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elessness”는 미국 언론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cluelessness”는 어떤 것에 대한 “지식도, 이해도, 그리고 능력도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제롬 파월(Jerome Powell)을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으로 지명하였다. 파월 역시 트럼프의 이미지인 “cluelessness”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러나 파월이 “cluelessness” 평가를 받은 것은 트럼프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cluelessness” 평을 받을 만하다는 측면에서 과도하지 않다. 파월은 아버지 부시(George HW Bush: 재임기간: 1989.01~1993.01) 행정부 출신이고, 백악관에서 나와서는 1997년에서 2005년까지 사모펀드 기관인 칼라일(Carlyle Group)에서 파트너로 일했다. 그리고 오마바 대통령 당시에 연준이사회 이사로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일해 왔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가 경제학적 지식은 물론이고 경제 정책 담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미국 언론의 평가는 과하지는 않다. 물론 칼라일과 연준 이사로 재직하면서 경제에 대한 식견을 펼쳤을지 모르지만, 연준의장은 정부의 재정정책과 더불어 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통화정책의 수장이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이고 특별한 지식과 수행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파월의 경력이 수준미달이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칼라일은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투자회사인데, 세계 3대 사모펀드회사 중 하나로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한미은행을 사들여 8,000억 달러의 막대한 이익을 냈던 대표적인 외국 투기자본으로 분류된다. 아버지 부시뿐 아니라 아들 부시 대통령도 칼라일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원래 군수산업업체로 1987년 설립된 사모펀드인 칼라일은 미국 정계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한 인물들이 대거 함께 했던 기업이다. 칼라일을 추적했던 이정환 기자에 따르면, 칼라일의 임원들의 이력은 대단히 화려하다.

“제임스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오사마 빈 라덴의 이복형인 샤피크 빈 라덴도 핵심 멤버다. 이밖에도 아서 레빗 전 미국 증권거래위의장, 토마스 맥라티 전 백악관 비서실장, 루이스 텔레즈 전 멕시코 에너지 장관 등이 활동하고 있다.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도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현직 미국 대통령도 칼라일의 투자회사에서 사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 가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왕족과 친밀한 사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군수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답게 칼라일은 이라크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는 칼라일 고문 자격으로 이라크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 다녀간 바 있다.” – 이정환, 이정환 닷컴,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한미은행을 덮치다>, 2006.4.4.

이런 측면에서 파월의 연준의장 지명은 미국 공화당 권력과 글로벌 투기자본의 결합을 공공연하게 개시하는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칼라일 같은 사모펀드가 돈을 버는 방식은 단기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것으로 한미은행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당 기업과 국민경제에 좋다고 할 수 없다. 칼라일이 기업을 인수하여 돈 버는 방식은 비교적 간단한 구조다. 인수한 기업의 부동산 등을 매각하여 현금화하고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여 기업의 현금유동성을 한껏 높인 다음 매각하여 더 이상 해당 기업이 존속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전락시킨다. 먹튀자본, 투기자본이라고 우리 언론들이 불렀던 것이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의 주류 경제학에서도 파월 새 지명자에 대한 불만이 높다. 백번 양보하여 민간기업이 그러한 활동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수행한다면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연준의장 자리는 세계경제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어서 상황은 꽤 심각한 편이다. 선거 당시부터 자넷 옐런 현 연준의장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일삼아 왔던 트럼프가 재신임하지 않고 새 연준의장을 지명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지만, 파월 같은 인물을 지명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미국 측 분위기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였다는 것이 중평이다.

현재 연준은 안팎의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자넷 옐런의 후임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 미국 금융학계의 원로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 건강을 이유로 조기 퇴임한 점, 연준의 3대 권력으로 불리는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수장인 윌리엄 더들리 총재가 파월 지명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는 점은 현재 연준이 직면한 인사 관련 리스크다.

통화정책 관련 리스크는 더 크다. 금융위기 당시 연준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수요측에서 발생했다고 파악하고, 모기지증권들을 직접 매입해 주면서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의 불안을 잦아들게 했다. 그 결과 당초 8,500억 달러였던 연준 대차대조표가 현재 4.5천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연준은 이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계획이다.

연준이 보유한 민간 파생금융상품이 풀릴 경우, 그리고 더 이상 민간금융기관의 파생금융상품을 사주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원래 연준이 금융파생상품을 사 줄 당시 판단은 훨씬 낙관적이었다.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민간 금융기관의 금융상품을 사주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지금은 휴지조각이어서 금융기관을 파산에까지 내 몰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중에 시장이 안정화되고 이들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민간 수요가 올라가면 시장에 매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이 그 시점인가는 불투명하다.

금리인상도 마찬가지이다. 금리인상과 관련해서는 더 복잡한데, 금리인상의 폭, 속도 그리고 코리도 시스템(corridor system) 같은 전례 없는 기준금리 관리 메커니즘까지 새 연준 지명자가 감당해야 사안들이 그리 만만치 않다.

트럼프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였던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 법안(도드-프랭크 법)을 해체시키고자 여러 번 시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이 같은 조치가 미국을 다시 금융위기로 내몰 것이라는 예측이 거의 정설처럼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