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만드는 혁신적 사회 변화, 우리는 그것을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라고 부릅니다. 시민의 힘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아프게 경험한 우리에게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지금부터 그 쉽지 않은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1950년대부터 쓰레기 재활용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자원이 부족했던 탓이다. 2001년에 생활폐기물의 재활용율이 45%에 달했고, 2010년 51%에 이르렀다. 유럽이 2020년까지 달성하려고 했던 목표인 50%를 10년이나 앞서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모습도 보인다.
네덜란드 전역의 평균 재활용율이 51%를 기록했던 2010년, 암스테르담의 재활용율은 27%에 그쳤다. 또 가정에서 나온 쓰레기의 73%가 같은 수거함에 버려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지방정부가 재활용품 별로 따로 수거함을 마련하고, 일반쓰레기를 버릴 때는 지방정부가 발급한 카드를 쓰도록 하는 등 쓰레기를 줄이려 애를 쓰고 있지만, 시민의 참여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웨이스티드 프로젝트, 무엇이 시민을 바꾸나
암스테르담에 뿌리를 둔 비영리 재단 씨티즈(CITIES foundation)는 2015년 1월 ‘웨이스티드 프로젝트(WASTED project)’를 시작했다.
‘굳이 왜 힘들게 쓰레기를 나눠서 버려야 하나.’
주민들에게 재활용품을 따로 버리지 않는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들은 몇 가지 해법을 떠올렸는데, 보상과 교육 그리고 손에 잡히는 성과물이 그것이다. 그리고 2015년 4월 암스테르담 북부(Noord)의 반더백뷰얼트(Vanderpekbuurt), 오베훜스(Overhoeks) 등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주민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다른 곳보다 낮은 지역들이었다.
‘웨이스티드 이웃(WASTED neighbour)’으로 등록한 주민에게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담을 수 있는 가방과 QR코드 스티커 그리고 안내 책자가 주어진다. 이 가방을 가득 채우면 보상으로 초록색 플라스틱 동전 하나(1coin)를 받게 되는데, 이 동전으로 동네 카페에서 차 한 잔을 공짜로 마실 수도 있고 옷이나 가구를 조금 싸게 구입하거나, 자전거를 고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보상에 더해 교육도 제공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민들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도 플라스틱 오염의 위험성과 재활용의 의미를 꾸준히 알려나갔다. ‘집단의 변화는 더 많은 지식과 이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이들은 믿었다.
또 플라스틱 폐기물로 ‘웨이스티드 블록(WASTED Block)’을 개발하고, 누구라도 손수 만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웨이스티드 블록은 벤치나 무대를 비롯한 여러 모양으로 이어 붙였다가 언제든 다시 떼어내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가볍고 단단한 조립식 블록이다. 자신들이 모은 플라스틱 폐기물에 새로운 쓰임새를 불어넣는 일은 설레는 경험임에 틀림없다.
몇 달 간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약 250 가구, 40여 개의 가게들로 시작한 이 작은 프로젝트는 암스테르담 시가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지금은 약 1만 가구가 사는 암스테르담 북부(Noord)의 절반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달라진 것은 실험 규모만이 아니다. 처음엔 플라스틱만 수거했으나 지금은 종이와 유리, 의류도 모은다. 또 스탭들이 카고바이크(큰 짐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로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를 하러 다니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금은 시가 운영하는 재활용품 컨테이너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으로 컨테이너의 QR코드를 읽어 들인 뒤 재활용품이 담긴 가방을 찍어 업로드하고 컨테이너에 집어넣으면 된다. 그러면 계좌로 디지털 코인이 입금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이웃과 공동계좌를 열 수도 있다. 처음에 받은 재활용 봉투가 떨어질 때쯤 되면, 다시 12개의 봉투가 집으로 배달된다.
언뜻 보상 체계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대개는 부피가 큰 플라스틱 폐기물로도 일주일에 가방 하나를 채우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하니 손에 쥐는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교육을 받을수록 재활용품 소비가 줄어 보상도 줄게 된다.
통장에 쌓이는 디지털 코인은 그 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재활용품 소비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가령, 한 달 동안 플라스틱을 모아 5코인을 얻었다면, 커다란 가방 5개만큼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또 재활용한 셈이다. 여기에 교육으로 얻은 지식이 더해지면서 그 동안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던 선택들을 돌아보게 되고, 자연스레 조금씩 더 나은 행위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들이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를 타고 이웃들에게 퍼져가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어떤 스마트한 해법의 진정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사회적 구성 요소들과 대중의 인식에 깊이 관련돼있다.”
웨이스티드는 이 프로젝트의 참신함이 바로 “사람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즉, “공동체의 활성화와 참여를 통한 확장가능한 해법이라는 점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중심축”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은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은 무려 4930kg에 달한다. 2017년 4월 기준, 공동체 안에서 10가구 중 8.3가구가 참여하게 되었고, 절반인 52%가 이 프로젝트 때문에 플라스틱 폐기물의 분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 77%가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96%가 자신의 소비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23%는 플라스틱 포장 상품의 소비를 줄였다. 아마도 변화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이뤄낸 변화이기 때문이다.
