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1. 2018년, ‘진보 시대 30년’의 출발
2. 시험대에 오른 소득 주도 성장론
3. 북핵 완성과 요동치는 한반도 지형
4. 지금은 역사를 보고 움직여야 할 때

 

1. 2018, ‘진보 시대 30의 출발

 

2017년 촛불시민혁명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갈망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부터 2017년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사회적 양극화와 청년실업 심화 등 갖가지 부작용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는 의연히 정착되어 왔다. 막바지에 이르러 민주주의가 도둑질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촛불시민혁명으로 멋지게 막아냈다. 지나온 30년은 그 누가 뭐라 해도 ‘민주시대 30년’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30년이라는 시간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30년은 인간이 미래를 기획하고 손수 책임질 수 있는 최대치이다. 그 이후는 후대에게 맡겨야 한다. 거꾸로 30년은 새로운 시대를 기획할 때 능히 시야 안에 넣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30년 앞을 내다볼 수 있을 때 한 시대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촛불시민혁명을 딛고 새로운 시대로서 30년을 기획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객관 정세의 절실한 요구이기도 하다.

누구나 직감하고 있듯이 한국 경제는 기존 틀 안에서는 답을 찾기 쉽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 틀과 기조에서의 전면적인 전환이 불가피한 것이다. 북핵 문제 또한 한반도 지형의 전략적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이 모두는 30년 안목의 긴 호흡으로 임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것들이다.

한국 경제의 출구는 문재인 정부가 공언했듯이 사람 중심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북핵 문제 출구는 한반도 냉전 체제 해체에 있다. 2018년은 이 두 과제의 첫 매듭을 풀어야 하는 해이다. 두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문재인 정부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 사회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 최고의 긴장감을 갖고 임할 수밖에 없다.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과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는 전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징표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대는 ‘진보 시대 30년’이 되어야 한다. 2018년은 그 출발점이다.

 

2. 시험대에 오른 소득 주도 성장론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 머릿속에는 공통적으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쓰라린 실패 기억이 아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개혁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면서 노동보다는 자본 이익 추구를, 국가 통제보다는 시장 자유를 우선했다. 그 결과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심각한 수준의 불평등 심화였다. 게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경제 분야에서의 보수적인 접근은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다. 연간 경제성장률 등 경제 실적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한참 못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지켜본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어떤 관점에서 경제 문제에 접근할 지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동을 걸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국가의 시장 개입을 전방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는 보수 진영에서 노동 편향이라고 부를 만큼 노동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저임금 연내 19.6% 상승을 관철시키고 비정규직 해소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재론의 여지없이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리어 이전 시기 이러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는 그 어떤 시도도 국민경제 발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절실하더라고 국민경제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 해명을 위해 동원한 이론 틀이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노동자와 자영업자 소득 증가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경제 성장이 다시 소득을 증가시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은 부자들에 비해 소득중 보다 많은 부분을 소비로 지출하기 때문에 이들 계층 소득 비중이 높아질도록 시장 확대로 인한 경제성장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제기된 ‘임금 주도 성장론’을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 현실에 맞게 적용한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홍장표 교수(현 청와대 경제 수석)가 지난해 6월 제출한 보고서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 수요체제와 생산성체제 분석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 1% 증가 시 국내총생산(GDP)은 0.68~1.09%가 증가했다. 또 실질임금이 1% 늘어나면, 실질노동생산성은 0.45~0.50%, 고용은 0.22~0.5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9년에서 2012년 실질임금의 변화가 국내총생산과 노동생산성, 고용에 미치는 효과 등을 분석한 결과다. 더불어 홍 교수 연구에 의하며 기업의 수익성 향상보다 소득분배 개선이 투자를 더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장표 교수의 연구 결과는 정밀한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타당성을 인정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덕분에 홍 교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립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공식적인 이론 틀로 채택될 수 있었다.

최저임금 16.9% 인상은 소득 주도 성장론을 실현시키기 위해 첫 시동을 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 인상 시도는 통상적으로 진행된 것 이상의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의거하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인 것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소득 주도 성장론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대로 노동자 실질임금을 증대시키면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어느 정부 관계자 표현대로 최저임금 인상이 매출을 증대시켜 줌으로써 김밥 집 사장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대해 진보와 보수가 첨예한 입장 대립을 보여 왔다. 진보는 최저 임금 인상 정책이 경제에 별다른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 순기능을 할 것임을 다양한 논지로 뒷받침해 왔다. 반면 보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일자리 감소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맹공을 퍼부어 왔다.

우리는 진보는 옳고 보수는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선악 논리에서 벗어나 사태를 보다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안 없는 딴죽걸기 식 보수의 비판도 문제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 주도 성장론이 이야기한 그대로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진보의 안일한 현실 인식도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관계자 상당수는 최저임금 인상 – 노동자 실질임금 증대 – 경제 성장 촉진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을 철석같이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자 실질임금 증대, 경제성장 촉진이라는 세 개의 과정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소득 주도 성장론의 자기 최면에 따른 어설픈 결과일 뿐이다. 노동자 실질임금 상승과 경제성장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은 상당 정도 인정될 수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실질임금 증대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저임금 인상과 실질임금 증대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은 생각만큼 탄탄하지 않다. 최저임금이 인상된다고 반드시 실질임금이 증대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먼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성장 동력 확보는 경제 제일의 과제라는 사실이다.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성장 동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는 그 어떤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1970년대 이후 선진자본주의가 겪은 장기 불황 시기는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성장 동력이 소진되면 분배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기존 복지 체제를 유지하는 것마저 버거운 과제가 되었다.

소득주도 성장론도 성장 동력이 확보되어 있는 조건에서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소득주도 성장론은 성장 동력이 살아 있는 조건에서 분배 개선을 통해 성장을 원활하게 촉진하는 부속 장치이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 한국 경제 성장 동력이 거의 소진되어 있다는데 있다. 슈퍼 호황을 누린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성장 엔진이 모두 꺼져 있는 상태이다. 2017년 경제 지표를 기준으로 볼 때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매출, 공장 가동률, 주가 모두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실물경제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가동률의 경우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버티기 쉽지 상황이었다. 경기에 민감한 상인들 입장에서는 장사가 안 돼 파리가 날릴 지경이었다.

성장 동력이 왕성하게 살아 있는 조건에서는 커진 파이의 보다 많은 부분을 소득 분배 개선에 사용할 수 있다. 임금 인상 압력을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성장 동력이 극도로 소진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지급 능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사용주들은 임금 인상 압력을 흡수하기보다 다양한 형태로 저항하기 쉽다. 크게 세 가지가 예상된다. (…계속)

*표와 그림을 포함한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의 pdf 파일을 다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