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92) 적은 누구인가?

By |2018/01/10|Categories: 새사연 칼럼|0 Comments

1987년. 눈앞의 적은 분명했다. 1961년 5월 16일 헌정을 파괴하고 수십 년간 독재를 일삼고 있는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분명한 목표였고, 달성했다. 얼마 전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의 긴박했던 순간을 담은 <1987>이 개봉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1987’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질문의 답”이라며 감회 깊은 관람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연말 연구원의 종무식을 겸하여 <1987>을 단체관람한 후 극장을 나서는데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만든 지금, 민중의 삶을 억누르는 부조리는 여전하지 않은가? 어떤 사태가 벌어지면 책임을 져야 하는 누군가가, 이를테면 봉건지주, 제국주의자, 인권을 유린하는 자본가, 파시스트나 독재자, 인종차별주의자 따위의 징벌을 받아야 하는 투쟁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햇빛도 들지 않는 좁고 눅눅한 고시원에서 하루하루 버티다 극빈층으로 늙어가야 할 2018년의 취준생이 탓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발 빠르고 똑똑한 [...]

위클리 펀치(591) 지나간 30년 다가오는 30년

By |2018/01/03|Categories: 새사연 칼럼|위클리 펀치(591) 지나간 30년 다가오는 30년 댓글 닫힘

1994년 당시 IBM 임원진은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얼마 후 인터넷을 접하기는 했으나 그걸 갖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여전히 네트워크보다는 독립적 PC에 무게 중심으로 두고 있었다. 스탠포드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들이 발명한 인터넷 검색엔진 특허권을 사줄 사람들을 물색했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둘은 1998년 구글이라는 이름의 검색 전문업체를 창업했다. 1990년대 인터넷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들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30년 동안 그 같은 큼직한 변화가 적어도 6개 정도가 우리를 스쳐갔다. 첫째 냉전 체제 해체. 초강대국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 붕괴로부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대결을 포기하고 화해하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

위클리 펀치(590) 청년정책, 보상 아닌 기반조성으로

By |2017/12/26|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0 Comments

지난 몇 년간 노동, 주거, 부채 등 다양한 영역의 청년정책을 보며 이들이 청년들의 삶의 기반을 조성하기보다 성과를 보상하는 데 집중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취업지원정책인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는 구직활동을 단계별로 나눠 각 단계를 이수할 경우에만 수당을 지급한다. 대표적인 주거지원정책인 행복주택의 경우, 현재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초기에는 취업한 자와 결혼한 자만 입주신청이 가능했다. 청년들의 부채문제에서 시작한 서울시 ‘희망두배 청년통장’은 최근 1년간 6개월 이상 근로한 자 또는 재직 중인 자만 신청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위 정책은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 청년들이나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이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여 묻지마 취업을 하는 청년들이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단계별로 나눠 구직활동을 할 여유는 없을 것이며, 당장 안정적인 주거지가 필요한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에 거주하는 청년에게 ‘행복주택’ 지원자격을 위하여 직장과 결혼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일자리와 저축된 [...]

위클리 펀치(589) 비트코인, 언제까지 승승장구 할까?

By |2017/12/19|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0 Comments

비트코인 열풍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정부 당국은 강력한 규제 도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미 지난 11일 금융위원회 출입기자 송년회에서 비트코인은 정상적인 금융거래로 볼 수 없으며, 투기라고 못 박았다. 강력한 규제 도입을 금융위원장이 직접 시사하고 있다는 면에서 전자 가상 화폐로 인한 문제가 사전에 차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종구 위원장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추후에 다른 사람이 더 후한 값에 사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 때문이기에 실물경제적 근거가 전혀 없는 가상 화폐는 값이 치솟더라도 그 자체로 투기일 뿐이라고 일축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으나, "그럼 증권이나 주식 거래도 다 똑같은 기대 때문에 매입하는 것인데 금융위원장이 자본주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취지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상화폐 소식이 연일 들려오는 와중에 사건이 발생했다. 조금 배운 지식으로 고등학생이 [...]

위클리 펀치(588) 마을공동체 vs 신자유주의, 괴물을 사이에 둔 세기의 대결

By |2017/12/12|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 , |3 Comments

여러 사람과 모임을 하거나 활동을 하다 보면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잘 추슬러서 더 돈독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모임이나 조직에서 사람들이 떠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긴 시간 노력을 들여 어렵게 쌓아온 관계가 수포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견충돌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떠난다면 유지될 모임이 없을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지.”라며 몇몇 사람이 떠날 때면 민주적 절차에 대한 오해가 꽤 깊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조직의 ‘민주화’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여 평등하고 공정하게 다루자는 것인데, 내 의견을 들어주어야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마도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인정(認定; approval)에서 시작될 것이다. 홉스는 이에 대해 “나는 스스로 나를 다스리는 권리를 이 사람 혹은 이 합의체(Leviathan; 국가)에 완전히 양도할 것을 승인한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

위클리 펀치(587) 지겨운 그 밥에 그 나물

By |2017/12/06|Categories: 새사연 칼럼|Tags: |0 Comments

정말 지겨운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식구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 똑같은 밥에 똑같은 나물 반찬으로 지겨운 식사를 반복해야 했다. 영양가마저도 형편없이 모두 기력이 쇠약해져 있었다. 진절머리가 난 식구들은 주방장을 갈아 치웠다. 새 주방장은 식구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새 요리 준비에 의욕적으로 나섰다. 맛 좋고 영향 많은 요리가 밥상 위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소득 주도성장론’이라는 새 요리는 함량 미달의 요리로 판명 났다. 구멍이 숭숭 뚫린 영양가 없는 재료로 만든 게 화근이었다. 새 주방장은 몇 차례 실험을 하다 상에 올리는 것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새 주방장은 함께 준비 했던 혁신 성장론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동안 소득 주도 성장론에 밀려나 있던 혁신 성장론 담당 요리사들에게 파팍 힘을 실어 주었다. 지난 11월 30일 혁신성장론 담당 요리사들은 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