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이하 FOMC) 회의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늘어난 민간회사 채권과 모기지 증권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부정적이다. 여기에 더해 긴축으로 돌아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며, 경제전망도 경우에 따라 후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 연준의 정책 행보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연방기금시장목표금리(FFR) 인상 “시점”에 맞춰져 있었다. 기준금리의 속도와 폭도 중요하지만, “시점”이 워낙 중요해서 다른 중요한 정책 행보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준의 대차대조표 정책이다. 양적완화 정책도 대차대조표 정책 중 하나인데, 그동안 우리는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서 돈을 뿌렸다는 사실에만 주목했지 양적완화 결과 연준의 대차대조표 구성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
연준은 1953년 이래로, 연준 자산의 대부분은 미 재무부 단기국채로 보유하는 단기국채매입주의(T-bill doctrine)를 원칙으로 고수해왔다. 이 때문에 연준 자산의 80%-90% 가량 미 재무부 단기국채였다. 그러나 2008년 위기 대응 과정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 한 결과 단기 국채 보유 비율이 35%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빠진 부분은 다른 자산으로 채웠는데, 바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모기지 증권이다. 현재도 약 45% 가량이 모기지 증권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이런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은 공급 측 문제(모기지 파생상품을 판매한 금융기관)가 아니라 수요 측 문제(모기지 파생상품이 판매되지 못한 것)로 보고 연준이 이를 사주면 위기의 원인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나중에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연준이 매입한 모기지 파생상품을 시장에 다시 내놓고, 연준은 금융 위기 이전의 대차대조표 상태로 돌아간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3월 FOMC에서 나온 대차대조표 축소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최근 미국의 경제 사정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고용 지표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방기금시장목표금리도 올리고 점차 과열을 걱정하는 정책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차대조표 정상화는 쉽지 않고, 시장에 부담을 주는 것이어서 상당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정책 조치인 탓에 쉽사리 손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대차대조표는 당분간 손대지 않겠다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 바로 뉴 노멀(New Normal)이다. ‘새로운 정상’이라는 낱말이 담고 있는 뜻은 정상적인 상태로 정책 처방을 되돌려야하지만 대차대조표는 그대로 놔두자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3월의 결정은 뉴 노멀을 노멀로 돌리자는 뜻이었다.
역사적으로 1929년 미국 대공황은 뉴딜 정책과 태평양 전쟁 참전을 계기로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1937년~1938년 다시 침체로 빠져드는데, 여러 이유 중에서 연준의 정책 실패로 지적받는 사항이 바로 지급준비율 인상이다. 당시 연준은 미국 경제 상황이 대공황의 위기에서 빠져나왔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은행이 적립해 놓아야 할 지급준비금을 초과해서 쌓아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여유가 있다고 판단해서 지급준비율을 인상한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법에서 정하는 규모 이상으로 쌓은 것은 1) 경제 위기가 사라지기는 하였으나 아직 기업 대출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보수적 태도 2) 언제 또 다시 경제위기의 불씨가 살아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연준은 은행의 이런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급준비율을 인상하였고, 곧바로 경기침체로 돌아서는 실수를 한 것이다. 물론 연준 FOMC의 3월 결정이 1937년 정책 실패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경제가 확실히 대자대조표 축소를 견딜 수 있는 상황인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금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금융 위기 이후, 유명해진 경제학 개념 중 하나가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이다. 로렌스 서머스에 따르면,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는 경제가 항상 침체상태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통화정책을 통해 침체를 성장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나 이 경우 상당한 정도의 금융 불안정을 대가로 치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연말에 FOMC가 실제로 대차대조표 축소를 통한 정상화를 단행할지 말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려놓은 경제가 다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정도의 정책 처방은 완벽한 확신이 없다면 시도하지 않는 편이 합리적이다. 한편 FOMC의 대차대조표 축소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다는 것과 더불어 금융 안정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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