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밥상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 쓰며 살아가는 현대사회다. 정부는 영양 좋은 식사를 위해 친환경 인증을 제공하고, 현대인은 인터넷과 마트를 통해 조금 값비싸더라도 유기농, 무농약 식자재를 사 먹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만으로, 혹은 영리 시장만으로, 믿을 수 있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리네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는 대안을 찾아 자연드림(아이쿱), 한살림, 두레생협 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즉 사회적경제 부문을 이용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일상에서 먹거리만 문제겠는가. 먹거리만큼이나 중요한 살자리, 즉 우리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가뭄 속 사회주택 실험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각종 예산 삭감으로 정부와 영리 민간 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가뭄과 같은 시기를 보냈다. 주택 버전의 사회적경제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택도 그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시장과 임대주택 사업이 침체하면서 비교적 영세한 사회주택 사업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뭄 속에서도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수원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 해결 과정에서 협동조합 실험이 이뤄진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주축으로 설립한 탄탄주택협동조합이 피해 주택을 인수한 후 이를 10년 장기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하고 피해자들에게 임차하여 피해 보증금의 90여%를 보전하였다.
다시 주목하는 사회주택
우리나라의 사회주택과 비슷하게 미국에서는 CDC(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s)라는 비영리 조직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 운영한다. 관련 연구는 CDC에 대한 공공지원이 필요한 이유로 CDC의 4가지 특징을 강조한다. 우선, CDC는 저렴 임대주택을 공급해 장기 운영하고자 하는 미션을 명확히 보유하고 있고, 또 지역사회 기반의 사회서비스를 물리적 집에 결합해 입주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며, 입주자와 동네 주민이 참여하는 주택을 실천한다. 게다가 공공부문(PHA)의 신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없는 미국의 상황에서는 CDC가 사실상 저렴 임대주택 공급 확대의 유일한 수단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관련해선 LH의 역할이 강한 우리와 상황이 다르지만, CDC 지원의 근거가 되는 이 비영리 조직의 특징은 우리네 사회주택 사업과도 비슷하다. 사회주택은 입주자에게 6~10년의 거주기간과 시세의 50~80% 수준의 주거비 부담으로 집을 제공하며 저렴 임대주택을 장기 운영하고자 하는 미션을 뚜렷이 하고 있다.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으로 알려진 남양주 별내와 고양 지축의 위스테이 사례는 주택 건설 단계에서부터 입주자가 참여하는 협동조합 모델을 통해 공급 비용을 낮추어 저렴성을 실현하기도 했다.
또, 사회주택은 주택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입주자와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를 결합한다.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와 함께주택 협동조합은 그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주거 공동체를 통해 육아 문제, 값비싼 주거비 부담 등을 해결하고자 했다. 심지어 이들의 실험은 집을 넘어 마을로 확장돼 마을 공동체를 조성했다. 앞서서의 위스테이 사례는 우리네 주택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파트에 공동체를 결합해 입주자 삶의 질을 개선했다.
이외에도 사회적경제는 도시쇠퇴 해결을 위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두꺼비 하우징과 선랩건축사사무소는 방치된 빈집, 고시원, 모텔 등을 재생하여 주거 문제를 겪는 노인, 청년 등을 위한 집으로 공급했다.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집, 일상에서 필요한 공동체와 사회서비스, 그리고 도시의 낙후 문제와 같이 기존에 사회주택이 나름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해 온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다. 모든 사회 문제를 자본주의 논리로 해결할 것 같은 미국에서조차 CDC와 같은 비영리 조직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에 대응한다. 가뭄과 같았던 지난 시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경제는 여전히 우리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카드인 거다.
민간임대 정책에서 사회주택 제대로 써먹기
2024년 8월 정부는 서민, 중산층, 미래세대 주거 안정을 위한 새로운 민간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며, 최초 계약시 임대료 규제 및 임대료 인상률 제한과 같은 기존 민간등록임대주택의 공공성을 완화하고 세제 감면, 전용 PF 보증, 택지 제공 등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또, 자금 조달 다양화 차원에서 임대주택 리츠 주식을 임차인에게 우선 제공하고, 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의 장기민간임대주택 직접 보유를 추진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주택 공급은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제한된 공공 자원 안에서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해 장기적으로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것 역시 필요할 수 있다. 2024년 8월 이후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기에 이른바 새로운 민간 장기임대주택이라는 이전 정부 사업의 동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민간임대주택 공급 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와 같은 정책 방향 속에서 잃지 않아야 하는 주거 안정 지표는 저렴함과 장기거주 보장이다.
사회주택 사업자가 지닌 저렴성과 장기거주 보장, 그리고 커뮤니티 활성화에 관한 미션은 민간임대 정책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미 과거 대형 사업자의 배 불리기가 되리라 우려를 낳았던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모델과 사회적협동조합 모델을 결합해, 입주자 참여를 통한 저렴성 실현과 공공지원 회수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임대사업 모델을 제시한 사회주택 사례가 있다. 바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 아파트인 위스테이다.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이 붙어 개중에는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사실 어떤 이름을 붙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입주자가 직접 출자에 참여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과 입주자에게 배당하지 않는 사업구조를 전제로 더 많은 정책 융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의 공공지원민간임대 사업에 무배당 입주자 출자를 결합하는 것인데, 이는 수익 목적의 투자 대신 실수요자의 출자를 유인해 주거 문제 해결이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책이 도와주는 동시에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주택 공급이 지속가능하도록 하고, 주택시장 과열기에는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여 안정성이 높은 공급 정책으로 기능할 수 있다.
