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걱정 없이 발 뻗고 누울 집 하나 없는 세상이다. 나도 이제 어른인데 싶어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보자니 어떻게 집을 구해야 하는지부터 내 벌이로 집을 구할 수는 있을지까지 모르는 것투성이다. 용기를 내 셋방을 얻어 살자니 이런 방에 이런 대우 받아 가며 이 정도의 세를 내는 게 맞나 싶다. 가정도 꾸리고 싶은데 내 머리 속에나 존재하는 거 같은 내 아이가 셋방에서 산다고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내 벌이에 집을 사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을 사려면 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7.3년(평균)은 모아야 한다고 한다(2020년 주거실태조사). 그동안 나는 땅 파먹고 살아야 하는가 보다.

우리한테도 집을 줘, 공공분양주택

이렇게 모진 세상을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가, 우리 정부가 우리 같이 집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덜어줄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내 소망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정부에서 공공분양주택이란 걸 짓고 있다고 한다.

공공분양주택은 LH, 지방공사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분양을 목적으로 공급하는 85m2(25.7평) 이하의 주택이다. 보통 공공택지를 개발하여 공급되는데 그러다 보니 개발할 땅이 많이 남지 않은 서울보다는 그 외 지역에서 지어진다. 만약 공공분양주택에 입주하게 되면 우리는 건축비와 택지비를 더해 산정한 분양가만 부담하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입주에 도전해보자니 말로만 듣던 청약통장으로 인한 순위경쟁이 만만치가 않다. 청약통장에 돈을 많이 저축한 사람일수록 입주하기 유리한데, 이때 매달 저축하는 돈이 10만원을 넘으면 안 된단다. 때문에 청약통장에 오랫동안 꾸준히 10만원씩 넣은 사람이 분양받을 가능성이 높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건 공정하지만 일찍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 집을 받기 어렵다는 건 당황스럽다.

청약통장이라는 잣대만으로 집을 줄지 말지를 정한다는 게 황당하다는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특별공급’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 다자녀가구, 신혼부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가구에게는 따로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일찍부터 청약통장에 돈을 모으지 못했어도 여러 가지 상황으로 어려운 국민을 먼저 돕겠다고 하니 고맙다. 하지만 내가 만약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어 갑갑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찾아본다. 그러다 분양가를 보고 또 당황한다. 올해 1월 입주자를 모집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공공분양주택에 들어가 살려면 3~4억 정도의 돈(59.3~84.5m2=17.9~25.6평)이 있어야 했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보다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억대의 돈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마련하기는 어려운 돈이 아닌가도 싶다.

또, 알고 보니 2019년부터 정부가 수도권 민간택지의 아파트 일부도 공공분양주택과 같은 방식으로 분양가를 산정(분양가상한제)하고 있단다. 이러나 저러나 은행대출을 받아야 하는 거라면 좀 더 넓은 면적의 민간분양주택을 알아볼까 하다가 여전히 내 지갑이 민망하다. 거기다 민간분양주택은 공공분양주택과 달리 가점제가 적용되어 집 없이 산 지는 오래되었는지, 청약통장에 가입한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가족은 얼마나 부양하고 있는지를 본다고 한다. 집 걱정을 덜어보려고 공공분양주택이니, 청약이니, 민간분양주택이니를 찾아봤는데 선정기준도, 분양가도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한다.

좀 더 도와줘, 공공자가주택

민망해하는 우리 지갑의 새빨간 낯을 정부도 놓치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힘들다고? 그럼 더 도와줄게’라며 이른바 공공자가주택 3형제를 공급해보겠다고 한다. ①토지임대부 분양주택, ②이익공유형 분양주택, ③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그 3가지다. 이름부터 어려워 보이고 숨이 턱턱 막히지만 어쨌든 부끄러운 건 우리 지갑이니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우리한테 분양하는 집이다. 알고 보니 집값이 비싼 게 보통 땅값이 비싸서라는데 나는 건물가격만 내면 되니 그만큼 비용부담을 줄일 수 있다. 대신 토지임대료를 따로 내야하고 2021년부터 법이 바뀌어 건물도 땅주인인 공공(LH)한테만 팔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마음 편히 발 뻗고 누울 방도 없으니 내 집 마련이 급하지만 토지임대료도 계속 내야 하고 내 마음대로 집도 팔 수 없다고 하니 고민된다.

그래서 3형제의 둘째, 이익공유형 분양주택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이익공유형 분양주택은 공공분양주택의 80% 수준인 분양가로 입주할 수 있는 대신 공공한테만 집을 팔 수 있다. 다만, 분양가를 할인받은 정도에 따라 팔 때의 수익이 다를 뿐 기본적으로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집을 사주겠다고 한다. 이 집으로 돈을 벌기는 어려울 거 같지만 만에 하나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공공에서 사줄 듯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듯도 싶다.

막내인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어떤 집인지도 궁금해진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공공분양주택의 25% 이하로 분양받을 수 있는 집이다. 깃털같이 가벼운 내 지갑에는 가장 안성맞춤 같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주택 소유권을 공공이랑 공유하면서 내가 지분을 다 취득할 때까지 공공이 소유한 집값만큼 임대료를 내야 한다. 게다가 분양받고 10년 동안은 공공한테만 집을 팔 수 있고 그 기간이 지나야만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한다.

