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2017 대선 정책 vs. 정책> 시리즈를 통해, 촛불시민혁명 이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합니다. 각 후보들의 정책 비교를 통해 생활인들의 삶에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정승일/ 새사연 이사
우리나라는 현재 여러 면에서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위기, ‘20년 전인 1997년에 발생한 IMF 환란시보다 더 장사가 안 되고 살기가 힘들다’는 팽배한 불만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위기, 또한 1994년 미국의 북한 폭격 계획 이래 최악의 남북간 전쟁 위험성에서 나타나는 남북관계의 위기가 있다. 5월 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됨에 따라 정치적 위기는 완화되겠지만 경제 위기와 외교국방의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대선 후보들의 경제해법에 집중하여 이야기해보자.
홍준표와 하이에크
먼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내세운 경제해법은 그의 선거 포스터에 실린 “기업에는 자유를, 서민들에게는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에 집약된다. 홍준표 후보는 “경제정책의 기본은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부자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잘못된 복지정책”이라고 발언해왔다. 비록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라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줄푸세와 같다.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신나게 투자를 늘리니 좋은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고 게다가 민주노총과 전교조 같은 노동조합과 좌파 시민운동을 척결하여 법질서를 단호하게 세우면 기업들이 더더욱 신바람이 나서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 그의 경제사상이고 경제해법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지난 10년간 주장하고 실천해왔던 것이며 또한 자유기업원과 전경련,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뒷받침해온 주장이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줄푸세 해법의 원조는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다. 하이에크는 세상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자 또는 시장주의자라고 부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원조이다. 18-19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 또는 구자유주의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그리고 그 후계자들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른다.
하이에크는 1930년대의 대공황의 와중에 세계 각국 정부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한 적극적 시장개입 조치에 반대하면서, 기업 및 금융시장 규제 도입과 소득세 및 법인세 증세, 사회복지 확대와 노동권 강화 등의 정부정책이 결국은 “노예로의 길”을 활짝 열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안철수와 슘페터
이에 반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경제해법은 슘페터에 가깝다. 슘페터 경제사상의 핵심이 기업가정신 즉 창업가 정신이다. 빌게이츠와 스티븐 잡스처럼 ‘혁신적 파괴’를 이끌어가는 영웅적인 창업가 기업주들이야말로 시장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활력의 원천이며, 창업가 정신이 소실되는 순간 자본주의는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 슘페터의 주장이었다.
안철수는 성공적인 벤처기업가로서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2011년에 혜성처럼 정치적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IT산업 창업의 요람인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유학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중소벤처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내세운다. 또한 기술창업 등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그것을 가로막는 쓸데없는 규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규제 프리존 설치’ 같은 시장주의(신자유주의) 정책도 마다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세금인상에 대해서도 혹시나 그런 정책이 창업가정신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대처한다. 재원 마련의 한계에 따라 복지재정에 한계가 있으니 사회복지를 늘리더라도 조심스럽게 늘리고자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권 강화에 찬성하더라도 중소벤처 기업가들의 원성을 듣지 않게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발언한다.
기업규제 완화를 외치는 안철수의 모습에서 언뜻 하이에크-홍준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지만 홍준표와 안철수는 다르고 하이에크와 슘페터도 다르다. 홍준표가 대기업 및 재벌그룹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를 주장하는데 반하여 안철수는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기업과 재벌그룹을 단단히 규제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창업이 활발해져서 좋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 홍준표 및 뉴라이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독과점 규제 및 경제력 집중 규제에 반대했던데 반하여, 슘페터는 독과점 및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거대기업의 출현을 내심 반대했다. 왜냐하면 슘페터가 대기업에서는 혁신 활동을 창업가(자본가)가 아닌 월급쟁이 R&D 인력이 수행하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영혼과 본성이 소실되어 사회주의 경제로의 전환이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게 아니냐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슘페터의 인생 말년인 1930-40년대에는 실제로 세계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면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슘페터는 경쟁적 시장에서 치열하게 ‘혁신 경쟁’이 일어나는 경쟁시장 자본주의를 이념적 이상향으로 꿈꾸었으며, 따라서 만약 그가 오늘날 이 나라에 살았다면,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 강화를 통한 공정한 경쟁질서(시장질서) 확립을 가장 중시했을 것이다.