공공지원을 제공하는 정부와 지자체로서도 사업 초기에만 출자 및 융자를 지원하고 이러한 공적 자금 투입이 민간의 과도한 이익으로 전용될 우려 없이 조기에 회수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여기에 더해, 기존에 대규모 택지를 중심으로 공급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을 도심 낙후 지역과 저층 주거지에서의 공급으로 확장한다면 무배당 출자 참여 입주자의 부담을 줄이고 도시의 활기를 되살리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의 안전한 먹거리 공급에 기여하는 생협과 같이 사회주택을 잘 써먹으면 영리 사업자 중심일 것만 같은 민간임대 사업에서 제3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임대 정책에서 사회주택 제대로 써먹기
또, 사회적경제 주체는 저소득층과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인 공공임대 중 매입임대주택 사업에 주택 설계 단계부터 임대 운영까지 참여하며 공공임대 거주자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있다. 이른바 특화형 매입임대주택 사업으로 올해 6월에도 경기주택도시공사가 이 사업에 참여할 사업자를 모집하였다.
우리나라 공공임대는 1980년대 말에야 뒤늦게 시작된 주거복지 정책으로써 빠르게 대량 공급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 중심의 중앙집권적 공급 및 운영 시스템을 보인다. 이는 비교적 단기간에 높은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달성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정된 위치로 인해 지역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 주택의 특성, 지역별로 다양한 수요자 특성에 대응하기에 과점 시장 구조의 공공임대 공급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특화형 매입임대주택 모델은 이와 같은 기존 공공임대 정책의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이다.
공공주택사업자와 사회주택 사업자의 협력을 통한 특화형 매입임대주택 사업은 2020년 이후 꾸준히 확대되었고, 사회적경제 주체들에게 가뭄과 같은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공공임대 정책을 개선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만, 과제가 없는 건 아니다. 2025년 상반기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모한 특화형 매입임대 사업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만, 최종적으로 선정된 사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사업 진행에 많은 협의와 시간이 소요되는 민관협력 사업이 단기간에 확대되어온 부담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사진 1>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새사주는 2025년 6월 장애인-비장애인 소셜믹스 특화형 매입임대주택인 여기가를 공급하였다. (출처: 프리웰)
잠시의 멈춰 섬에도 불구하고 공공임대 정책에서의 공공과 사경의 협력은 공공임대의 물리적 관리와 운영, 입주자 서비스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특화형 매입임대 사업 공모 및 선정, 관리를 위해 중간 조직을 마련하는 등 기존의 협력 체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매입임대 사업에만 한정된 공공-사경 협력을 공공건설임대 사업으로 확장하는 실험도 가능하다. 나아가 한 채의 매입임대주택에서만 입주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특화형 매입임대와 주변 공공임대를 연결하고, 특화형 매입임대를 운영하는 사회적경제 주체의 지역 자원을 연결해 마을 단위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도모하는 구상도 최근 검토되고 있다. 딱딱하고 경직된 이미지의 공공임대 정책 역시 사회주택을 잘 써먹음으로써 입주자 대상 서비스 개선 및 동네 활성화라는 새로운 장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택 모델 인큐베이팅
주거 안정 실현을 위한 제3의 길로서 사회주택을 써먹는 방안들을 살펴봤다. 아직 발아 단계일지라도 사회주택을 활용해 긍정적 효과를 창출한 일부 주택 사업 모델과 정책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논의라고 하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는 사회주택의 특수성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수용이 요구된다.
민간임대 정책에서 사회주택을 잘 써먹는 모범이 된 위스테이 사례는 이미 2020~2021년부터 주택이 운영되고 있지만, 그 모델을 확산시키지 못했다. 현장의 사회주택 사업자들은 제2, 제3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협동조합과 같은 특정 부문이나 사업자에게 특혜(?)를 줄 순 없다는 일선 관료들의 반응을 마주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한 가지 오해는 바로 잡아야 할 듯하다. 사회적경제 주체 또는 사회주택은 특정 세력이라기보다는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집을 공급, 운영하는 미션을 가지거나 입주자와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지향하도록 설계된 제도 틀이다. 협동조합 기본법이나 사회적기업 육성법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은 특정 세력에 대한 특혜 시비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미션을 가진 틀 거리가 우리네 민간임대와 공공임대 정책을 개선하고 시민의 주거 안정에 기여하는지여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회주택이 가진 제도적 특징은 기존의 영리 민간 주택 사업과 분리해 인큐베이팅할 가치를 지닌다.
저층 주거지에서의 오랜 주택경기 침체, 날이 갈수록 오르는 건축비, 유동성 축소와 전세사기 등의 영향으로 인한 월세의 증가와 상승이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요즘이다. 사실 일부 지역시장에서는 이미 사회주택과 같은 대안 모델보다는 긴급히 공공임대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주거비가 오르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저렴 주택을 공공임대로 공급할 수 없고 또 아직은 주거 위기 사이렌이 울리지 않은 지역시장과 지역 수요도 있다. 사회주택을 적절히 잘 써먹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장기적인 주거 안정을 실현할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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