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과 고령화가 미래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한국 국가신용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으로 평가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에스앤피(S&P)와 무디스(Moody’s)는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했지만, 피치(Fitch)만은 신용등급을 올리지 않았다. 피치의 이런 결정의 배경 하나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 때문이다. 2015년 한국의 출산율이 1.25로, OECD 40여개국 합계출산율 평균 1.68보다 낮은데다, 급속한 인구고령화라는 도전에 직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섰다(기획재정부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재확인”, 2016.10.20.).
일본이 지난 20년간 겪은 장기 불황의 경험을 되새겨보면, 불황의 시작은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였지만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미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에 장기화된 측면이 크다. 이처럼 저출산과 고령화를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만 최소 20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위기’, 진단은 많으나 대응안은 빠져
지금도 저출산과 고령사회 위기를 진단하는 수많은 글과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래서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 것인지’ 설득력 있는 미래 방향을 내놓거나 이의 실행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찾기는 어렵다. 특히, 이 문제가 개인의 선택 문제를 넘어 여성-고용환경-보육과 교육-주거-젠더평등 등과 관련해 사회보장 수준과 사회적 합의와도 연결되어 어느 이슈보다도 통합적인 연구가 중요하다.
최근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책연구소 국정감사에서 저출산과 고령화 관련 합동연구가 없다는 점을 질타했다. 민 의원은 “20개가 넘는 경제인문사회 관련 국책연구기관이 지난 5년간 194억원의 예산을 들여 131건의 협동과제를 수행했지만, 저출산 관련 연구는 전혀 없고, 고령화 관련은 5건에 불과하다. 지구 역사상 최초로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할 우려가 있는 국가의 국책연구기관으로서는 참으로 반성해야 할 일이다”고 비판했다(민병두 의원 국정감사 보고, “저출산 고령화 협동연구가 없다”, 2016.10.7.).
1934년 ‘미래 인구보고서’ 복지국가 스웨덴의 시작
자녀 출산과 양육이 가계경제에 실이 되는 한국 현실과 다르게 스웨덴에서는 자녀가 득이 되도록 만든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짧게는 1930년대부터, 길게는 절대 권력이 잉태한 부패를 다잡고 길을 연 1800년대 정치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복지국가 스웨덴은 80여년에서 180여년을 거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복지국가의 화두와 씨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스웨덴 복지국가는 변화하고 있다. 여성의 성역할 변화를 요구하고, 여성노동자 보호가 기업 생산성을 저하시킨다는 논쟁에 맞서고, 보편적 가족정책이냐 선택적 가족복지냐를 둘러싼 쟁점 모두 공론화 과정을 거쳐 왔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스웨덴의 근현대기에 1934년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의 ‘인구문제의 위기’라는 보고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대공황 시기 스웨덴의 저출산 등 인구변화를 위기로 진단하고 종합적인 사회정책을 제안해, 1942년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 못지않은 의미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현재 한국에서 고민하는 사회정책의 상당부분을 이미 실행방안으로 담아냈다. 스웨덴 인구 변화에 대응해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국가 책임보육, 공공임대주택 건설해 빈부격차 해소 등 국가주도의 인구정책, 가정복지정책, 아동정책, 주택정책, 보건정책 등 종합적인 사회정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향후 스웨덴 사민당이 집권한 44년간 복지의 기틀을 마련하는 주요 토대였다는 평가다(최연혁, “스웨덴의 저출산 대응정책과 중장기 파급효과 분석”, 2011.8.).
10년 앞선 준비, 우리도 늦지 않았다
최근 스웨덴 연수 기회에 만난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최연혁 소장은 “삶의 질과 연관되지 않은 복지는 없다. 복지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된다는 말도 많으나, 복지는 분명히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다만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도기가 필요하다. 스웨덴 이민정책과 복지확장을 반대하는 극우정당의 점유율이 오르고 있으나,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수의 연합정당들이 그들의 우려를 개선하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과 소통하고 합의해가며 복지국가의 틀을 준비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과 관계없이 스웨덴이 복지국가의 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개헌 논의도 1~2년 내에 완성하려고 하나, 이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스웨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에서는 어떤 문제든 갈등을 일으키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그만큼 충분한 논의와 숙고의 시간을 거치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 스웨덴은 10년 전에 10년 후를 준비해간다. 국민에게 의견을 묻고, 국민들은 변화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해간다. 복지를 늘리고 줄이는데 따른 갈등을 최소화하고 준비할 시간이 보장되어 있다. 이게 스웨덴식 개혁의 힘이다”라고 말한다.
스웨덴에서는 1938년부터 인구정책 특별위원회에서 10년을 앞서 미래 보고서를 내오고 있다. 스웨덴이라고 저출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경제위기와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출산에 대비해 10년 앞서 국민과 같이 소통하며 준비해나간다는 점이 가장 특별하다. 위기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예방하는 미래 인구 보고서, 우리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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