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프로젝트 연구모임 ‘과로자살연구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과로자살연구팀에서 사회복지사의 노동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천주희연구원이 쓴 글로, 월간지 <일터>에도 동시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몇 달 전, 문재인 정부의 정책 플랫폼이었던 <광화문 1번가>에는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제안(“복지사도 복지가 필요해”)이 올라왔다. 제안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 사회복지종사자들은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특례업종 분야에서 제외하는 것, 다음은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 표준임금을 지급하는 것, 마지막으로 돌봄 영역뿐만 아니라 학교, 의료 등 사회복지 영역의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표면에 드러난 사회복지사들의 문제만 보더라도, 사회복지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인력난으로 과로 노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로 직접 사람을 대면하는 사회복지사들은 감정노동에 시달리거나 복지제도에서 탈락한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등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우려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2011년) 제정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은 3년마다 한 번씩 실태조사를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2013년, 네 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잇따라 자살했다. 이들은 20~30대 사회복지공무원이었다. 한 사회복지공무원의 유서를 통해 사유를 짐작하건대, 그는 일터에서 비인격적인 대우, 직장 내 위계적 관료문화, 업무 압박, 과로 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들의 죽음 이후, 사회복지사들의 처우에 관한 문제가 잠시 수면 위로 떠 올랐으나 여전히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개선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나는 아웃소싱 직원입니까?
고우리(가명, 35세) 씨는 7년 차 사회복지사이다. 그녀는 현재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한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현재 우리 씨가 일하는 곳은 세 번째 일터이다. 사회복지사로서 그녀의 이력을 보면, 2~3년 단위로 일터가 바뀌었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지만,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규직이라고 하면 안정된 고용형태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계속 일을 할 수 있고, 연차에 따라 임금도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에게 정규직이란, 다른 의미였다.
정규직이긴한데, 사회복지는 정규직이 특별히 크게 의미가 없는 게 워낙 위탁사업이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위탁이 종결되면 사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좀 있어요. 지금은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위탁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어요. (…) 조건부 정규직? (웃음) 뭐라고 따로 붙이진 않는데 저희는 정규직이라는 정체성은 없어요. (…) 평가가 연 단위로 이루어지고, 3년 단위로 법인 운영 평가가 같이 이루어져요. 법인이 잘 운영하고 있는지 평가해서 재위탁 심사에 들어가는 거죠. 탈락되면 더 운영할 수 없어요. 이게 사실 사회복지사업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이걸 민간위탁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아웃소싱 같은 거.
우리 씨의 고용구조를 보면, 교육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한다. 상세하게 말하면, 교육청에서 법인에 위탁을 하고, 위탁업체에서 우리 씨를 고용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과 업무규칙은 교육청에서 받는다. 사회복지사들은 취직하더라도 2~3년마다 기관의 위탁 기간에 따라 불안정한 고용을 경험한다. 우리 씨뿐만 아니라, 시설 사회복지사들 또한 지자체에서 법인에 위탁을 주면, 그 위탁업체에서 사회복지사들을 고용하여 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씨가 자신을 “정규직”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아웃소싱”에 채용된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조 때문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불안정한 노동 구조의 골자가 되는 것은 우리 씨가 말한 것처럼 “위탁사업”구조이다. 사회복지사들은 개인의 업무 실적이나 만족도에 따라 평가받는 대신, 기관의 평가를 위해 일한다. 그로 인해 사회복지사들은 자신과 기관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높다. 자신의 고용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3년마다 행해지는 기관평가에서 기관이 좋은 점수를 받아야 위탁이 갱신되고, 사회복지사들의 고용은 연장된다.
어느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업무가 “(위탁)평가를 위한 평가”에 따라 배치되고, 연중 프로그램이나 행사 또한 최대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한 방식으로 조직된다고 했다. 프로그램 이용자의 수,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 등은 전년도보다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설이 독립적인 재정구조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관은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프로그램과 더 많은 이용자가 필요하다.
