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의 ‘민낯’
아버지가 시작한 복지국가를 완성하겠다던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에 들어서면서 그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부자/대기업증세를 피하면서 공약을 지키려니 방법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복지정책의 핵심은 이렇다.
“복지는 돈이 많이 든다. 경제를 살리려면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많이 걷을 수는 없다.
십시일반, 서민층이 더 많이 내야 한다. 다음으로, 걷은 돈은 아껴 써야 한다. 저소득층의 복지혜택을 효율화하자
그 결과 담배세인상과 같은 서민증세와 무상급식폐지, 무상보육 축소, 의료급여환자 혜택 줄이기와 같은 ‘복지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복지재정 효율화를 앞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저소득층에게 고통을 전가하며 대대적 복지축소를 감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급여와 건강보험의 역사를 알아봄으로써 이 패러다임 하에서 고통 받는 것은 누가 될 것인지 파헤쳐보자. 먼저, 3월 30일 발표된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에서 발표한 의료급여 개선방안은 다음과 같다.
ㅇ 의료급여 장기입원자 관리 강화 (복지부)
– 장기 입원기간 동안 외래진료 본인부담금(건강생활유지비, 연 7.2만원)지원 제외ㅇ 경증질환자 종합병원 이용 관리 강화 (복지부)
– 경증질환(52개)으로 종합병원 이용 시 약제비 본인부담(500원 → 정률제 등 전환) 조정ㅇ 주거 목적의 요양병원 장기입원 수급자 퇴원을 유도하되, 퇴원 후 양로시설 등 주거연계 대책 마련 (복지부)
* 의료급여 수급자 중 요양병원에 입원 필요성이 높지 않은 환자군
(신체기능 저하군)으로 입원중인 자는 8,182명임(‘13년)ㅇ 보훈병원 장기입원환자에 ‘입원료 체감제’(입원료 90%만 지원) 적용 및 고엽제 경도환자 등
* 진료비 본인부담제(진료비 총액의 20%) 도입 (보훈처)
* 대상 : 고엽제후유증, 5.18민주화운동부상자, 특수임무부상자 중 경상인 자
내용은 전부 의료급여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올려 문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본인부담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의료비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의료급여란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 국민의 의료문제(질병, 부상, 출산 등)를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부조제도이다. 한국사회 건강보장은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로 이루어져 있고 건강보험에 비해 의료급여는 비용부담이 훨씬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있지만 높은 자가부담율로 인해 의료비로 고통 받는 저소득층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의료급여는 복지 부당수급, 다시 말해 복지로 인한 도덕적 해이의 대표로 취급되어 왔다. 대체 왜 의료급여는 의료비 폭증의 원흉이란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일까?
의료급여에 씌워진 오해
07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소개한 홍길동씨의 사례는 부도덕한 의료급여 환자의 전형을 창조했다. 아래에서 그 내용을 살펴보겠다.
홍길동 씨의 일과를 조금 상세히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갑니다. 대여섯 군데 병원을 돌며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처방을 받으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처방전은 모두 특정한 약국들에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다 막차를 타고 집에 갑니다. …(중략) 8만 명이 한 번이라도 파스를 처방받았는데, 그중 2만 7천 명이 500매 이상을 받았습니다. 5천 매 넘게 처방받은 이가 22명인데, 최고기록은 13,699매였습니다. 하루 평균 38매입니다. 하루에 1,200매를 처방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방식이었다. 정부는 본인부담이 없는 관대한 복지제도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며 선전을 했고, 그 결과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뒤따랐다. 논리는 단순하다. 의료급여 환자는 자기가 내는 돈이 없어 부당수급이 많으니 본인도 돈을 내게 하고, 사례관리를 강화해서 부도덕한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 시스템을 효율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07년에 의료급여 1종에 대한 본인부담금 제도 도입과 선택병의원제도 도입, 08년에 희귀난치성 차상위계층을 의료급여 대상자에서 제외, 09년에 2종 차상위계층 만성질환자 및 18세 미만 아동 의료급여 대상자에서 제외, 12년 노숙인은 노숙인 진료시설의 의료기관에서만 진료가 가능하도록 제한, 13년에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가족에 대한 1종 수급자격 제외 등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2000년대 후반, 빈곤층 진료 부문에서 최소한의 보루였던 의료급여는 이렇게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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