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제, 주거, 노동,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665년 런던은 흑사병으로 5만 명 이상의 시민을 잃었다. 이듬해 1666년에는 런던 대화재가 일어나 엄청난 대혼란이 뒤따랐다. 이 시기 아이작 뉴튼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학의 위대한 기초를 세운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기적의 해”는 시인 존 드라이든이 학사병과 런던 대화재, 네덜란드와의 전쟁과 같은 고난을 극복한 영국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2017년 세계경제는 과연 “기적의 해”가 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다른 모든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2017년 세계경제는 “공포의 해(Annus Horribilis)”가 될 것이며, 세계시민들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것이다.

스케치 : 최근 세계경제의 사정

세계경제는 이미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진입했다. 대단히 부정적인 진단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낙관적인 세계경제 전망은 우리시대의 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역사에서 볼 때, 부정적인 진단과 전망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1849년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의 빈곤과 극심한 불평등을 보며 경제성장과 이윤 그리고 분배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자들을 가리켜 “우울한 학문에 종사하는 존경하는 교수님들”이라고 풍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우리시대에 다시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secular stagnation)”을 처음 제안하고 유행시킨 로렌스 서머스는 그 뜻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최장기 수준에서 경기침체가 의미하는 바는 경제가 항상 침체상태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이 담고 있는 것은 통화정책을 통해 침체를 성장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나, 이 경우 상당한 정도의 금융 불안정을 대가로 치를 수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인 우리시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언젠가부터 경제 전망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어조는 부정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다음해에 대한 경제 전망은 매번 다시 발표되는 수정 본을 통해 하향조정(downward revision) 되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중국이다. 2014년 이후 중국은 7%대 성장을 멈췄고 반복적인 하향조정을 통해 이제는 5%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 수준도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중국마저도 유행처럼 되어버린 하향조정의 트렌트를 비켜가기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이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해 중국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내수를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을 짜고 추진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국제무역이 감소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시대 경제의 핵심어는 부채와 위기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이 두 핵심어가 우리시대를 상징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계속되는 저성장의 원인과 우리가 어떤 체계 하에 놓여있는가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가 계속해서 저상장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부채 동학과 위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채, 즉 빚이 성장을 만들었고 한계에 다다르면 곧이어 위기에 빠져드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부채 동학에 의한 성장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성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최종적 위기 바로 직전의 아름다운 시절(belle époque)이다. 따라서 부채동학은 단순히 빚이 많아졌고 벌이도 없는데, 돈을 빌리는 파렴치한 짓 수준에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축적체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부채-위기 축적체계가 만든 낯선 현상이다. 프랑스의 유력지 Alternatives economique에 크리스티앙 샤비뉴(Christian Chavagneux)는 이를 자본이 주도하는 “탈세계화의 힘(Les forces de la démondialisation)” 라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현재 세계경제는 자본의 탈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국들 뿐 아니라 국제금융과 여기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나라들 간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적대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지나가고 자본의 탈세계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이는 세계시민들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세계화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탈세계화의 폭압적인 질주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과 노동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탈세계화의 위험에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노출되는 대상은 후진국과 신흥국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학력, 노동 숙련도, 성별, 노동조합 미조직 정도에 따라 겪을 피해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은 가장 나중에 비교적 약한 수준으로 그 피해를 겪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성장 정도와 사회복지의 수준에 따라 시민들의 처지가 결정된다는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의 “지리적 시민성” 개념은 세계 시민이 처한 비극을 잘 조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샤비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샤비뉴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주의는 승승장구 했던 시기를 지나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화도 예년 같지 않다. 더 이상 국제금융과 국제무역이 호황을 누리며 전세계모든 나라가 이익을 볼 것 같지는 않다. 무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쇠퇴하고 있다. 기업의 자회사 거래가 국제무역의 급격한 하락을 겨우 막아내고 있을 뿐이다. 국제 무역의 60%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 간에 발생하는 거래이다. 이렇게 보면 쇠락하고 있는 국제무역의 흐름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것이며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경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금융 쪽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은행 간 대출의 규모는 2007년~2008년에 비해 약 33% 감소하였다. 유럽의 경우 이런 사정은 더욱 극적이다. 2015년~2016년의 대출규모는 2008년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경제가 이미 장기침체에 진입했다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였다. 피케티는 불평등의 심각한 상황을 강조했지만 실상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경제성장이 예외적으로 높았던 전후 경제성장의 “영광의 30년”을 제외하고 나면 매우 예외적인 순간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거시 성장론의 대가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현재의 기술혁신이 과거 생산성 향상효과에 기여한 것보다 훨씬 저조할 것이라며 앞으로 25년간 기술혁신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더라도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고든은 기술발전이 경제성장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솔로우의 생산성 역설”에서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는 “당신은 컴퓨터 세상이 된 것을 모든 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단 한 곳 생산성 통계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하며 기술발전이 생산성 향상, 곧이어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였음을 규명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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