과로의 다른 언어들
: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 “깔때기”, 그리고 “양심 없는” 사회복지사
운영비가 부족하고 프로그램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는 본인 업무 외에 외부 사업을 지원해서 운영비를 마련한다. 외부 사업의 경우 10원을 쓰더라도 기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 작업으로 인해 야근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일은 추가되고, 그것이 곧 조직의 실적으로 쌓인다.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은어 중 하나는 ‘복지 깔때기’이다.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는 민원에 ‘복지’만 들어가도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에게 업무가 몰리고, 사회복지사들은 하나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에 “깔때기”라는 말을 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이유리(가명, 26세) 씨는 자신의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표현했다. 지역아동센터에는 센터장과 본인만 일한다. 그러니 토요일에도 프로그램이 있으면 외근해야 하고, 휴가는 엄두조차 못 낸다. 자신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사회복지사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는 주말에 외부 행사에 참여하면, 평일에 대체휴일을 쓸 수 없다. 이런 시간은 ‘(담당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관행 때문에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야근이 많은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 건 기본이고, 계약서를 쓸 때 추가근무나 당직을 하더라도 추가수당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에 서명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곳은 야근이나 주말에 일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휴가를 요구해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임금을 많이 줄 수 없다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상식이지만, 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한다. 따라서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곧 ‘양심 없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고, 추가 노동은 사회복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장려된다.
‘헌신’과 ‘후원’을 강요당하는 사회복지사
다시 우리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녀의 한 달 임금은 190만 원 정도이다. 7년 차 사회복지사 임금이 190만 원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래도 자신은 낮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씨는 교육청에서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그나마 급여기준이 정해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복지사들이 더 많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들이 각각 다른 임금을 받는 이유는 2005년 지방분권화 정책으로 복지시설 운영비 책임은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있으며, 지자체에서는 법인에 사회복지사업을 위탁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운영비에서 지출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들은 자신이 속한 지자체와 법인에 따라 각각 다른 임금을 받게 된다.
김가람(가명, 26세) 씨는 지난해 인턴 2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급여가 인상됐다. 그녀는 월 195만 원을 받는다. 월급은 기본급 178만 원(복지관)+5만 원(재단)+12만 원(지자체 사회복지종사자 특별수당)으로 구성된다. 가람 씨가 있는 곳은 되도록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 지급하려고 하지만, 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에 임금 차이는 큰 편이라고 했다. 한편, 이유리(가명, 26세) 씨의 월급은 기본급 150만 원(센터)+20만 원(지자체 사회복지종사자 특별수당)으로 구성된다.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현재 다른 지역, 다른 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특별수당이 차이가 난다. 또한 재정이 튼튼한 시설의 경우, 사회복지종사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있지만 영세한 시설(아동, 장애인 등)이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이처럼 저임금 구조가 지속되는 데는 사회복지사업의 재정구조도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 사회복지사를 “봉사자”나 “헌신”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여 임금 인상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관리자나 후원자들에 의해 지속되기도 한다. 한 사회복지사는 주변에서 “사회복지사는 그래야(가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거나, “후원금으로 어려운 사람들 돕는 데 쓰라고 했지, 너희들 주려고 하는 거 아니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도 노동하는 사람이지만, 그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복지사로서 일의 가치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인터뷰에서 만난 네 명의 사회복지사들은 낮은 임금에도 자신이 일하는 곳에 후원금을 내고 있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냈다기보다, “암묵적으로 대부분 후원을 하는” 문화 때문에 월 10만 원씩 후원하고 있었다. 일하는 곳 외에도 다른 곳에 기부를 강요당하는 일이 왕왕 있다. 유리 씨는 세금과 후원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140만 원을 받으며, 그 금액으로 생계비를 해결한다고 했다. 당장은 부모님 댁에 머물기 때문에 주거비가 들지 않지만, 독립을 생각하는 상황에서 낮은 임금은 독립을 주저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들은 경력이 있더라도, 경력에 따른 보상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20대~30대 사회복지사들은 빠른 이직을 고민한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둘이 결혼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는 자조 섞인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들은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기거나, 부양가족이 생길 때를 대비하기 어려운 경제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환은 개별 사회복지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사업의 생태계가 얼마나 불안정하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과로자살의 문턱에서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역할과 그들이 있는 현장을 떠올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착한 사람’ 혹은 ‘선의, 희생, 봉사’를 떠올린다. 타인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려하고, 이타적이고, 헌신적으로 사명감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이래야한다’는 관념이 오히려 사회복지사의 노동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다시 말해,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문화가 사회복지사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타인의 복지를 위해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하는 사람에게 사회에 헌신하고 감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노동윤리와 규율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사들의 과로 노동은 위탁구조라는 한 축과 동시에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문화가 만나 지속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이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감정노동 등으로 이어질 이유는 없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갈수록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은 확대되고, 기존의 자원으로 사회복지 정책이나 제도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면, 여기서 발행하는 비용은 모두 사회복지사 개인들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비용을 사회복지사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도 복지가 필요하다”라는 목소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사회복지사들이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살지만 정작 자신의 복지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환경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삶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사회복지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의 복지 또한 함께 갈 수 있다.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