고 있을까. 병원, 학교, 사회복지관을 떠올려보자. 동네에서 우리가 흔히 방문하는 병원, 우리 집 옆의 중고등학교, 몸이 아픈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주러 오셨던 사회복지사님을 떠올려보면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지 않는 경우를 흔하게 보아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주로 공공이 운영하는 공공임대를 공적 임대주택으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민간의 병원, 학교, 사회복지관을 가치재로 이용해왔다.
보건의료, 교육, 사회복지 서비스를 민간이 주로 제공하게 된 것은 일제식민지 해방, 6.25 전쟁 등 우리나라가 정부수립 초기에 겪은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정부가 직접 가치재를 공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 공급하기 어렵다고 보건의료, 교육, 사회복지(자선, 구호)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공부문은 민간을 활용해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였다. 대신 정부는 이러한 민간주체들에게 ‘비영리성’을 요구하며 공적인 관리를 받도록 하였다.
「의료법」은 의료인의 품위를 요구하고 의료법인이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여 병원의 ‘비영리성’을 확보한다. 「사립학교법」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사립학교의 회계를 구분하고 회계사용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학교에 ‘비영리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사회복지관은 비영리법인과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할 수 있다. 이때 사회복지법인은 비영리재단법인 혹은 공익법인의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에 ‘비영리성’을 갖춰야 한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보건의료, 교육, 사회복지라는 가치재를 ‘비영리 민간주체’를 활용해 공급하여 더 많은 시민들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적 임대주택은 이와 달리 공공주체가 공급하여 운영하는 공공임대가 많은 물량을 차지하고 있다. 공공지원민간임대와 사회주택 같이 민간주체가 공급하는 공적 임대주택도 일부 공급되고 있지만 그 공급량이 적고 또 민간주체의 비영리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병원, 학교, 사회복지관과는 다르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경로
우리나라의 공적 임대주택은 왜 공공주체가 운영하는 공공임대를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병원, 학교, 해방 후 난민 구호시설을 운영할 여력이 없던 정부가 공적 임대주택은 직접 운영할 수 있었던 걸까.
공적 임대주택을 넓혀 주택이 우리사회에서 공급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민간주체가 활용되지 않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1950년대부터 이미 정부 차원에서 주택문제에 대응하여 주택매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분양주택 공급대책을 추진해왔고 60년대 말부터는 민간건설사들도 여기에 참여했다. 이때 주택을 공급하는 민간주체와 병원, 학교,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민간주체의 차이는 바로 ‘비영리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주거문제는 시민의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공적 관리 하의 비영리 민간주체가 공적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에서 많이 거래될 수 있도록 영리 민간주체를 활용해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대응되어왔다. 그 와중에 임대차시장에서 살아가는 임차인의 권리는 1980년대까지 최소한의 계약기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우리나라 공적 임대주택 정책의 갈림길에서
다시 주택을 공적 임대주택으로 좁혀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에서야 본격적인 공적 임대주택인 영구임대가 공공주체를 통해 공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주택이 사적재로 자리잡은 우리사회에서 뒤늦게 시작된 공적 임대주택 정책은 사회구성원의 40%를 차지하는 임차인들 모두를 포괄하기에는 어려운 정책으로 제도화되었다. 공공주체가 주도적으로 공공임대를 공급해온 것은 단기간에 많은 공공임대 공급이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주거문제에 처한 더 많은 임차가구에게 가치재를 제공하며 사회적 후생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 2000년대 말부터 공적 임대주택 공급에 있어서도 민간주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공지원을 받은 영리 민간임대사업자가 기업형 임대주택(오늘날의 공공지원민간임대)을 공급하고, 사회적경제 주체 역시 공공과 협력하여 사회주택을 공급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민간주체들에 대한 ‘비영리성’은 다른 가치재 공급 주체와 비교해 뚜렷하지 않다. 나아가 기업형 임대주택과 공공지원민간임대의 경우 8~10년의 임대의무기간이 종료된 후 임대사업자가 분양전환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가져갈 수 있어 공공지원의 사유화가 우려되기도 한다.
병원, 학교, 사회복지관에서 가치재를 제공하는 방식은 우리사회의 주거문제도 매매시장에서의 거래가 아니라 권리로서 보장받는 공적 임대주택 확대를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공적 임대주택 공급 주체를 확장해 공공주체는 물론 비영리 민간주체를 활용해 더 많은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될 때 영리 민간주체가 운영하는 민간임대주택도 과도한 임대료를 요구하지 못하고 함부로 임차인을 내보내지 못하지 않을까. 임차인들이 겪는 많은 주거문제를 보다 선순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