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노력 : 서울 정착, 꼬박 10년
K는 지방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 와서 남은 학창시절을 모두 서울에서 보냈다. 지방에서 살던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 온 집은 전학 온 학교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큰방 1개에 주방 겸 거실이 작게 딸려있는 반 2층에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구조였다. 특이하게도 전기세나 수도세를 옆집과 공유해야 해서 사는 내내 불평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그 불만족스러운 집에서도 계약기간이 끝나자 전세비 인상과 월세 전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둘 다 여의치 않아 이사를 가야했다. 이런 식으로 1년 혹은 2년마다 높아지는 전세보증금을 감당하며 이사를 다녔다.
다행히 이사를 갈 때마다 사정은 조금씩 나아져 드디어 서울에 온지 10년 만에 K의 가족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를 사서 겨우 정착 할 수 있었다. K의 부모님은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곧 안정적인 서울생활과 직결된다고 여기고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낡은 아파트였어도 그것은 10년간 묵묵히 벌여온 조용한 전쟁에서 얻은 승리와도 같았다.
청년의 노력 : 금융위기와 스펙, 불안정일자리
이 후 K는 경상계열을 전공으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재학 중에 터진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침체된 청년 취업시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여타 스펙을 높이기 위해 휴학을 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K도 한 해 휴학을 하며 동기들과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학점수, 자격증 취득 등 취업준비를 위해 공을 들였다.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취업시장 문은 더욱 좁아져 있었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넘쳐나고 있었다. 수십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공공기관의 6개월 인턴에 채용 되었다. K는 이러한 일자리 경험을 추가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안정된 일자리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회에 첫 발을 디뎠다.
K는 사실 시간이 들더라도 정규직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처음 비정규직은 끝까지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은 탓이었다. 하지만 K는 더 이상 취업준비생으로 남아있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바로 10년 만에 얻은 서울의 아파트가 재개발 되면서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 때문이었다. 대출금이 주는 부담은 생각보다 무거워서 K가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으로 남아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어서 취업이 되어 가계의 어려움을 더는 것에 한 몫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재개발 : 기회? 함정?
기존에 자가 주택이 없는 임금근로자가 서울 시내에 새로 지은 30평대 아파트에 입주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다. 기존의 집이 재개발이 되더라도 분양을 받은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서울시내 ‘내 집 마련’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집 담보 대출을 받아 입주하는 가구 비율이 많았다. K의 가족도 그러한 가구 중 하나였다. ‘내 집’을 마련했다는 작은 보람과 함께 찾아온 큰 금전적 부담은 K의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고 앞서 말했듯이 K가 비정규직이어도 취업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간 6개월의 공공기관 인턴은 금새 지나가 계약 종료가 되었고 계약 연장이나 정규직 전환으로 연결되는 기회는 K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덧붙여 K의 부모님 중 한분이 지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상황까지 겹쳐 K를 둘러싼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가족들은 10년 넘게 전쟁처럼 지켜온 서울생활에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하고 가족회의를 열었다. 결국 K의 가족은 서울의 집을 팔고 지방으로 이사하기로 한다. 가구 내 소득이 있는 가구원이 1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바로 다음 달부터 대출금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도 충당하지 못할 것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작전상 후퇴 : 정착하는데 10년, 떠나는데 반 년
부채를 청산하고 다음을 도모하자는 것으로 가족들의 의견이 모아졌고, K도 학업과 직장의 계약기간 모두 끝났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집안의 사정이 재정비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올 것이라 믿기도 했고, 지속적인 학업과 취업압박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작전상 후퇴’라고 생각하며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집을 알아보았다.
이사하는 데 있어서 충족시키고자 하는 요건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첫 번째, 대출금을 청산하는 것. 두 번째, 서울까지 1시간~2시간 안에 도착하는 지역일 것. 세 번째, 최소한의 도시 인프라가 형성된 곳. 네 번째, 자연친화적인 분위기. 다섯 번째, 전세. 하지만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경기도 지역에서 원하는 조건 대부분을 만족시키면 금액이 비싸거나, 월세이거나, 아파트가 아니거나, 대중교통의 혜택이 거의 없는 외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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