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재벌그룹 개혁으로 좁게 생각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마치 자유시장 또는 공정시장 원칙을 강화하는 구조개혁을 하면 재벌그룹 오너들의 갑질 작태와 족벌 경영이 사라져 한국 사회에 공정한 세상이 열릴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재벌그룹이 해체 또는 축소되어 독립적 대기업들로 전환하게 되더라도 대기업들에서 인권과 노동권이 드라마틱하게 신장되고 CEO와 임원들의 갑질 횡포, 직장 상사들의 악질적 갑질이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그룹에서는 종종 총수 일가 형제·자매들 간에 경영권 분쟁과 골육상쟁이 일어난다. 2015년 가을, 롯데그룹의 신동빈-신동주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된 논란은 2016년 들어 롯데그룹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로 확대되었다. 당시 청와대 우병우 전 수석이 총지휘하는 검찰 수사의 칼끝은 롯데그룹 오너 및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 비자금 조성과 탈세 문제로 향했다. 롯데만이 아니다. 2014년 12월에는 대한항공 그룹의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키며 항공법을 위반하여 2015년 5월의 2심 재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벌 일가의 왕족질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의 손자인 정일선 현대BNG-Steel 사장은 자신의 운전사에게 모닝콜과 초인종 누르는 시간과 방법 등 하루 일과를 상세하게 적어놓은 A4지 140장짜리 매뉴얼을 주고는 그가 그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못할 경우, 욕하고 때리는 것은 물론 감봉까지 했다. 운전사를 노예 취급한 것이다.

재벌의 갑질, 부자들의 갑질

자기 회사 종업원을 정당한 인권과 노동권을 가진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노예 또는 노비처럼 마구 다루는 재벌 일가의 꼴불견 작태에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많은 이들 특히 민주·진보 측의 학자와 정치인들은 이것을 마치 재벌들이 중세 유럽의 귀족적 봉건영주처럼 군림하기 때문인 양 비난한다. 이런 사건들은 “한국경제가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적인 재벌 일가에 의해 지배되는 봉건적 자본주의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전형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저런 갑질 횡포를 근절하려면 삼성과 현대, LG, SK 등 재벌그룹을 해체 또는 축소하여 봉건적 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재벌 오너 일가의 갑질을 근절하는 본질적 해법은 봉건주의를 혁파하는 근대화, 즉 시장 자본주의를 본격화시키는 개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19세기 서구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진보성을 가진다고 역설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위 명제가 만약 옳다면, 꼴불견 갑질 행태는 이른바 봉건적 기업조직인 재벌그룹들에서, 재벌그룹 오너와 그 후계자들에게서만 관찰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최근 언론에 보도된 비재벌그룹 오너들의 갑질 행패를 보자.

2016년 4월 2일,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K(Mr. Pizza Korea)의 정우현 회장은 자신이 업무차 방문한 건물의 경비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폭행을 행사하여 고발당했다. 같은 4월에는 대림산업의 이해욱 부회장이 자기 차 운전기사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욕설과 함께 가혹행위를 했다 하여 고발당했다. 그 전인 2015년 12월에는 몽고간장으로 유명한 경남 마산의 몽고식품 김만식 명예회장이 상습적으로 운전기사를 욕하고 두들겨 팼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경남 창원의 무학소주 최재호 회장이 자기차 운전기사를 수시로 욕하고 시간외 근무수당도 지급하지 않아서 고발당했다. 그리고 2013년 9월에는 스포츠 용품 업체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이 셔틀버스 운영 지연으로 비행기를 놓치자 비행장 용역 직원을 신문지로 폭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2013년 4월에는 호두과자를 생산하는 중소제과업체 프라임베이커리의 강수태 회장이 서올 롯데호텔 지배인의 뺨을 지갑으로 여러 번 때렸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알려졌다.

미스터피자와 대림산업, 몽고식품, 무학소주, 블랙야크는 모두 대기업이며 작은 계열사도 가지고 있지만 재벌그룹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게다가 프라임베이커리는 중소업체이다. 그런데도 그런 회사들의 대주주들이 종업원 등 아랫사람들을 노비처럼 함부로 대하는 갑질 행패를 부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2015년 1월에는 부천 현대백화점 VIP 모녀 갑질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백화점에 한 번 올 때마다 7백만 원 이상 쇼핑을 하는 VIP 고객 모녀가 주차장 알바 학생을 무릎 꿇게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백화점 업계 근무자들에 따르면 백화점 고객들의 그런 비슷한 갑질 행태는 매달 1천만 원, 매년 1억 이상 쇼핑하는 VIP고객, 플래티넘 고객들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백화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와 커피숍, 비행기, 술집 등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돈 많은 부자 고객들’이 난폭한 갑질 행패를 부린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부유층 입주민 역시 최저임금 경비원을 노비처럼 다루면서 마구 폭행했다.

이처럼 종업원 또는 노동자를 노비 취급하면서 마구 때리고 욕질하는 졸부들의 갑질 행태는 재벌그룹 오너 일가에게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비재벌 대기업 오너들에서,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 오너와 그 후계자들에서 널리 목격되는 현상이다. 더구나 기업 오너는 아니지만 수십억, 수백억대의 빌딩과 금융자산을 가지고 매년 수억 원을 쇼핑하는 재산가와 그 가족들에게서도 흔하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대한민국 상위 1% 또는 0.1%에 속하는 부자들, 이른바 부르주아라는 점이다. 이들 역시 최순실과 정유라와 마찬가지로, ‘돈 가진 것도 실력이며, 돈 없는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생각하는 족속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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