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가 던지는 의문
“한 여행자가 황폐해진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경기 침체로 마을의 상황은 무척 안 좋았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빚더미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여행자는 하룻밤 묵을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호텔 주인에게 100달러를 주면서, 묵을만한 방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호텔 주인은 한번 둘러보라고 하며 여행자를 2층으로 안내했다. 여행자가 호텔 복도를 지나며 방들을 살펴보는 동안, 호텔 주인은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가 호텔을 나가더니 이웃의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여행자가 준 100달러로 정육점 주인에게 밀린 외상값을 갚았다. 그러자 정육점 주인 역시 100달러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나가 이웃의 돼지 농가로 가더니 밀린 외상값을 갚았다. 돼지 농가의 농부 역시 100달러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나가… 이런 식의 뜀박질이 몇 번 계속되고 나서 결국 또 다른 마을사람이 100달러를 들고 호텔직원에게 찾아와 그에게 밀린 외상값을 갚았다. 마침 그 때 호텔 2층에서 방을 둘러보던 여행자가 1층으로 내려와서는, 마음에 드는 방이 없다면서 자신이 냈던 100달러를 돌려달라고 했다. 호텔 직원은 마을을 한바퀴 돌고 온 100달러를 여행자에게 내어주었다. 여행자는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빚을 청산했다.”
이 마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무것도 새롭게 생산된 것 없이, 단지 100달러짜리 한 장이 돌았을 뿐이지만 마을의 상황은 달라졌다. ‘역시 돈이란 경제를 순환시키는 피와 같은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알고보니 저 100달러가 위조지폐라면 어떨까? 단지 마을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밀린 외상을 갚았을 뿐이고, 여행자가 위조지폐를 갖고 조용히 사라졌다면? ‘돌기만 한다면 그것이 꼭 돈이 아니어도 된다!’ 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100달러, 혹은 100만 원 같은 ‘그 돈’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아예 생각을 전환해서 애초에 마을사람들이 서로의 장부를 까고 빚을 거꾸로 갚아나갔다면 어땠을까? 혹은 외상값 대신 서로에게 필요하면서도 각자가 갖고 있는 서비스나 물건을 주고 받으면서(예를 들어 호텔 주인은 호텔 방을 제공하고, 정육점 주인은 고기를 제공하는 식) 빚을 갚아나갔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바로 ‘그 돈’만으로 무언가를 교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원의 순환을 방해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돈이란 돌아야 하는데, 돌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수단인데, 어느새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쌓아두거나, 올바르지 않은 일에 투자하는 일이 발생한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벌기 쉬워지면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대기업은 더욱 큰 기업이 되고, 잘 사는 지역은 더욱 잘 살게 된다.
이런 가운데 지역화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역화폐 연구와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로 인한 부작용 속에서 지역화폐가 보완재로서 역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강원도에서 강원도 지역화폐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상권을 살리고, 이를 통해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외에도 이미 세계적으로 1970년대부터 레츠(LETS), 바터시스템, 타임달러 등의 지역화폐가 만들어져 왔다. 근래에는 인터넷과 전자결제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더 편리하고 확장가능한 방식의 지역화폐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물론 기존 경제체제의 눈에서 보자면, 지역화폐는 실패가 뻔한 꿈이기도 하다. 법정화폐에 비해 편리성이 월등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이기적 인간과 시장의 효율성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 이기적인 것만이 아니라면, 시장이 늘 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라면, 우리가 그것을 이해한다면 지역화폐의 실현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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