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언젠가부터 이 속담은 청년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말로 쓰인다. 청년들이 더 이상 고생을 사서 할 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 대다수의 청년들은 높은 학비를 감내하면서 ‘일 반, 공부 반’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마친다. 그러나 졸업조차도 취업준비를 위한 휴학과 취업 실패로 유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부모세대보다 늦은 나이까지 부모님의 그늘에 있거나, 청춘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통해 각박한 취업 시장의 경쟁에서 자리를 잡으려 발버둥 친다. 한편으로는 취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청년들이 저임금 인턴이나 비정규직 등의 좋지 않은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심화되는 청년들의 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정권들 모두 다양한 정책을 선보였다. 하지만 단기적 시각으로 수치적 정책 효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불안정한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에 공감 없이 정치인과 기성세대들의 자위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정책들은 전보다 많은 수의 청년들을 취약계층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였다.

이 시대는 청년들을 ‘포기하는 청년’으로 지칭하지만, 연대를 통해 만나본 청년들은 강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거나 소박하지만 꿈을 이루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는 청년들이 곳곳에 있다. 또한 운동을 통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공간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나아가 열악한 주거,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등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을 그들만의 재치로 사회와 공유하고자 다방면으로 표출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의 촛불‘시위’ 현장을 촛불 ‘축제’처럼 만든 것도 그들이 아니었던가. 덕분에 더 이상 청년들의 힘든 상황을 ‘젊다면 당연히 겪어야 할’ 통과 의례가 아닌 미래와 직결되는 사회문제 중 하나로 보게 되었다. 청년수당, 청년허브, 청년협동조합주택 등의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던 제도들이 전국 지자체 단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예’라고 하는 사람

모두가 인턴과 해외 취업, 창업으로는 청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 때, 소신 있게 이전 불통정권들을 오마주하는 대선주자가 나타났다. 청년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인턴을 늘려야 한다(1월 13일).”고 말하고, ‘청년과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대학교를 찾아가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만큼 해외로 진출하고, 정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했으면 한다(1월 18일).”고 말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하 전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든 부처가 함께 노력해서 우선 7만 개의 청년 인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2009년).”고 한 것과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가 텅텅 빌 정도로 중동에 가서 노력해보라(2015년)”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전 총장은 청년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대장장이라도 될 셈인가.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18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청년들이 ‘글로벌 스탠다드한 시야’를 갖고 ‘스피릿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자원봉사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프레카리아트 증가와 저임금 문제로 우려가 큰 국제사회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역임하고 있던 2015년, 유엔 사무국에서 무급인턴으로 근무하던 청년 데이비드 하이드는 사무국이 위치한 제네바의 높은 물가에 집을 얻지 못하고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인턴직을 수행했다. 데이비드 하이드의 일화를 통해 유엔에서 무급인턴을 선발할 때 실제로 경제적으로 무급인턴 생활이 감당 가능한지를 물어본다는 사실과 이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인턴들이 매년 다수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자 세계 언론은 유엔의 인턴제도를 비난했고 인턴들도 파업을 감행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1996년 131명이었던 무급 인턴이 반기문 총장의 재임 중인 2014년 기준으로 4,018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1) 반기문 전 총장이 무급인턴 제도를 유엔에 도입한 총장은 아니지만, 규모를 키우고 상황을 심화시킨 유엔총장이라는 평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유엔 사무총장 재임시절에서 연장된 생각이라면, 이 시대 청년들이 취업시장에서 갖는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또한 젊다는 이유로 불안정한 일자리와 저임금의 청년을 착취하는 구조를 감수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분위기를 강화시킬 것이다.

취업 실패 청년은 패자가 아니다

한 번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되므로 ‘패자부활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반 전 총장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럽다. 실패를 경험 한 사람을 ‘패자’로 보는 시각은 청년과 공감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루어낸 성과가 과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개인의 노력의 결과물임을 강조하고, 피난지역의 어려움과 국내 청년들의 상황을 비교하며 한국 청년의 상황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 성패가 좌우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짐작된다. 세대가 다르고 목표가 다른 사람에게 동병상련의 자세를 바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국제 조직의 대표 자리에 있었던 인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자세도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계층의 어려움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진심이 있는 대표를 원한다.

 

1) 한경돈, 오마이뉴스, <청년실업 해결하겠단 반기문, 근데 왜 그러셨어요>, 2017년 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