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연말이면 유치원 추첨으로 각 가정의 희비가 엇갈릴 정도로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는 만3~5세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 파행까지 겹쳤다. 이 때문에 부모의 불안감이 더해지면서 유치원으로 쏠림이 극명하게 나타나 온 나라가 들썩일 지경이었다.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유치원 입학 경쟁이나 무상보육 예산 문제는 매해 뜨거운 감자다. 그렇다고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하지도 못해왔다. 최근에는 ‘유보통합’이 그 해법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영유아 보육과 교육 관련한 어떤 문제든 유보통합으로 풀 수 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유보통합은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나눠진 영유아 교육과 보육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의미한다. 유보통합이 어제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다. 이렇게 수면위로 급부상한데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가 정한 국정 과제의 하나로 ‘유보통합’이 들어가면서부터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가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유보통합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렇다면 ‘유보통합’이 영유아를 둘러싼 문제들을 풀어줄 ‘만능키’가 될 수 있을까?
유보통합의 필요성이나 기대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원래 유아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유치원과 저소득층 자녀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집이 근래에는 대다수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을 책임지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와 복지부 등 각기 다른 부처가 관리하고, 평가 방식도 다르며, 교사 양성 과정과 처우마저 차별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불거졌다.
교육비가 비싼데도 유치원으로만 몰리는 반면 어린이집은 보육료가 원장 개인의 쌈짓돈이라는 불신도 여전하며, 보육교사의 처우가 낮아 양질의 보육이 어렵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두 기관의 차이를 좁혀 질적인 수준을 높이고 원아의 유치원 쏠림을 막자는 취지에서 ‘유보통합’에 거는 기대도 있다.
만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공통된 누리 과정을 만들고, 재원 부담도 통합하면서 ‘유보통합’은 이미 첫 걸음을 뗐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에 유보통합추진단이 만들어져 올해 결제카드 통합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평가 체계와 정보공시를 일원화는 3단계 통합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중앙정부는 누리과정에 예산 지원을 하지 않은 채 지방정부의 교육재정 책임으로 떠넘기다보니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유보통합추진단이 발표한 방안이 앞으로 부모의 선택권을 넓혀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특히 사립 유치원은 회계 통합에 대해 자율성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 20년 넘게 만 0~2세 영아들을 돌봐온 어린이집과의 대립도 드러나고 있다. 영아들도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공립 병설 시범 사업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면서 가정·민간어린이집의 집단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 정부 통합안이 나오기까지 총 4차례의 유보통합위원회를 거치고 여타 국책연구소 등을 통한 포럼들도 열긴 했다. 그러나 유보통합의 방향을 먼저 정하고 후에 이뤄지는 논의의 장이라 형식적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정부는 애초부터 교육부 중심의 만 0~5세 일원화를 염두에 둔 통합을 전제로 움직이는 듯하다.
정부안대로 보면 풀리지 않는 산재한 과제들이 많다. 지금 유치원과 어린이집 가릴 것 없이 과도한 사교육이 이뤄지면서 가계 부담이 높고,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부적합한 기관을 퇴출시킬 강제력이 있어야 하며, 양질의 기관이 부족한 현실에서 정보공시는 부모의 선택권을 넓히지 못하는 한계들이 있다. 게다가 두 기관의 질적인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누리 과정 지원에도 소극적인데다, 유보통합에 추가 재원을 들일 생각마저 하지 않고 있다.
영유아 보육과 교육의 현실은 아랑곳 않고, 단순히 합치기만 하면 좋아질 거란 막연한 환상만 심어주고 있다. 유보통합은 영유아의 보육과 교육이 상업화된 현재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진보적인 정책으로, 이에 대한 기대도 높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안에는 교육과 보육에서 시급한 사안은 아예 빼거나, 하나같이 박근혜 정부의 임기 말로 미뤄놓았다. 이대로라면 유보통합으로 바꿔야 할 우리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 환경은 좋아질 리 없다. 영유아를 중심에 두고 유보통합의 우선순위를 다시 잡아야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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