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非營利)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하 사전)에 따르면 ‘영리(營利)란 재산상의 이익을 꾀함. 또는 그 이익(재산상 이익).’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사전적으로 비영리란 ‘재산상의 이익을 꾀하지 않음. 또는 재산상의 이익이 없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산상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재산이란 ‘①재화와 자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개인, 단체, 국가가 소유하는 토지, 가옥, 가구, 금전, 귀금속 따위의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 ②법률적으로 동산, 부동산, 기타 금전적 가치를 지니는 권리 및 의무의 총체. 적극적 재산인 자산 이외에 소극적 재산인 부채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정의된다. 그리고 이익이란 ‘①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 ②경제학적으로는 일정 기간의 총수입에서 그것을 위하여 들인 비용을 뺀 차액.’이라고 정의된다.
한편 수입이란 ‘①돈이나 물품 따위를 거두어들임. 또는 그 돈이나 물품. ②경제학적으로는 개인, 국가, 단체 따위가 합법적으로 얻어 들이는 일정액의 금액.’을 말하며, 비용이란 ‘①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 ②경제학적으로는 기업에서 생산을 위하여 소비하는 원료비, 기계 설비비, 빌린 자본의 이자, 인건비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비영리를 법률적⋅경제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금전적 가치를 지니는 각종 권리를 늘리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활동의 비용을 초과하는 수입을 올리는 것, 즉 이익을 높이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수입을 위해 법정기준, 사회적 통념 등에 부합하는 인건비 등 정당한 비용을 치루거나 기부를 받는 합법적 경제활동이어야 한다.
위 내용 중 ‘의도하지 않는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영리로 경제활동을 하여도 수입이 비용에 비해서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의도하지 않았으므로 구성원에게 배분하지 않고 다시 경제활동의 밑천으로 삼는다는 점이 영리와 비영리의 차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합법적 경제활동’이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비영리조직의 구성원은 자원봉사나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구성원들의 인건비를 정상적인 기준 미만으로 낮추거나 대가없이 착취한다면 정상적인 경제활동도 아닐뿐더러 노동조건을 위협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비영리는 투자이익, 배당금 등 이윤을 제거하고 선의의 기부를 받아서 합법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조직원들의 경제적 불이익을 강요하는 활동은 엄밀하게는 비영리라고 할 수 없다.
영리포퓰리즘
정부정책을 살펴보다 보면 이상한 단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관행적이거나 일반적으로 잘못 쓰이는 단어를 바로잡는 것에 오히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업형임대’처럼 편협한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기업형임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 전에도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이 임대주택을 건설하여 적지 않은 물량을 공급하여 왔음에도 애써 ‘기업형’이라는 단어를 ‘임대’에 갖다 붙인 이유는 ‘경제활동의 주체는 기업’이라는 편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기업이란 ‘영리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기업형’이라고 얘기하고자 하는 본뜻은 ‘영리’에 있을 것이다. 경제활동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상도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활동을 촉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업들이 임대사업으로 영리를 취할 수 있게 지원하고 규제도 풀어주면 주거문제도 해결하고 좋지 않겠는가.’라는 메시지가 ‘기업형임대’라는 용어에 담겨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영리와 비영리는 모두 경제활동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모든 행위가 수입이나 비용을 발생시키는 경제활동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체 경제에서 비영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결코 작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수요가 발생한다면 비영리를 촉진하여도 영리를 촉진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오히려 돈으로 따지기 어려운 사회적 편익까지 고려한다면 비영리 쪽의 효과가 더욱 크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경제활성화와 영리를 묶어버리면 경제주체 중에서 일부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격이다.
영리와 관계가 높은 주체는 금융과 관련된 개인과 법인이다. 고전적 관점에서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가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국부를 창출하는 데에 직접적인 기여가 없다고(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던 이들이다. 수입에서 비용을 제한 나머지가 영리이기 때문에 영리는 투자에 대한 배당으로 환원된다. ‘돈’만 쥐고 흔들면서 직접적인 생산이나 소비를 하지 않는 개인과 법인이 영리의 최종수혜자이다.
소비주체의 입장에서 영리는 가격을 올리는 요소이다. 생산이라는 것도 다양한 중간재를 소비하는 활동이므로 생산주체 입장에서도 지나친 이윤이 끼어 중간재의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 이롭지 않다. 영리를 촉진하는 것은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망치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실상과 다른 허구로 표를 구걸하는 기만이라면 영리활동을 장려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 딱 이에 해당한다.
경제활성화가 필요하다면 경제 전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주체의 처지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가 영리가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목적으로 두는 비영리를 촉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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