문재인과 케인스, 국가재정과 사회복지 확대
한편, 문재인의 경제사회정책은 케인스의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4월 12일 ‘향후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에서 50조원을 조달하여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등 10대 핵심 분야에 투자하여 연평균 50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사람경제 2017’ 플랜을 발표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추가경정(추경)예산안을 편성하고, 국가재정지출 증가율을 현행 연평균 3.5%에서 7%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확대된 재정지출을 주로 육아와 교육, 복지, 주택, 보건의료 등 사회복지분야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주 반가운 공약이며, 실제 그것이 케인스의 여러 경제해법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은 문재인 측 공약에 맞서 안철수는 ‘정부 재정을 쏟아 부어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집권하면 ‘그런 정부 주도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폐기하고 민간주도로 전환하겠다’고도 했다. 이러한 안철수 후보의 비판에 맞서 문재인 후보 측의 김상조 교수는 ‘지금 같은 경기불황 시에는 적극적 재정지출 확대가 유일한 정책수단’이라고 설명하면서, 재정지출 확대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타개책으로 쓰인 경제학자 케인스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안철수 후보는 케인스의 경제해법에 반대한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 ‘정부의 역할은 교육개혁을 통한 창의적 인재 양성과 독자적 과학기술력 확보, 공정경쟁 산업구조 마련 등 3가지’라고 한정시켰다.
실제로 오늘날 신슘페터(Neo-Schumpeterian)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기존의 경쟁적 시장질서 창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교육(보육) 정책을 통한 기술혁신인력 양성과 적극적 과학기술 정책을 통한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으로 확장시켜 바라본다. 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니며, 바람직한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미국의 클린턴-힐러리 민주당이 과거 취했던 경제정책의 기조이기도한데, 여기서 노동권 및 사회권(복지국가) 강화는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리며, 따라서 적극적인 재정확대 및 증세에도 소극적이다. 딱 안철수 후보 측의 입장이다.
이것은 또한 슘페터의 입장이기도 했다. 슘페터는 대공황과 대불황 같은 경제위기를 ‘기업과 금융시장에서 과도하게 발생한 투자 거품이 해소되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과정’으로 보았으며, 자연스런 시장조정 메커니즘(즉 ‘자유시장’ 원리의 작동)에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시장규제 등을 통해 개입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부당한 잘못된 정부개입’이라고 보았다. 재정지출 및 사회복지 확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슘페터는 하이에크와 같았고, 케인스에 반대했다.
이에 반해 케인스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 미국 루즈벨트 정부와 스웨덴 한손-비그포르스 사회민주당 정부가 취한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 정책에 찬성했다. 케인스는 대공황으로 폭증한 실직자 및 빈민을 구제하고 더구나 줄줄이 파산하는 은행과 기업들에 대한 긴급 구제를 위하여 국가가 재정투입을 크게 확대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만약 민주정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치당 또는 공산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실제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내세운 정당과 대통령이 집권하거나 또는 유력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케인스의 경제해법에 소극적인 서구의 민주·진보 정당들이 있다.
경쟁적 시장질서와 경제민주화, 직장민주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미국의 루즈벨트 정부와 스웨덴의 한손-비그포르스 정부는 한편에서는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세계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이루어냈고 또한 동시에, 산별노조 및 산별 단체교섭의 법제화와 기업 이사회에 노동이사제 도입 등 ‘경제민주화’에 나섰다. 이러한 노사관계 민주화를 경제민주주의라고 불렀다. 경제민주화를 ‘직장 민주화’로 이해한 것이다.
