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흔히 “공산당 선언”으로 번역)은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2014년 또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분배문제를 다룬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Belknap Press 펴냄)이 그것이다.(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230px; height: 356px;”>▲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사실 주류경제학은 분배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보면 일정한 조건(실은 완전경쟁시장과 1차동차 생산함수라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조건)이 만족된다면, 각 생산요소에 돌아가는 분배 몫은 한계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서 보울리는 실제로 이 분배 몫이 일정하다고 주장했고(“보울리의 법칙”), 사이먼 쿠즈네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단계가 지나면 개선될 거라고 예언했다(“역U자 가설”).이에 따라 성장에만 신경 쓰면 그만이고, 섣불리 분배문제를 건드렸다가는 상황만 악화시킬 거라는 주장은 지금도 주류경제학의 신조에 속한다. 이 같은 주장은 케네디 대통령의 “밀물이 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정치적 구호로 표현됐고 지금도 한국의 성장론자들이 신봉하는 교의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프랑스의 43살짜리 경제학자가 이 모든 주장과 구호를 단숨에 엎어버렸다. 그의 무기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장기 통계, 즉 역사적 사실이다. 그가 초점을 맞춘 수치는 “어떤 시점의 한 나라 순자산(피케티의 “자본”)을 그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누면 얼마나 될까?”(β=W/Y, W는 민간순자산, Y는 국민소득)이다. 예컨대 한국의 2014년에 민간이 가지고 있는 부(순자산)를 국민소득으로 표현하면 몇 배나 될까를 표현하는 수치이다. β에 자산수익률을 곱하면 그 해 자산소유자들이 가져간 몫이 될 것이다(α=rβ). 그는 이 회계적 항등식에 “자본주의의 제1 근본법칙”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였다. <그림1>에서 보듯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β는 19세기 말에 6~7배로 정점을 찍은 뒤 1910년에서 1950년까지 2~3배로 급전직하했다.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으로 인한 재분배정책 때문이다. 이 수치는 80년대부터 서서히 상승해서 현재는 4~6배까지 치솟았다. 또한 그는 자산의 수익률(r)은 역사 전 기간에 걸쳐 4~5%라고 계산했다(<그림2>).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으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선진국에서도 90년대 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국민대차대조표”(한국은 지난 5월 14일 최초로 잠정적인 대차대조표를 발표했다)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통계를 만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난한 일이다. 더구나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에는 1700년대부터 과거의 문헌을 뒤져서 이 수치를 추적해 냈다. 또한 세금자료를 이용해서 1% 단위로(심지어 0.1% 단위로) 각 계층이 얼마나 자산과 소득을 차지하는가를 추적했으니 당분가 어느 누구도 이 수치 자체에 대해서는 논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54px;”>▲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그림1>은 글머리에 제시한 주류경제학의 정설들을 뒤엎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기실 1945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독일의 “라인의 기적”에 해당한다. “보울리의 법칙”이나 “역U자 가설”은 모두 이 짧은 기간에 해당하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나아가서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계량 연구도 이 시기의 안정적인 분배를 반영할 뿐이다. 1910년대부터 두 번의 세계전쟁, 대공황 이후 최고 한계세율이 90%가 넘는 재분배정책 등(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의 내재적 성향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외부 쇼크”라고 부른다)이 이런 예외적 시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피케티의 이 얘기를 뒤집으면 우리나라의 진보 쪽이 그리는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그만한 “외부 쇼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 단계는 도마-솔로우의 “장기 균형성장 조건”(β=s/g,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과현실의 수치를 비교하는 일이다. 피케티는 이 방정식에 다소 구질구질한 설명을 덧붙여(제5장) “자본주의 제2 근본법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자신의 통계와 이 “균형성장조건”을 비교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를 것이다.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42px;”>▲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만일 <그림2>처럼 경제성장률(g)이 자본의 수익률(r)보다 적다면 자산가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이 가져가는 소득보다 자산의 수입이 훨씬 많다면, 또 자산가들이 자신의 자산수입 일부를 저축해서 자산을 더 늘린다면 부의 집중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피케티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인구증가율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므로 성장률과 수익률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단, 위 그림에서 보듯이 자산수익률이 전 역사에 걸쳐서 4~5%라면 그렇다는 얘기다.(이 점이 앞으로 경제학계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이제 누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는 재능이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상속에 의존하게 된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가난한 젊은 귀족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될 것인지, 돈 많은 미망인을 유혹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라스티냑의 딜레마”). 21세기는 다시 그런 “세습자본주의”가 될 거라는 얘기다.피케티의 또 하나의 업적은 이런 상황을 기초로 해서 소득분위별 소득과 재산의 추이를 추적한 것이다. 국민계정 통계와 세금 자료를 엮어서 장기 통계를 추정했는데 현재 대체로 상위 10%가 순자산의 70%를 소유하고 나아가서 1%가 그 반인 30~40%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림3> 참조).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30px;”>▲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미국의 경우에는 최상위 노동소득도 부의 불평등을 촉진하고 있다. <그림4>를 보면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상위 10%가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가파르게 증가해서 이미 이전의 최고치였던 1930년대 수준을 넘어서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유럽도 80년대부터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중에서도 최상위 1%가 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피케티는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 보수는 일종의 지대라고 단언한다. 스스로 임금을 책정하거나 비슷비슷한 부류의 인사들이 보수위원회에 모여서 자신들의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피케티는 상위 10% 내의 소득분포를 분석해서 베커의 인적자본론도 비판하고 있다. 최상위 1%와 나머지 9%는 거의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따라서 한계생산성이 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도) 그 내부에서조차 임금의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자산과 소득의 상위 집중이 점점 더 커지면 당연히 정치와 사법부까지 부자들이 마음대로 뒤흔드는 유럽의 “벨 에포크”, 미국의 “도금시대”(둘 다 대체로 18세기 말에서 1910년경까지)가 부활할 것이다. 피케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상황이다. 