독산4동 재활용 정거장은 어떻게 뿌리내렸나
금천구는 서울에서 아파트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연립/다세대 주택 비율이 높고 골목도 많다. 골목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정겨운 공간이기도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곳곳에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와 빼곡히 들어선 차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금천구 독산4동의 골목 풍경은 조금 다르다. 하루가 멀다고 집 대문 앞에 쌓이던 쓰레기봉투가 사라지고, 골목길이 곳곳에 쓰레기들이 무더기로 뒹굴던 모습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독산4동만의 ‘재활용 정거장’과 ‘도시 광부’ 실험 덕이다.
‘재활용 정거장’은 2014년 서울시가 몇몇 자치구에 시범 도입했다. 주택가에서 재활용품을 아무데나 버리는 것을 막고, 분리 수거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였지만 5년째를 맞은 올해까지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자원관리사’를 뽑아 정거장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지만 2015년 모든 지역에 확대한 뒤로 정거장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재활용 정거장’을 설치한 뒤에도 여전히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내놓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굳이 먼 곳까지 재활용품을 들고 가 일일이 분리를 하느니, 늘 해오던 대로 모든 재활용품을 종류에 상관없이 하나의 봉투에 담아 집 앞에 내놓는 것이다. 골목 어딘가에 슬쩍 던져 놓는 일도 사라지지 않았다.
독산4동에선 2016년 3월부터 두 달 동안 주민과 행정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재활용 정거장’을 어디에 얼마나 설치할지, 또 무슨 요일에 수거할지를 결정했다. ‘자원관리사’라는 딱딱한 이름 대신 ‘도시 광부’란 새로운 이름도 지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집 앞에 내다놓은 재활용품은 수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시 어느 자치구에서도 감히 해보지 않았던 초유의 실험이었다.
11월이 되자 정말로 화ㆍ금요일 낮 3~9시에 60곳의 재활용 정거장에 버린 재활용품만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민센터로 민원이 쏟아졌다. 그래도 버텼다. 저녁 6시마다 주민자치회 회장, 통장 그리고 담당 공무원들이 모여 하루 동안 쏟아진 민원들을 앞에 두고 또 머리를 맞댔다. 민원인을 일일이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행정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탓이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민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나고 ‘도시 광부’와 공무원들이 모여 골목 곳곳에 쌓였던 쓰레기를 하나하나 분리해가며 모두 치웠다. 주민에게도, 행정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모두가 그 동안 익숙하게 여기던 풍경과 행동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독산4동의 ‘재활용 정거장’은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 골목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쓰레기가 사라진 자리엔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다.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지던 곳에는 벤치를 만들고 정거장에서 나온 유리병과 화분에 꽃을 심어 가져다 놓았다. 처음엔 화분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주민들이 화분을 가져다놓기 시작했다. 스스로 골목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레 쓰레기도 줄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정거장을 담당하던 도시 광부에게 가까운 곳으로 옮겨주겠다고 했더니 벌써 주민들과 정이 들어서 싫다고 하더라. 잠시 자리를 비우면 주민들이 대신 일을 해주기도 한다.”
2016년부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독산4동 주은경 팀장의 말이다. 암 투병 중이던 80대 ‘도시 광부’가 ‘재활용 정거장’이 서는 날이면 입원복 차림으로 골목을 지키는 일도 있었다. 이들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은 자원을 캐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집에 어려운 일이 생겼으니 살펴 봐달라’는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주민과 행정을 이어주는 다리가 돼주고 있는 것이다. 동네에 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달려와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활용품부터 챙긴다. 다른 동네에선 ‘자원관리사’를 구하기 어렵지만, 독산4동엔 ‘도시 광부’가 되려고 스무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달라진 건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자원순환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동네의 몇몇 정거장에서 수거된 재활용품을 살펴본 결과 다른 동네의 것들보다 훨씬 깨끗했다. 재활용품에도 관계가 스며든 것이다. 2016년 11월부터는 재활용품 수거도 일반 청소용역업체가 아닌 자활기업에서 맡아서 하고 있다. 이 기업은 2016년에 얻은 수익금 가운데 100만 원을 마을기금으로 내놓았다. 모두가 ‘관계’가 만들어낸 변화다. 골목과 ‘도시 광부’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시민과 공동체에 있다
“수혜자(시민)의 참여와 동원은, 그들의 지식과 능력, 존엄과 자부심이 늘어날수록 더 나은 혁신적 해법으로 이어진다.”
유럽의 6개 사회 혁신 기관들이 공동 연구 끝에 내놓은 결론이다. 앞서의 두 가지 사례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답은 시민과 공동체에 있다고.
우리 앞에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도 풀지 못하는 숱한 문제들이 놓여있다. 이번 쓰레기 대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국이 다시 그 많은 재활용품을 빨아들이거나, 유가가 오르면 문제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당장 우리 앞에서 문제가 사라질 뿐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계속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 해법을 찾고 만들어가야 할 때다. 답은 늘 시민과 공동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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