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택지개발과 뉴타운의 시대 ▷ 주택가격이 공식적으로 조사되어 공표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주택매매가격이 변동되는 추이를 살펴보면 외환위기의 영향이 짙었던 시기(1997~2001년)를 전후로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림1의 실질주택매매가격(주황색 선)의 추세를 보면 외환위기 이전인 199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즉 물가의 오름세에 비해 주택매매가격의 오름세가 낮았던 의미 있는 시기였다. 이렇게 주택매매가격이 안정된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토지공개념>이라는 정책기조 아래 1980년대 후반부터 토지과다보유세, 종합토지세, 공시지가제도와 같은 규제가 도입되고 <주택 200만 호 건설>이 본격화된 것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도시 주변에 분당, 일산과 같은 대규모 외곽신도시가 건설되는 이른바 <택지개발>의 시대였다. 이러한 택지개발은 교통비용과 에너지소비 증가라는 또 다른 도시문제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1990년대 전반에 걸친 주택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반면에 외환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01년 이후의 실질주택매매가격은 2003년까지 급격하게 증가하다가 이후에는 다소의 부침이 있지만 1990년대의 변화폭에 비하면 큰 변동이 없는 편이다. 2007년 실질주택건설수주액이 사상최대인 63조원에 이를 정도이므로 1990년대에 비해서 2003년 이후의 주택공급량은 오히려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주택공급량이 늘었음에도 1990년대와 달리 실질주택매매가격이 감소되지 않은 것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토지공개념제도가 완화되고 양도소득세면제, 아파트분양가자율화와 같은 부동산경기활성화대책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10여 차례에 이르는 부동산시장안정화대책과 대규모 국민임대주택 공급에도 불구하고 주택매매가격이 낮아지지 않은 것은 1990년대의 주택공급이 택지개발을 통한 신규주택 공급이었던 것에 비해 2000년대에는 대도시의 기성시가지에서 주택재개발사업, 주택재건축사업 등을 통해 기존 주택을 허물고 신규 주택을 건설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있던 집을 부수고 다시 집을 지으면 당연히 집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시민들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재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은 당연히 집값이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에는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와 같은 요인들에 의해서 주택매매가격이 조금 내리면 ‘이제 가격이 바닥을 찍었으니 주택을 살 때’라는 주택건설업체들의 광고가 도배되면서 다시 주택매매가격이 조금 오르는 식의 흐름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주택은 고가의 재화이다. 주택보급률이 높아질수록 주택의 실수요자 계층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택 실수요자의 경제적 역량에 맞게 주택가격이 낮아지지 않으면 시장이 정체되는 것은 당연하다.
도시재생의 시대 ▷ 아파트를 지으면 불티나게 팔리던 시기에는 머지않아 대도시의 모든 기성시가지가 재개발을 통해서 새로 지은 깨끗한 아파트단지로 변모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헛된 것이었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뉴타운사업지구가 곳곳에 지정될 때는 도시 내에 단독주택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지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 큰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점점 낡아가는 주거지를 어떻게 정비해야 할 것인지가 큰 걱정이다. 비싼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니 사업성이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주택재개발사업의 추진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었다. 뉴타운사업을 통해서 고급 아파트단지로의 변모를 꿈꾸던 많은 주거지들이 이제는 그냥 노후주거지가 된 것이다. 이런 노후주거지들을 재생하는 것이, 서구의 많은 국가들이 겪었던 것처럼, 큰 과제인 <도시재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뉴타운의 시대>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주택가격만 남기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2013년 6월 4일, 수 년 간의 논의를 거쳐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입법취지는 다음과 같다.
전체 인구의 91퍼센트와 각종 산업기반이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의 주거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환경을 건전하고 지속가능하게 관리하고 재생하는 것이 국가경제 성장과 사회적 통합의 안정된 기반을 구축하는데 필수불가결 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로는 도시재생에 필요한 각종 물리적ㆍ비물리적 사업을 시민의 관심과 의견을 반영하여 체계적ㆍ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바, 이 법을 제정함으로써 계획적이고 종합적인 도시재생 추진체제를 구축하고, 물리적ㆍ비물리적 지원을 통해 민간과 정부의 관련 사업들이 실질적인 도시재생으로 이어지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속적 경제성장 및 사회적 통합을 유도하고 도시문화의 품격을 제고하는 등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려는 것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문>
특별법에 담겨있는 주요내용은 ①도시재생을 종합적ㆍ계획적ㆍ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국가도시재생기본방침을 10년마다 수립하고<제4조>, ②도시재생을 지원하기 위한 도시재생지원센터를 각 지자체에 설치하며<제11조>, ③도시재생전략계획을 수립하여 광역적인 도시재생의 틀을 갖추고<제12조>, ④구체적인 도시재생의 추진을 위한 도시재생활성화계획과 근린재생형 활성화계획을 수립한다<제19조>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주요 전략 마을공동체 ▷ 특별법 제4조에 따라 수립된, 2014~2023년 사이의 도시재생에 대한 기본지침인 <국가도시재생기본방침>(이하 기본방침)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민역량 강화 및 공동체 활성화>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도시의 일부분이 아닌 전반적인 쇠퇴문제에 공공의 역량만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시민들이 직접 도시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역량 있는 주민’을 육성하고 ‘참여하는 주민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 기본방침이 될 수밖에 없다.
