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 418호 : 장애아 부모 두 번 울리는 한국 한국의 돌봄 서비스,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값비싼 치료비에 울고,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에 또 한 번 울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로 밝혀진 ‘시도별 발달재활서비스 현황’을 보면, 사실상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필요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구조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문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심지어 대응도 부실해 장애아 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한겨레>, 장애아동 발달재활서비스 ‘부르는 게 값’, 2014.8.22.). 장애아동들이 받는 발달재활서비스는 이들의 인지, 의사소통, 적응행동, 감각이나 운동 기능 등 향상을 위한 치료들이다. 정부는 장애아의 발달재활서비스를 공적 지원 대상으로 정해 매월 22만원을 바우처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1회 공식 치료비는 2만7500원으로, 계산상으로는 매월 8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역별로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 보도에 따르면, 대구의 운동재활서비스 1회 평균 가격은 3만9385원, 서울 종로구의 미술치료는 1회 4만7500원 등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정부가 올해 이 사업에 쏟은 예산은 607억원인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복지관이나 민간재활시설에 대한 어떤 평가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돌봄서비스 전반의 문제 장애아동에게 꼭 필요한 돌봄서비스인데도 국가나 지자체가 책임지고 공급하지 않는다. 현재 시행되는 여러 돌봄서비스 중 장애아동 서비스의 영리기관의 공급 비중이 46.1%로 가장 높고, 그 뒤를 이어 산모 돌봄서비스의 영리 비중이 45.5%에 이른다(강혜규, “사회서비스 바우처사업의 성과와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3.). 취약아동들이 장시간 받는 중요한 대인서비스임에도 정부의 공식 가격은 유명무실하고 서비스의 공급기관에 대한 질적인 평가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사실 이는 우리의 돌봄서비스 전반의 문제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돌봄서비스를 전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할 보편 권리로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돌봄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면서 정부가 지원에 나섰으나, 그 대응이 전적으로 시장화에 따라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돌봄서비스를 바우처 방식으로 지원을 하면, 시장에서 공급이 이뤄지고 경쟁이 활발해지면서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어지고 당연히 서비스의 질도 좋을 거라 말한다.
그러나 장애아동 서비스만 보더라도 시장에 내맡긴 결과, 영리기관만 늘고 가격도 천차만별인데다 심지어 비싸고, 정부나 국민들의 감독이 없고서는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가 갈 길은 어디? 우리보다 앞서 돌봄서비스를 시장화한 미국이나 영국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미국의 경우는 국가의 공적 책임이 약한 토대에서 성인 돌봄서비스를 시장에 맡겨 영리기관의 비중이 거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돌봄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돌봄노동자의 처우는 고려되지 않으면서 서비스의 질도 같이 하락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미국 정부도 딱히 손쓸 방안은 없다. 영국에서는 성인 돌봄서비스의 공적지원이 65세 이상의 노인과 지적장애인에 집중되어 있다. 다른 대상의 서비스는 시장에 맡긴데다, 최근 복지예산마저 줄여 영국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서비스의 질 규제안을 내어도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공급기관이 27%나 된다.
이와는 다른 길도 있다. 얼마 전 일본의 노동자협동조합 형태의 ‘워커즈’가 다큐멘터리로 상영되었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 아동, 노인, 장애인에 대한 돌봄서비스가 이뤄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호평을 받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공적지원체계이지만, 지역에 기반한 노동자협동조합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스스로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가 주도적으로 지역에서 할 일을 찾고, 돌봄 이용자와 쌍방향 소통으로 이용자의 만족도나 건강도 좋아지는 그야말로 지역공동체가 만든 성과가 눈에 띈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한다. 그럼에도 서로를 살뜰히 돌보고 청년과 아이들이 공존하는 이 마을의 모습이 우리가 더 닮고 따라야할 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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