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을 강조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그러다보니 미국의 전략적 교두보 중 하나인 중동지역에서 미국패권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을 통해 중동에서 미국패권을 더욱 확고히 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최근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며 다시 나타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시리아에서, 이라크에서, 이란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계열 민중의 중대한 도전에 카운터펀치를 계속 허용하고 있다.
1. 이란에서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였으나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취해오던 미국이 2013년 11월 24일, 돌연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하였다는 발표를 하였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가디언>은 “역사적인 핵협상은 미국과 이란 당국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례적인 비밀회동을 한 끝에 가능했다”면서 “협상 타결에 양국의 비밀회담이 있었다는 점은, 세계에서 가장 적대적인 두 강대국 사이의 관계 개선이 계속 추진될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협상 내용은 이란은 향후 6개월 동안 핵발전용에 해당하는 5% 농도를 초과하는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보유하고 있는 20% 농축 우라늄들의 핵무기 전용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희석시키는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아울러 저농축 우라늄의 재고를 늘리지 않으며 더 이상의 원심분리기를 설치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능력을 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핵 개발을 중단ㆍ축소하는 대가로 미국이 동결한 원유 판매대금 40억 달러가 해제되고, 금과 석유화학제품, 자동차와 비행기 부품 등에 대한 교역 금지 품목들에 대한 규제도 중단된다고 한다.
<프레시안>은 이 협상에서 핵심쟁점은 ‘해석 차이’라고 한다. 이번 협상 전문에는 “최종적인 협상에는 실용적인 제한과 투명한 절차 하에 ‘상호 정의’된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다”는 문장이 들어있는데 이란은 이 문장이 원칙적으로 이란이 우라늄 농축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상호 정의’라는 문구는 농축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미국-이란 합의는 불완전한 합의이며 여전히 줄다리기 싸움인 형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황급히 이란과의 협상을 마무리지었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위해서는 중동에서의 상황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오바마행정부가 성과에 목말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성급한 이란협상은 중동 친미진영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의 후원 아래 수니파의 핵심국가로 있어온 사우디아라비아는 “맹수가 풀려났다”고 경악하였다. 이란을 비롯한 아랍진영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이스라엘 역시 핵협상 타결에 대해 “역사적 실수”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이렇듯 협상이 완전히 타결된 상황은 아니므로 미국과 이란의 협상국면은 향후 자세한 상황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미국의 이란핵협상은 너무 다급하고, 그래서 중동 친미진영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2. 미국의 개입이 파탄난 시리아 사태
미국의 중동정책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협상이 아니라 파산이었으며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다.
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 불리던 시기, 경제위기로 한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튀니지 정권이 무너지고 이어 이집트의 친미정권인 무바라크 정권까지 흔들리게 되자 미국은 이를 리비아에서 내란을 사주하고 미군과 나토군이 전면지원하는 방식으로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데로 전환시켰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미국의 공세는 중동 반미진영의 핵심진영이었던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으로 향하고 있었다.
2011년 3월 시리아 제3의 도시 홈즈와 다마스커스에서 아사드 정권 퇴진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2011년 10월 4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알 아사드 대통령의 유혈 진압 중단을 촉구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중국,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부결되고 말았다.
이때로부터 시작된 자유시리아 연합군에 의한 내전이 3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시리아에서 패하였다. 미군이 직접적으로 시리아에 개입한 바 없기 때문에 미군이 시리아와의 교전에서 패한 적인 없다. 그러나 미국은 시리아와의 정치전에서 패하였고 외교전에서 패하였으며 심리전에서 패하였다.
2012년 7월만 하더라도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주장한 자유시리아군은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를 점령하고 시리아 수도인 다마스커스 인근에서 교전하면서 아사드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는 듯하였다. 그러나 반군의 공격은 다마스커스 인근에서 전차 3대가 파괴되는 수준에 그쳤고, 알 아사드 정권은 이스라엘 접경지역인 골란고원에 주둔 중인 시리아 정부군을 동원해 반군세력을 본격적으로 소탕하기 시작하였다.
시리아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으므로 시리아 군사력의 핵심부대는 이스라엘 접경지역에 집중배치되어 있다. 한국사회로 치면 대다수 군대가 휴전선 인근지역에 배치된 것과 같다. 결국 반군세력 진압에 시리아 정예부대가 나서자 반군세력과의 역량차이는 현격하였고 반군세력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다급한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이 시리아 민중의 인권을 유린한다고 문제제기하였다. 2012년 7월 17일, 미국은 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이번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의 시리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2012년 8월 2일, 미국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한다는 발표를 했으며 2013년 6월에는 오바마대통령이 반군세력에 대한 무기지원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러자 2013년 6월 17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G8 정상회담 자리에서 불쾌한 표정으로 “대중과 카메라 앞에서 적군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시체를 열어 장기를 먹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느냐. 당신들이 무기를 주려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냐. 이건 아마도 수백 년 동안 유럽에 전파됐던 인도적 가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라며 발끈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법에 맞춰 시리아의 합법적인 정부에 무기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규정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2013년 8월 22일, 시리아 다마스커스 인근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어 1300여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은 이를 아사드 정권의 소행이라 비난하였으며 시리아와 러시아 등은 시리아 반군의 소행이라며 맞섰다. 그러나 당시 미군의 개입이 검토되던 시점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며 미국을 자극했을 가능성보다는 궁지에 몰린 시리아 반군이 미군참전을 이끌어낼 목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시리아 정부의 행위로 폭로했다는 가설이 정황상 더 설득력 있다.
