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현장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인터뷰, 현장 답사 및 관찰 등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본 글은 새사연 정회원 황서연님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저소득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적정 주거지를 발굴하기 위해 시민, 시범, 맨션, 상가아파트 등 1세대 아파트의 현장을 답사했습니다. – 편집자 주
지난 1편에서 밝혔듯이 청량리 부흥주택을 다녀온 이후 눈에 띄는 1세대 아파트의 위치와 특징을 무작정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입지나 가격 등 1세대 아파트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보다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1세대 아파트가 어떤 곳에 얼마만큼 있는지 상세하고 확인하고 싶어 문헌조사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헌조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참고한 자료로 ‘1세대 아파트 탐사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장림종, 박진희(2009)의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와 한국전쟁 이후 서울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 증언한 손정목(2003)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가 있었습니다. 전자의 연구가 1세대 아파트라는 나무를 보게 해주었다면, 후자 의 연구는 서울이라는 숲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먼저, 1세대 아파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습니다. 하지만, 1세대 아파트라는 용어를 빌려 쓴 장림종, 박진희(2009)의 경우 ‘1세대 아파트’에 대해서 별도로 개념정의를 하지 않고,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민간에서 중·소규모로 건설한 다양한 아파트’를 지칭하는 수준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를 그대로 인용해서 사용하기에는 공공에서 건설한 아파트(시민, 시범아파트)가 배제된다는 점이 우려되었고, 저자들의 논의가 사용가치보다는 미학적, 건축학적 가치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조작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주거지로서 사용가치를 중심으로 논의하기 위하여 1세대 아파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1세대 아파트 : 서울에서 1960년대, 1970년대에 공공 또는 민간에서 건설한, 2016년 현재도 주거지로서 기능할 수 있는 아파트
다음으로 1세대 아파트를 다루고 있는 다른 문헌들까지 검토해보니, 연구마다 1세대 아파트를 분류하는 기준을 매우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종합해보니 시민아파트, 시범아파트, 맨션아파트, 상가아파트의 크게 4가지 분류가 현존하는 1세대 아파트를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분류라고 판단했고, 이 기준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각종 문헌을 종합하여 유형별로 조사 대상 아파트 목록을 작성하고, 인터넷 자료와 현장 실사를 통해서 파악한 현존 규모 등 종합적인 조사 결과는 다음 표와 같습니다.
시민아파트 : 아파트를 통해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먼저 공급규모에서 다른 모든 1세대 아파트를 합산한 것보다 많이 공급되었던 시민아파트의 배경에는 1960~1970년대 급속한 서울의 도시화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1960년에 245만 명이었던 서울의 인구는 1970년에는 553만 명으로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하였고, 1980년에는 무려 835만 명에 이르며 이 기간 동안 연평균 29.5만 명씩 증가하였는데 이는 2015년 기준으로 매년 전라북도 익산시(301,723명), 경상남도 양산시(297,532명), 경기도 군포시(285,721명) 규모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이 공급되어야 했었던 상황인 것입니다.
당시 서울시장으로 재임 동안의 엄청난 추진력으로 인해 ‘불도저 시장’이란 별명이 있었던 김현옥 시장은 특단의 대책을 내세우는데, 그것이 1969-1971년의 3년 동안 2,000동 건립을 목표로 한 시민아파트 건립 계획이었습니다. 시민아파트 건립이라는 정책에서 획기적인 측면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단독 및 연립식의 주택 건립에서 아파트식 주택 건립으로 전환하여 대량 주택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파트식 주택으로 영세민들의 주거 문제부터 해결해 나간다는 것입니다.(장림종, 박진희 2009) 그런데 문제는 시민아파트가 프레임식 즉, 프레임만 시의 자금으로 건립하여 분양한 후 나머지는 입주자 스스로가 지어나가는 방식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목적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대한의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과 주택을 마련할 자금이 부족한 영세민에게 집을 마련하는 기회를 준다는 데 있었으나, 당시 시민아파트의 부지가 대부분 무허가촌을 철거하면서 생긴 산 중턱의 자리를 활용하였음에도 측량과 지질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최소한의 예산에만 급급하다보니 부실공사가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1970년 4월 8일 오전 6시 30분 경 마포의 와우아파트 15동이 무너져 입주자 70명 중 32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아래에 있던 판잣집을 덮쳐 1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장림종, 박진희 2009)하며 김현옥 시장이 물러나게 됩니다.
서울시의 자료에 따르면 시민아파트는 총 32개 지구 434동 17,402호가 건립되었는데, 2016년까지 존재하는 곳은 회현제2시민아파트 1개 지구 1동 352호가 유일합니다. 와우아파트 붕괴참사로 상징되듯이 대다수의 시민아파트가 부실공사로 시공된 경우가 많아 일찌감치 철거된 것에 비해,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와우아파트 붕괴참사 이후에 시공되어 상대적으로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장림종, 박진희 2009)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민아파트도 준공(1970년)된 지 40 여년이 넘어 안전정밀진단에서 재난안전시설로 분류되는 D등급이 나와 보수나 철거 등 당장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에 부딪치자 2016년 9월, 서울시는 회현제2시민아파트를 리모델링하여 예술인을 위한 집이자 작업실로 장기 임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울시가 상의 없이 리모델링을 결정했고, 리모델링에 따른 이주보상책도 비현실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난항에 빠진 상황입니다. 현재 퇴거를 위한 보상협의가 이뤄지고 있고, 신규 입주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회현제2시민아파트를 청년주거지로 활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에 민·관 협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장 사진을 포함한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의 pdf 파일을 다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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