이어서 도시재생의 추진전략을 살펴보면 ‘지역․주민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계획수립과 사업시행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몫으로 두고, 국가는 재정지원․제도개선 등을 통한 포괄적 지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상황을 잘 아는 주민, 민간단체,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이 협조체계를 이루어, 지역자원에 기반한 자율적 재생을 추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공공정책에서는 단순히 수혜자에 머물렀던 주민이 도시재생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본방침에 기술된 주민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주민은 도시재생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 자원을 새롭게 발굴하고,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사업 시행과 이후 운영․유지관리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방자치단체․정부․민간투자자 및 기업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물론 주민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도시재생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본방침에 기술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주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도시재생전략계획과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수립하고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다. 이 과정에서 부서간 칸막이를 제거하고 협업함으로써, 다양한 사업들이 목표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관리하고 도시재생사업의 각 참여 주체간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한다. 또한, 도시재생특별회계를 설치하는 등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건축규제 완화 특례의 부여, 주민교육과 전문가 파견 등을 통해 도시재생사업을 촉진한다.
지역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의 실현을 위해 국가는 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다음은 공동체 기반의 도시재생을 위해서 국가가 중점적으로 시행해야 할 시책들이다.
주민참여형 도시계획의 제도화 ▷ 주민이 스스로 도시재생 등 마을 현안을 도출․제시하고, 해결하기 위한 마을 단위 재생계획을 수립토록 하고, 이를 도시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한다.
도시 내부에 다양한 계층의 주거기능 확보 ▷ 신혼부부․대학생․청년 등을 위한 임대주택과 1~2인 가구, 노인 등을 위한 주택을 도시 내 교통이 편리한 지역 위주로 공급하도록 하여 도시 내부의 주거기능을 강화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및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주택개량 등을 시행하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법인을 육성한다. 사회적 경제 법인에 대한 재정지원과 대출보증 등 지원제도를 발굴․지원하고, 지역 사회적 경제법인의 공동브랜드 사업화, 공익광고 등 미디어 홍보, 대기업과 지역 사회적 법인을 연결해 주는 캠페인 등을 전개한다.
안정적 마을공동체를 위한 공동체주택 ▷ 도시쇠퇴 문제를 우리보다 일찍 경험한 서구의 사례를 살펴보면 도시재생은 단순히 도로나 공원과 같은 공공시설을 확충한다거나 낡은 주택을 개선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정적인 지역공동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도시재생이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는 사회적 경제의 기반이 되는 지역 공동체의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다. 공공의 재정지원을 통해서 간신히 버티는 상황에서 공동체 기반의,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내부에 다양한 계층의 주거기능을 확보>하는 것은 여러 모로 의의가 있다.
일단 주택은 부동산이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가 어렵게 모은 자본을 통해 주택을 마련한다고 해서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유동자산이 고정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주택사업이 다른 사업에 대해 갖는 차별성이다. 예를 들어 공동구매와 같은 사업은 물품의 소비와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자본이 소진될 수밖에 없다. 물론 주택의 경우에도 건물이 낡아감에 따라 감가상각이라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발생하며 최종적으로 토지는 남는다. 비영리방식으로 운영되는 공동체주택(사회주택)을 개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림2와 같다.
또한 주택은 그 자체가 편익이다. 일정한 관리만 이뤄지면 장기간에 걸쳐서 주거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다. 이 또한 사업의 유지를 위해서 끊임없이 비용을 투여해야 하는 여타의 사업에 비해서 주택사업이 갖는 장점이다.
부동산이라는 특성과 주택사업의 유지를 위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주택임대사업을 벌이는 사회적 경제주체는 다른 사업을 벌이는 것에 비해서 금융지원을 받는 데 유리할 수 있다. 담보능력이 부족하여 금융지원을 포기하는 사회적 경제주체가 많은데 만약 마을공동체가 일정 규모의 공동체주택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해당 마을공동체가 꿈꾸는 마을사업들에 대한 금융지원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주택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마을이라고 본다면 일정한 규모의 공동체주택이 곧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라고 할 정도의 수효가 되면 그 공동체주택의 입주자를 대상으로 한 판매, 교육, 문화, 돌봄, 기타 다양한 사업이 창출될 수 있다. 공동체주택의 집합이 사회적 경제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그림3).
지금까지 논의한 경제적 중요성에 더해 공동체주택은 그 자체로써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의 안정성을 강화한다. 주민들에게 주거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공동체사업을 통해서 마을의 가치가 향상되게 되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불러오고 그로 인해 마을을 직접 가꾸었던 주민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마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 적이 있다. 이런 위협에서 주민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 중 하나가 공동체주택일 수 있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동체주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공동체주택은 단순히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면서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공동체의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고 사회적경제 활성화, 더 나아가 도시재생의 주요 기반이 될 수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건설경기부양의 매개체로써의 주택이 아니라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활성화, 안정적 공동체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공동체주택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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