오바마행정부는 시리아 공습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지만 이번에도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였다. 8월말, 영국과 NATO 회원 12개국이 시리아 공습을 유보하겠다고 밝혔으며 오히려 푸틴이 시리아 공습이 시작되면 사우디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완전 폐기하는 대신 시리아에 대한 군사공격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로서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개입하였지만 군사개입을 결심할 능력과 의지가 모자라 러시아의 중동영향력만 키워준 셈이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를 두고 오바마 정부의 시리아 정책이 전략이 없고 혼란스럽다고 비판했다. 시리아 정권을 향해 군사공격 카드를 제시했다가 갑자기 ‘의회승인’을 요청했고, 국내외 기류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러시아의 ‘화학무기 폐기’ 제안을 수용하는 등 미국이 그동안 보여온 시리아 대응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결국 2014년 6월, 시리아 대선에서 아사드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며 시리아 반군은 알레포를 비롯한 일부지역에 국한된 지역에 내몰리고 말았다.
3. 붕괴상황에 다다른 이라크 정권
시리아에서 나타난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는 인근의 이라크로 확산되고 있다. 2007년 505개 기지, 17만명에 달했던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은 오바마행정부에 접어들면서 철군으로 방향이 정리되었으며 이에 2011년 12월 16일, 이라크에서 미군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후 3년만에 판이하게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슬람급진세력으로 알려져 있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세력이 이라크 전 영토의 1/3을 장악하였으며 수도 바그다드를 압박하고 있다.
위 그림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상황 개략도이다. 왼쪽 살구색 지역이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이 실질적 통치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라 하며 중앙의 시리아와 이라크에 걸친 회색 사막지대가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세력이다. 이라크는 북부 노란지역의 쿠르드족 진영과 ISIL, 기존 이라크 정권 등 세 진영으로 사실상 분할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진영은 ISIL이다. 한때 알 카에다와 연계되었다고 알려졌던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며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과 사담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를 점령하고 바그다드(지도상 붉은 점)로 진격하고 있다.
4. 통제불능의 팔레스타인 사태
중동의 혼란스러운 사태는 결국 팔레스타인에서 폭발하고 있다.
7월 4일, 팔레스타인 16세 소년 무함마드 아부 크다이르가 이스라엘 급진주의자들에게 납치되어 산 채로 화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극우세력이 6월 30일에 발생한 유대인 청소년 3명 피살 사건에 보복하려는 목적에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소년이 산 채로 불태워졌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등에서는 수십 건의 폭력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이스라엘과 군사적 충돌로 확대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 통치 지역에 60기의 로켓 공격을 포함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해 팔레스타인 현지 의료 관계자는 이 공습으로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61명이 사망하고 55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에 대항해 하마스도 이날 이스라엘 원자로가 있는 사막 지역 디모나와 경제수도 텔아비브 등지에 로켓을 집중적으로 발사하며 반격했다. 하마스는 이번 반격에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비롯해 북부 하이파까지 공격 범위를 넓혔다고 한다.
그러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우리 지역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며 더욱 강도 높은 모든 옵션에 대해 준비돼 있다”고 밝혀 지상군 투입도 불사할 것임을 천명했다.
5. 미국의 중동안정정책은 파산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및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하고 사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민간인을 겨냥한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한다”며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미국은 이란을 외교적 협상으로 통제하고 이라크 정권을 전복시킨 데 이어 시리아 정권까지 무너뜨려 중동지역의 친미성향을 공고히 하고 동북아로 집중하려 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란과 협상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시리아 내전은 실패로 끝났으며 이라크 정권은 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의 무력충돌과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아랍진영의 군사적 갈등을 부추기는 불쏘시개로 작용할 소지가 높다. 이스라엘 경찰은 팔레스타인 소년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국적 소년까지 구타해 미국과 이스라엘 간 외교갈등도 껄끄러워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군이 진주한다면 이는 아랍진영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이라크를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급진주의진영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세력이나 시리아 정부가 반 이스라엘 입장을 천명할 수 있다.
현재 나타나는 이스라엘 정부의 호전적 정책은 중동에서 떠나가는 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란과는 핵협상을 통해 관리하고 중동에서 떠나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 집중하려 하는데 이에 두려움을 느낀 이스라엘이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의 중동구상은 밑그림부터 찌그러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이란과 핵협상을 통해 중동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은 한반도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파산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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