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행정에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협력’이다. 우리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문제를 관료제적으로만 혹은 시장주의적으로만 해결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구조를 짜게 된다. 우리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이라고 하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같은 공공에서 운영하는 공공임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공이 영리 민간임대사업자와 협력해 공공지원민간임대를 공급하거나 사회적경제 주체와 협력해 사회주택을 공급한다. 이러한 임대주택 3가지를 공적 임대주택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최근 이슈화된 한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 공공이 영리 민간임대사업자와 협력해 임대주택을 개발‧공급하는 데 과도한 특혜가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공적 임대주택의 트릴레마

사실 우리나라 공적 임대주택은 현재 각 유형별 공급 주체의 특성으로 인해 ‘공급량 확대-입주자 및 지역 맞춤형 주택공급-입주자에의 비용전가 및 공공지원 사유화 방지’라는 서로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3가지 딜레마에 처해있다.

영리 민간임대사업자가 공공과 협력해 공급하는 공공지원민간임대는 일반 민간임대에 비해서는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주택으로 입주자들에게 공동체 활성화, 소모임 활동 프로그램 등의 주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급 주체가 ‘영리’ 주체라는 특성에서 알 수 있듯이 공공지원에 비해 저렴한 임대주택(시세 대비 85~95%)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 2020.10.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에서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8~10년의 임대의무기간이 지난 후 사업자가 공공지원민간임대를 분양전환할 경우 최대 4.3배의 수익을 가져갈 것으로 나타났다.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지원이 사유화될 우려가 큰 것이다.

그러면 공공지원의 사유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주체가 모든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우리의 주거문제 해결에 효과적일까. 분명 공공임대는 저렴한 임대주택을 입주자에게 비용전가 하지 않고 많이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LH와 일부 지방공사 같은 소수의 공공주택사업자가 공급하여 운영하다 보니 입주자 대상 주거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의 노후화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에 처한다.

공공과 사회적경제 주체가 협력해 공급‧운영하는 사회주택은 입주자에게 비용부담을 전가하지 않고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여 주거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의 노후화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 이는 공공지원민간임대와 공공임대의 한계를 다소 보완하는 것이지만 사회주택은 공공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많은 공급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공적 임대주택의 트릴레마를 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특수한 맥락이 있기 때문에 해외사례가 꼭 정답은 아니지만 해외사례로부터 우리가 보지 못한 함의를 도출해 공적 임대주택의 과제를 풀어가기 위한 방향성을 고민해보자.

해외사례에서 우리나라의 공적 임대주택, 혹은 더 좁게는 공공임대에 해당하는 정책은 사회주택, 이윤을 제한하는 주택, 저렴임대주택, 공공주택, 정부보조주택, 비영리주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처럼 각 나라들의 역사적 경험과 배경에 따라 정책의 이름은 다르지만 OECD 등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통상 ‘사회주택(social housing; 우리나라 사회주택보다 광의의 의미를 지닌다)’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공적 임대주택이 처한 트릴레마 중 공급량 문제에 집중해 사회주택을 많이 보유한 나라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주로 다수의 민간주체가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나라들로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가 있다. OECD가 2021년 발표한 사회주택 재고율 자료(2020년 및 최근 연도 기준으로 수집)에 따르면 영국은 16.7%, 오스트리아는 23.6%, 네덜란드는 34.1%의 재고율을 보인다. 이 중 영국에서는 사회주택 재고의 62.0%를, 오스트리아에서는 73.0%를, 네덜란드에서는 100.0%를 민간주체가 공급하고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공적 임대주택의 대부분을 공공임대로 공급하고 있다. 공공임대의 재고율은 2021년 8.0%에 도달했고, 2019년 기준으로 공공임대의 89.7%는 소수의 LH와 지방공사들이 공급하고 있다. 해외사례와 우리나라 사례의 이러한 차이는 더 다양한 민간주체가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 저렴한 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나아가 주체가 다양화되면 1개의 주체가 담당하는 입주자의 수가 줄어들어 그만큼 주거서비스를 제공하기 용이하고 또 지역 기반 주체를 활용해 지역 노후화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되는 것은 민간주체가 공공지원을 사유화하고 입주자에게 각종 비용부담을 전가하여 임차인의 주거안정이 저해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해외사례들은 이러한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사회주택 공급 주체 제도의 공통점 : 비영리성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공급 주체 제도를 좀 더 살펴보면 영국은 등록공급자(Registered Provider; RP)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택을 지어 운영하는 비영리조직, 영리조직, 지방정부는 등록공급자로 등록할 수 있는데 이때 비영리조직은 물론 영리조직도 사회주택 사업에 대해서는 이윤을 배당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이익제한주택협회(Limited-Profit Housing Associations; LPHA), 영리사업자, 지방정부가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는데 53.5%의 재고를 이익제한주택협회가 운영하고 있다. 이익제한주택협회는 준비금 외에는 법정이율(3.5~5.0%)을 초과하여 이윤배당할 수 없고 사회주택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사회주택의 대부분을 주택협회(woningcorporaties)에서 공급하여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해외사례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임대시장의 주택에 주거환경에 따라 점수를 매겨 그와 연동한 임대료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주택점수제에 따라 영리임대인의 민간임대주택도 임대료를 통제받고 있다. 주택협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임대료 상한규제를 받지 않는 일정 점수 이상의 주택에 대해서도 주택점수제에 따른 상한선 대비 70%로 임대료를 책정하고, 또 사회주택 사업에서 발생한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있다.

정리하면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서 주로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주체들은 공통적으로 비영리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사회주택 사업을 통해 이윤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배당하지 않고 입주자 및 입주예정자들을 위해 재투자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적 임대주택의 트릴레마 중 나머지 한 가지인 ‘입주자에의 비용전가 및 공공지원의 사유화 문제’까지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공적 임대주택 공급 주체 상상해보기 : 비영리 민간사업자

사회주택 재고율이 높은 해외사례들은 우리나라 공적 임대주택이 처한 3가지 딜레마를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로 ‘민간’과 ‘비영리성’이다.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체가 보다 다양해질 때 그 공급량도 늘어나고 정책의 질적 개선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들이 비영리 주체이면 입주자들은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수 있고 입주자를 위한 공공지원도 사유화되지 않을 수 있다.

기존의 공공주택사업자, 공공지원민간임대 임대사업자, 주거관련 사회적경제 주체를 넘어 다양한 비영리 민간사업자가 공공주체와 함께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면 어떤 사회가 될까. 비영리 민간사업자들은 경직적인 공적 임대주택 공급 구조에서 벗어나 세대별 다양한 형태의 가구, 장애인, 1인 가구, 비혼가구, 예술인, 연구자 등 다양한 주거소요에 맞춤형 주택을 공급하고 해당하는 입주자들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또, 도시를 쇠퇴시키는 저층주거지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지역주민과 임차인들의 주거소요에 적합한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해 도시를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해진 비영리 민간사업자만큼 공적 임대주택이 늘어나 우리사회의 40%를 구성하는 임차인들이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이제까지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민간주체를 활용하는 방식은 공공의 재정부담을 민간자원을 통해 줄이는 방식이었고 이러한 정책적 동기는 공공지원의 사유화 문제를 낳았다. 임차인이 가장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공적 임대주택인 공공임대가 많이 공급될 수 없었던 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충분한 재정을 공공임대 정책에 투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 민간사업자를 활용해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정부의 재정부담을 완화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수는 없기 때문에 기존 공공주택사업자와 동일한 공공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공적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재정투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 역시 새로운 주체와 더불어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