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2017 대선 정책 vs. 정책> 시리즈를 통해, 촛불시민혁명 이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합니다. 각 후보들의 정책 비교를 통해 생활인들의 삶에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정용일/ 새사연 회원, 전 <민족21> 편집국장
대선 후보들의 남북관계·통일 관련 정책은 참담한 형편이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통일지향 정책과 대안은 없거나 그나마 있던 것도 퇴화하고 말았다. 1700만 명이 한겨울을 이기고 ‘만들어 낸’ 촛불대선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 과정에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냉전시대로 퇴행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의 통일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수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그 어떤 정책과 공약도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대선을 26일 남겨둔 현 시점에서는 그렇다.
물론 지금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안보 문제가 가진 복잡성 때문에 말은 못 하지만 나중에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잘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되면 잘 하겠다”는 이야기는 박근혜에게 속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구나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는 철학과 소신 그리고 방법론을 가지고 있어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은, 거의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 ‘나중에 두고 보자’는 식의 주장이 통할 여지는 없다.
그나마 각 정당과 후보별로 일정한 차이를 보였던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입장도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 호의 한반도 이동이라는 단 하나의 카드로 모든 후보들 간에 차이가 없어져버렸다.
당장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이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극적인 반전을 통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도래했을 때 남쪽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드는 주도자가 되기는커녕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남북협력을 통해 저성장·장기불황을 돌파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가능성도 물 건너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과 후보들의 입장이 처음에는 어떠했으며, 왜 바뀌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것인지 살펴보는 일은 필요하다.
일단 외부 요인, 즉 한반도 주변 정세부터 살펴보자. 지난 6일과 7일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우리가 이 회담에 주목한 것은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관련 의제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오마바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실패했다”고 공언한 트럼프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시진핑과의 한 판 승부는 공동 기자회견도, 성명서도 없이 끝났다. 그러나 회담이 진행되던 중 미국은 시리아를 폭격했고, 이는 “북에 대한 경고”라고 일제히 보도됐다. 이어서 호주로 향하던 칼빈슨 항모 전단이 기수를 한반도로 돌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베넘 미 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은 “북한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며, 안정을 해치는 (그들의) 미사일 시험과 핵무기 개발 때문에 이 지역의 최고의 위협”이라고 말해 북한의 도발(가능성)이 칼빈슨호를 파견하는 이유라고 못을 박았다. 이때부터 SNS를 통해 소위 ‘4월 위기설’ ‘미국의 북 폭격설’ 등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종편을 비롯한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 vs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으로”
사드 배치에 대해 가장 먼저 입장을 바꾼 것은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였다. 안 후보는 지난 6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해 “다음 대통령은 사드 배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사드 배치 반대’ 당론도 찬성 쪽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언론들은 안 후보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굳히기 위해 ‘안보는 보수’라는 색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애초 사드 배치의 졸속 결정과 부정적 결과를 강조하던 입장에서, 나중에는 명확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최종 결정권을 다음 정부로 넘겨주면 외교적으로 충분히 해결해 낼 자신이 있다”고만 밝혀 ‘전략적 모호성’이 담긴 입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지난 11일 “북핵이 고도화 될 경우”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사드 배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불가능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다만 “그러나 북한이 핵을 동결한 가운데 완전폐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면 사드 배치 결정을 잠정적으로 보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소형화·다종화·경량화를 목표로 핵개발을 더욱 다그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도 마감단계에 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이 스스로 개발하고 확보한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폐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과 중국도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의 북한 문제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북핵폐기’를 주장하며 지난 20여 년간 북한을 압박했지만 ‘핵능력 강화’ 외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을 놓고 자유한국당 홍준표는 “사드 배치를 두고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긍정으로 돌아설 듯이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참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도 “문 후보나 안 후보는 사드 배치를 계속 반대하다가 이제 와서 보수표를 어떻게든 얻어보려고 말을 180도 바꾸는 사람들인데, 정말 위험한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와 함께 청산되었어야 할 적폐세력이 두 야당 유력 주자들을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리게 된 것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지난 11일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의 만남에서 “저와 정의당은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피력해왔다”면서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사드 배치에 대한 재검토가 국회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얘기해왔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원외정당이긴 하지만 민중연합당의 김선동 후보도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재개 문제에 있어서는 심 후보와 같은 입장이다. 남북관계 정상화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적폐라고 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도 현재까지는 김선동 후보 한 사람뿐이다. 유력 주자들은 뜻이 없고, 진보 후보는 힘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재임 중 이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데 실패했다. 뜻이 있어도 실제 폐지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적폐청산을 내건 촛불항쟁으로 만들어진 이번 조기 대선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내지는 개정)를 공약으로 내세운 유력 후보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가리키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한편, 이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북한은 11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한 것 외에 핵관련 발언 등 대남·대외 메시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무시’인지, 아니면 ‘폭풍전야의 고요’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동북아 정세가 격동하매 촛불의 고민은 깊어가고
이번 ‘4월 위기설’과 사드 배치 및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입장 변경 논란을 통해 득을 본 자 누구이며 손해 본 건 누구인가.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대세론에서 양강 구도를 만들어 준 보수층의 기대에 한층 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재인 후보는 실익은 없이 입장만 바꿨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고,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햇볕정책’의 적통자라는 자부심에도 상처를 입게 됐다. 홍준표와 유승민 후보는 “거 봐라, 안보는 우리라니까”라고 회심의 미소를 띄울 수 있게 되었으나 대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심상정 후보는 유력 후보들과 정책적 차별성을 뚜렷이 하면서 완주해야 할 명분을 하나 더 쌓았다.
미국은 항모선단의 진로를 한 번 바꿈으로써 한국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자발적(?) 항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국익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압박을 강화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역내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줄이긴 했으나 반대급부로 대북 압박에서 상당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우리 국민들, 특히는 촛불민심이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서 우리 운명을 결정할 핵심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우리의 입장과 이해를 관철시키기는커녕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대통령 후보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이런 꼴 보려고 그 추운 겨울날 촛불을 들었던가’하는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언제쯤 대외관계에서 당당하고 자주적인 입장을 가지고,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철학과 경륜, 세련된 방법을 구사할 줄 아는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인가. 언제가 되어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에 걸맞게 국정 방향 결정과 운영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아니 최소한 온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만큼이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인가.
많은 한반도 문제,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향후 10년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낡은 체제가 물러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분수령이 될 것이며, 이후 몇 백 년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받아 안지 못한다면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사드 배치 반대” “전쟁 반대” “남북협상 촉구”를 요구하는 새로운 촛불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사안들은 ‘상처입은 자존심’의 회복 정도가 아니라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줄 정책] 생활인이 바라는 정책 한마디 2017 조기 대선! 새로운 대통령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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