이에 반해 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다르게 이해한다. 그는 ‘정부의 역할은 혁신적 기업가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그 판에서 반칙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는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그쳐야 한다’고 하면서, 경쟁적 시장질서 확립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대폭 강화시키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정책을 ‘경제민주화’라고 칭한다. 아담 스미스의 ‘야경국가론’ 즉 국가는 ‘공정한 심판자 역할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작은 정부’ 사상이다.
‘경제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 경제민주화를 노사관계의 민주화 즉 ‘직장민주화’로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있다. 실제 192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유럽과 미국 등 세계보편적인 경제민주주의 패러다임이며, 필자인 나 역시 경제민주화를 이런 입장에서 찬성한다. 이에 반해 경제민주화를 경쟁적 시장질서의 회복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현재 안철수 진영의 경제민주화 프레임이 이러하다. 물론 여타 후보들 역시 대부분 경제민주화를 공정한 경쟁적 시장질서 확립의 프리즘으로 이해하면서 그것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한다.
재정의 케인스, 투자+금융의 케인스
케인스는 사회복지와 최저임금제, 노동조합, 부자증세, 그리고 사회투자(공공투자) 및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소비확대(유효수요 창출)를 요구했다. 이것이 오늘날 문재인 후보의 ‘소득(소비) 주도 성장론’으로 표현된다. 매우 올바른 해법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보완되어야 할 점이 있다. 케인스는 ‘실물투자의 성장’ 또한 원했다. 케인스는 막대한 화폐자본(금융자본)이 투기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고 그 대신 그것이 생산적 분야로 흘러들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서는 은행과 자본시장(증권시장)에 대한 철저한 규제·통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재정의 케인스’는 잘 알려져 있는데 반하여, ‘투자+금융의 케인스’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케인스는 1930년대의 대공황이 발생한 근본 원인의 하나가 생산적 투자가 아닌 금융투기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즉 기생충적인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에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화폐자본(금융자본)에 뿌리 깊게 내재한 투기적 속성(그 일부인 유동성 선호)을 강력하게 통제하여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서는 ‘투자의 사회화’가 필요하며, 필요하다면 정부가 금융시장을 일정하게 국유화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정부가 예금 이자율 및 대출이자율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규제하고, 동시에 은행 영업이 부동산 투기 및 증권시장 투기로 흐르지 않도록 강하게 규제하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구나 단기적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무대인 주식 및 채권 시장에 규제의 족쇄를 물려서 유가증권시장(자본시장)이 진실로 건전한 생산적 투자자 역할을 하도록 전환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렇듯 케인스는 화폐자본(은행 및 자본시장)에 대해 한편으로는 국유화, 다른 한편으론 투기적 성향에 대한 엄격한 정부규제를 통해, 화폐자본(금융투자자와 금융기관)이 투기와 약탈적 수익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적 투자, 실물투자의 주체로 전환되기를 요구했다. 국유화된 화폐자본이란 오늘날 한국경제의 경우 산업은행, 기업은행, 그리고 ㈜한국벤처투자 같은 정책적 융자·투자 금융기관에 해당된다. (차기 대통령 정부는 필요하다면 중소기업 및 강소기업에 민간과 함께 공동으로 투자하는 공공투자기관을 설립할 수도 있다). 케인스는 공공투자를 통한 생산적 투자 지원 정책과 함께, 민간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생산적 투자의 증가가 소득 및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는 투자의 선순환 즉 투자승수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대선 후보들의 경제정책에는 투기적인 화폐자본(금융산업)에 대한 케인스의 해법이 빠져 있다. 여전히 주주민주주의(shareholders democracy)를 경제민주주의라고 부르면서, 사모펀드 및 헤지펀드의 역할과 권리를 더욱 강화하고, 또한 일반 주식투자자(소수주주)의 권한과 역할 역시 강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약속하고 있다. 또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관치금융이므로 그 역할을 축소하거나 또는 민영화하여 아예 국책은행을 폐기해야 한다는 정책전문가들도 많다. 민주당 및 국민의당 정치인들의 다수가 여전히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을 모델로 하는 금융시장구조 재편 및 기업지배구조 재편을 요구하면서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의 일환인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주주민주주의로, 경제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재벌개혁의 유일무이한 대안은 주주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산업자본(생산적 투자자)의 역할을 줄이고 금융자본(비생산적 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해법이다. 화폐자본(금융시장)의 투기성과 기생충적 성격을 억제하고, 그 대신 화폐자본의 생산적 투자자 역할을 강화하여야 비로소 자본주의의 건전한 문명적 역할이 만개한다고 본 케인스의 관점과는 반대되는 입장이다.