공공자가주택 3형제들은 공공분양주택의 분양가조차 부담스러운 지갑을 가진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집인 듯하다. 대신 계속 땅을 빌린 값을 내야 하거나 내 마음대로 집을 팔 수 없다. 어째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집인 게 아쉽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공공임대주택?

통장이 아니라 텅장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분양주택은 무리였나 되돌아본다. 좀 싸게 입주해보자고 공공자가주택을 고민할 거라면 차라리 공공임대주택을 노려볼까 싶다. 값싸게 오래 살 수 있는 집이라면 빌려쓰는 집도 내 집 마련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여기서 내 통장은 텅장이 아니라 화수분인가 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가구 등 최저소득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은 차치하더라도 좀 더 소득이 높아도 입주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에도 월소득이 209~358만원 정도여야 신청해볼 수 있다(1인 가구 기준,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70~120% 수준, 전용면적에 따라 적용 소득기준이 다름).

굳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안타깝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조금 어리니 청년공공임대주택이라 소득이 더 많아도 된다는 행복주택에 도전해볼까 한다. 월소득은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100~120% 수준이어야 한다고 하여 국민임대주택보다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아니 그런데, 임대료를 보니 내 지갑이 다시 홍당무다. 작년 말 입주자를 모집한 서울의 한 행복주택에서 살려면 보증금 8천~1억 7천에 월세 25~62만원(34.5~44.4m2=10.4~13.4평)을 내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여긴 또 6년만 살다가 나가야 한단다. 결혼해서 아이가 1명 있으면 10년까지 살 수 있다. 내 아이는 내 머리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정부의 상상 속에도 있는가 보다.

요즘은 정부가 민간사업자를 지원해주어 조금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내 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120% 이하이면 시세의 85% 수준 임대료, 내 벌이를 보지 않으면 시세의 95% 수준 임대료로 살 수 있다. 그래, 국민임대주택 같은 곳은 정부가 많이 지원하는 만큼 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맞는 거 같아. 내 지갑같이 얇은 듯 애매하게 두툼한 사람들을 위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도 있었네 싶어 한 번 찾아본다. 작년 11월 입주자를 모집한 시흥시에 위치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보증금 1억 7천에 월세 12만원(84.9m2=25.7평)이었다. 서울 중랑구의 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2021년 7월 입주자 모집)은 보증금 2억 4천에 월세 28만원(84.8m2=25.7평)을 부담해야 살 수 있었다. 보증금 규모에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심지어 여기도 10년까지만 살 수 있다고 한다.

분명 정부가 지원해준 임대주택이라고 했는데 분양주택보다 싼 거 같으면서도 부담되는 보증금이다. 이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집을 사는 게 맞지 않나 싶어 다시 분양주택을 고민해본다. 그러나 그 보태는 돈을 눈 앞에 두고는 내 통장이 화수분이 아니라 다시 텅장이 된다. 내 집 마련을 위한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사이에서의 고민… 도무지 끝이 안 날 것 같은 이 돌림노래가 지겹다.

우리가 살 집은 어디?

누군가는 이러니까 정부는 주택문제에 개입하면 안 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늑대를 피하자고 호랑이굴에 찾아가자는 것일 수 있으니 논외로 하기로 하자.

없는 벌이에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짓는 집에서 살 수 있을지 찾아보며 2가지에 놀란다. 먼저 정책이 정말 많고 복잡하다. 공공분양주택만 해도 공공자가주택 3형제까지 4가지에, 공공임대주택은 7가지나 된다고 한다. 입주하는 방법, 부담해야 하는 주거비, 얼마나 거주할 수 있는지, 어떻게 매매할 수 있는지 등등도 집집마다 다 다르다. 공공주택으로 내 집 마련하기 일타강사가 있었으면 싶을 정도다.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많은 집 중 우리가 살 집은 없는 거 같이 느껴질 정도로 구멍이 숭숭 나 있다는 거다. 사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정도면 입주할 수 있겠는데 싶은 집들도 있었을 듯하다. 또한, 나는 서울과 수도권의 집을 중심을 찾아봤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역은 다른 사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신청해볼 수 있겠는데 싶어 알아봤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당장 고시원이나 쪽방에 사는 분, 어르신, 아이가 많은 가족, 신혼부부, 소득이 낮은 분 등에게 먼저 입주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하는 건 공감한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돌아올 기회조차 없는 거를 감수하기에는 나도, 내 친구도 미래가 너무 불안하다. 부모님 시대에는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가 쉬웠을지 몰라도 우리가 그러려면 7년은 땅 파먹고 살아야 한다. 엄마, 아빠에게 손 벌리기엔 부모님의 노후도 불안하다.

우리의 불안을 덜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만족할 수 있는 주거정책은 어떤 방향일까. 정부가 지원하는 집이 더 많아져 어려운 사람을 먼저 돕고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 지갑 사정에 맞지 않는 주거비를 요구하는 공공주택이어서는 안 된다. 편안히 발 뻗고 누울 집을 저렴하게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신 집의 재산가치보다는 거주가치를 보장하도록 정책을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운 삶이다. 이 무게를 덜 수 있도록 하는 공공주택은 어떤 집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