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년 전,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큰 외침과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1886년 5월 1일의 미국에서 있었던 파업집회이다. 당시 미국 내에서 만연해 있던 장시간 노동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시카고의 미시건 거리에서 8만여 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이 집회에 참여 하였다.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창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국가는 발포로 대응하였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았던 이들의 단결투쟁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후 5월은 ‘May Day(노동절)’, 국내의 경우 ‘근로자의 날’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2018년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본 칼럼에서는 근로자의 날에 대한 역사 및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 시대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국가기록원에 기록된 국내 근로자의 날에 대한 역사는 1957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의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1963년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바꾸었고, 1994년 개정을 통해 현재와 같이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로 지정되었다. 이는 ‘근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며, 근무의욕을 제고하기 위해’ 제정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오래된 질문을 하나 꺼내올 수 있다. 왜 우리나라만 ‘노동자(勞動者·laborer)’가 아닌 ‘근로자(勤勞者·worker)’의 날인 것일까. 이 낡은 질문은 지난 3월 20일 조국 민정수석이 ‘근로’를 ‘노동’으로 용어를 대체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개헌안 내용을 발표 한 이후 재조명 받고 있다. 현재 국내 노동관련 법률은 대부분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있고, 해당 법에서는 근로자를 공식 법률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는 노동자 측에서, 근로자는 법률관계자 및 사용자 측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용어에 대한 가치의 중립성 측면에서 본다면 근로자와 노동자에 대한 용어의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돕기 위해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칼럼 “

[시론]‘근로자’를 ‘노동자’로 바로 잡아야(경향신문, 2015.04.30.)”를 통해 제시한 근로자를 노동자라는 용어로 바꾸어야 하는 것에 대한 세 가지 근거를 요약해 보았다.

해당 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근거는 용어 측면의 불합리함이다. ‘부지런한 근(勤)’이라는 한자가 ‘일할 로(勞)’를 만나 만들어진 ‘근로’는 부지런히 노동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사용자와 달리 가치개입적인 용어이다. 갑을관계에 있어서 주체의 명칭은 일단 가치중립적으로 대등한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에게 종속된 의미가 있는 근로자보다는 일을 통해 상품 및 용역을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가치중립적 의미를 가진 노동자가 더욱 맞는 용어인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법은 갑을 사이에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라는 용어를 통해 을에게만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라는 의미의 족쇄를 채운 것에서 근거를 찾았다. 이는 법률 스스로의 배임상태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근로’는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을 동원되는 사람들에게 사용한 미화해서 사용하고자 한 용어이기 때문에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해당 한자어는 중국과 대만은 물론 일본 노동법에서도 삭제된 용어이며, 한국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면 국가기록원에 게시된 근로자의 날의 제정 목표는 노동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계약관계가 성실히 이행됐음을 치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즉, 노동자들과 사용자들, 갑을 사이의 계약관계 안에서 노동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충분히 혹은 그 이상으로서의 노동력을 제공한 것에 대해 위로하였으니 ‘더 부지런하게’ 노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노동절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을 기념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노동자가 경제와 이윤 사이의 소모품이 아닌 인간답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것을 잊지 않고자 노동절을 기억하고 여러 행사를 통해 재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고용체계가 복잡하게 변화하면서 노동자들은 일을 통해 자신의 인간다움을 찾기에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 하나의 대표적인 예시로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관계의 불안정성 때문에 저임금 및 작업장 내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특히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비정규직 일자리가 만연된 형태를 보여 사회 양극화 문제도 더불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과 SNS 등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급격히 성장 중인 긱(gig) 혹은 플랫폼(platform) 노동의 증가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플랫폼 노동은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은 없지만, 배달앱이나 대리운전앱 등의 플랫폼에 소속이 되어 직접 고객을 유치한 만큼 소득을 얻는 특수한 고용형태를 띄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특수고용종사자가 되면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게 되었다. 편의점과 같은 프랜차이즈 점주도 마찬가지이다. 프랜차이즈 모기업의 영향력이나 로열티 부담을 벗어날 수 없는 유사고용 된 형태이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어떤 통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해당 업종의 노동자들이 초장시간노동, 저임금 및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했을 때, 연대운동을 통한 지위 향상과 환경 개선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다시 상기하자면 노동자는 일을 통해 상품 및 용역을 생산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고용형태가 아무리 다변화되고 특수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누구든 노동을 하며 인간답게 살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찾고자 함께 움직인 것을 기념하는 날이 ‘May Day’이다. 한국은 OECD 통계 중 장시간 노동 순위와 저임금 노동자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부지런하게 노동, 즉 근로하고 있다. 이제는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계약관계나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고 영위할 수 있는 노동환경으로 May day를 거듭할수록 점차 변화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