케인스와 산업구조조정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의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 9년째 계속되는 세계 대불황의 여파로 세계의 선박수요가 감소하면서 대우조선이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최근 세계경제는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선박수요 역시 조만간 살아날 것이라고 조선업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대우조선 부채의 출자 전환 등을 통해 적극적인 조선업 구제에 나섰다. 그래야만 대규모 파산과 대규모 실직자 발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케인스라면 어땠을까? 그는 당연히 대우조선 등 조선 산업에 대한 국책은행의 적극적 개입조치에 찬성했을 것이다. 국책은행의 경제적 역할을 더욱 강화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한 자본시장 투자자들은 대우조선 회생에 완강하게 반대해왔다. 대표적으로, 대우조선 회사채 4천억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자산운용자들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다. 이들은 대우조선해양의 회생가능성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2년짜리 계약직인 국민연금 자산운용 펀드매니저들의 관점에서, ‘대우조선이 2년 이후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은 자신들의 실적과 연봉에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진보적 경제전문가들도 국민연금 펀드매니저 편을 들고 있다. 이들 역시 ‘산업은행은 관치금융이고 국책은행의 기능은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기수익에 더욱 관심이 많은 자본시장 투자자의 입장을 옹호하여왔다. 케인스의 해법과 정반대되며, 오히려 전형적인 시장 자유주의 즉 하이에크의 해법이다.
중소벤처기업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과 같은 대불황의 시장 불확실성의 환경에서 자본시장과 은행은 단기수익의 관점에 서서 중소벤처기업 및 잠재적 강소기업의 성장을 위한 투자와 여신에 소극적이다. 만약 케인스라면 이 경우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극심한 불확실성에 따른 과도한 투자 리스크를 정부가 나누어 분담하여야 상업적 투자가 구현되므로, 정부로 하여금 공공투자공사 같은 기관을 설립하여 공공과 민간이 공동의 리스크 분담 투자에 나서자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산업은행과 ㈜한국벤처투자, 성장사다리펀드 같은 공공적 정책금융기관의 생산적 투자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서, 안철수 후보가 중시하는 ‘중소벤처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투자+금융의 케인스’가 절실한 것이다.
‘소득주도 + 투자주도’의 두 바퀴 경제성장론
흔히 케인스의 불황 탈출 해법을 유효수요 창출로 이해한다. 그런데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국가정책에는 소비 확대(내수시장 확대 및 그것을 뒷받침할 개인소득 확대)와 이것을 위한 소득불평등 타파(부자 및 대기업 증세와 사회복지 확대, 최저임금 인상 및 노동권 강화) 정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조치들이 매우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물투자의 확대도 중요하다. 더구나 케인스가 자신의 『일반이론』에서 가장 중시한 것이 생산적 실물투자 확대였다.
한국경제는 현재 ‘자본 과잉’ 상태에 있다. 시중에는 수천조 원의 규모로 떠돌아다니는 유동자본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좋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백만 명의 청년구직자들이 있다. 한편에서는 자본이 과잉이고 다른 한편에는 구직자들이 과잉 상태이다. 기업의 여유자금(사내유보금)과 은행의 여유자금(운용자산), 그리고 사모펀드·헤지펀드에 몰리는 화폐자본 등의 대부분이 생산적 실물투자 확대의 용도로 활용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상황과 비슷한 1930년대 대불황의 시장 환경에서 기업가들은 엄청난 시장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실물투자를 꺼렸다. 이에 케인스는 정부가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또한 동시에 금융시장·자본시장의 투기성을 규제하는 ‘투자의 사회화’에 나서야 비로소 화폐자본의 생산적 실물투자 확대가 달성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은행과 자본시장이 ‘스스로’ (즉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 생산적 투자를 확대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채찍을 휘두르고 당근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루즈벨트–케인스의 해법, ‘더불어 성장’의 해법
‘소득(소비) 주도 성장론’은 작동하는데 비해 ‘투자 주도 성장론’이라는 또 다른 바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국민경제의 불균형이 초래된다. ‘재정의 케인스’만 채택하고 ‘투자+금융의 케인스’는 채택하지 않는 경우, 금융시장(자본시장)과 대기업 및 중소벤처기업에서 생산적 실물투자의 확대는 요원한 일이 되어 버린다.
문재인 후보의 현재 경제공약이 구현될 경우 소득주도 성장론이 실현된다. 사회복지 강화와 최저임금 인상, 노동권 강화로 일정한 임금인상이 가능할 것이며, 소득분배 개선 효과와 함께 삶의 질 개선과 소비(내수)의 활성화가 일정하게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큰 역사적 성과를 이루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것에 더해, 만약 생산적 실물투자 증가를 위한 ‘투자와 금융의 케인스’ 정책이 보완된다면, 대단한 역사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의 관점에서 시장 경제의 선순환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긍정성, 즉 ‘자본의 문명적 기능’에 해당하는 ‘생산적 실물투자’였다. 자본투자의 문명적 역할을 살리면서 동시에 그것의 부정적-기생적 역할을 억제하려면,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투기성을 확실하게 규제하여야 하며, 또한 기업지배구조 및 금융시장구조를, 그리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지배구조 및 자산운용 구조(국민연금의 의결권 참여 전략의 방향을) 기업의 R&D투자와 인적자본 투자, 설비투자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설계하여야 한다. 대기업 및 재벌그룹의 경우, 그 기업지배구조에서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대하면서(노동이사제 및 독립적 감사위원제 도입), 동시에 대기업의 R&D투자와 설비투자, 인적자본 투자가 확대하는 쪽으로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유가증권 투자의 경우, 투자기업에 있어 단기적 재무수익 증가에 머무르지 말고 장기적인 실물투자 및 일자리 투자 증가의 방향으로 경영진이 움직이도록 국민연금의 운용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연금이 국공립 보육 및 의료시설과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투자에 나서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적 복지+문화 서비스의 확장에 필수적인 공공투자(사회투자)의 증가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가 확실하게 증가하며, 그래야만 실질임금 증가와 노동시간 단축이 별다른 국민경제적 부담 없이 가능해진다. 또한 그래야만 ‘직장민주화’를 핵심 과제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원활하게 달성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의 투기성이 강화되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자본의 문명적 투자자 역할이 강화되는 경제민주화’여야 한다. 그래야 그 결과 보다 많은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일자리 창출형의 경제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다. 엄청난 유휴자본과 유휴인력(실직자, 구직자) 등의 유휴 자산이 서로 결합하여 최대한 생산적으로 재활용되는 방향의 경제정책을 이제부터 설계하여야 한다. ‘자본의 낭비’에 해당하는 부동산투기와 기업에 대한 투기적 공격, 그리고 투기적인 자본시장 투자자들의 권리 강화가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억제하는 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 대신 ‘자본의 생산적 활용’에 해당하는 실물투자 및 일자리 창출 투자를 격려하고 촉진하는 방향으로 기업지배구조와 금융시장의 규제를 민주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자본주의가 9년째 장기불황과 불확실성에 처하여 여전히 마땅한 수익을 내는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과잉 금융자본’의 상태를 종식하고 한국경제를 ‘더불어(포용적) 성장의 주역’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하는 해법, 즉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경제해법이다.
[한줄 정책] 생활인이 바라는 정책 한마디 2017 조기 대선! 새로운 대통령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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