피케티는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자본세와 최고세율 8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를 전 세계가 동시에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책은 스스로도 유토피아적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세계 각국이 동시에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케티는 EU나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이 선도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30px;”>▲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하지만 이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동아시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두 배 가량 높고 자산의 불평등은 선진국에 비해 덜 진행됐기 때문에 자본세의 세율이 그리 높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주류경제학의 대대적 반박, 자본수익률이 과연 일정한지에 관한 논쟁, 그리고 정책대안에 관한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빨갱이”라는 낙인찍기는 이미 시작됐다. 그들에게 “21세기 자본”은 유령인 것이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지난 5월 1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아주 중요한 보고서, “국민대차대조표 공동개발 결과(잠정)”를 펴냈다. 이 두 기관은 국민계정 통계의 최고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국민대차대조표”(세계적으로도 이 표를 만들기 시작한 건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를 만들고 있다. 피케티의 자료 중 기능별 분배(자본 몫과 노동 몫의 분할) 역시 국민계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자료는 바로 피케티 지표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번 자료에서 직접 나온 수치는 β값의 근사치이다. 한은과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국부)은 1경 630조.6조원으로 국내총생산(1,377.5조원)의 7.7배로 추계되었다고 밝혔다. 이 수치를 피케티의 비율로 바꾸려면, 1) 분자의 국민순자산에서 정부의 자산을 빼서 민간 순자산을 계산하고 2) 분모의 국내총생산을 실질국민총소득으로 바꾸면 된다.(처음에는 국내 총생산을 국민총소득으로 바꾸는 실수를 했다. 국제비교를 위해 피케티의 정의를 따른다면 감가상각분을 뺀 국민소득을 써야 했다. 노동연구원 이병희박사의 지적으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처음 계산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도 달라졌는데 피케티의 정의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례에 맞춰 새로 계산했다. 이 역시 이병희박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치가 잠정치이고 피케티의 각 수치에 관한 해석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절대적인 수치보다 추세를 확인하기 바란다. -필자 주)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부록과 한은 통계 데이터베이스)로는 2000년에서 2012년까지 추계가 가능하다. 그 결과가 <그림5>이다.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11px;”>▲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하지만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 민간과 정부의 금융순자산의 시계열은 최근 몇 년밖에 찾을 수 없다. 민간의 금융순자산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까울 것이고(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제외하면 차입과 대출을 합하면 0일 것이다) 정부는 마이너스겠지만(정부의 채권 발행만큼) 어쩔 수 없이 금융자산은 제외했다.(만일 외환보유액이 정부자산에 포함된다면 이 주장은 철회되어야 할지도 모른다.-필자 주)그러므로 금융자산까지 포함하면 β값은 <그림5>보다 조금 더 커질 것이다.▲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그림5>와, <그림6>의 2000년 이후 각국의 β값 추이를 비교해 보면한국의 수치는 일본과 이탈리아 정도로 높은 수준(5.6 또는 560%)에서 시작해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의 β값은 7.5로 선진국 중 최고치이다.β는 민간의 순자산(부)을 한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눈 수치이다. 당연히 이 수치가 크면 클수록 부의 집적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 자체가 분배 상황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국민 모두 똑같은 양의 부동산과 생산자본,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계에서 개인별 자산분배를 알 수 있는 통계는 없다.▲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그리하여 다른 방법으로 한국의 불평등 정도를 추정했다. 한국 노동패널(가구) 2차~11차 자료를 이용해서 자산 지니계수를 구해 보면(<그림7>) 2000년대에 우리나라의 자산 소유가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물론 피케티는 지니계수에 대해 “불평등에 대한 추상적인 불임의 견해”라서 오히려 현실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β는 19세기 말(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 미국의 도금시대)의 극심한 불평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아이들은 “레미제라블” 상황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또한 <그림8>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최상위 1% 임금이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도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24px;”>▲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이런 불평등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국민총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한은의 계에서 (1-노동소득분배율)에 해당한다. 한은 통계에서 노동 몫은 피용자보수/국민소득으로 계산된다. 여기서 자영업자의 잉여 중에 어느 정도나 피용자 보수에 포함시킬 건지, 국민소득은 어떤 수치로 할 건지가 논란이 된다. 공식 통계인 한은의 노동분배율(노동 몫)은 자영업자의 잉여를 피용자 보수에 넣지 않는다. 2000년 이후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은 대체로 60% 수준(<그림9>)이니까 자본 몫은 40% 정도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피케티의 방식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그림9>).또 피케티는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할 때 통상적인 요소소득국민소득이 아니라 국민순소득을 사용하였다(회계적 항등식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분모가 다르기 때문에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과 교차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피케티 비율의 국제비교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388px;”>▲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피케티 방식으로 α(=1-노동소득분배율)를 구한 뒤 β로 나누면 민간의 자산수익률 r을 구할 수 있다(r=α/β,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근본법칙’). 그렇다면 한국의 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증가율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적어도 선진국들도, 한국도 인구증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g가 점점 낮아질 거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구한 r과 g(한은 통계에서 실질국민총소득증가율을 택했는데 어느 수치를 택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불평등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다.(<그림2>에 비교해서 아래 <그림10>의 g의 모습이 변화가 심한 것은 <그림10>은 극히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 필자 주)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 style=”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vertical-align: middle; width: 520px; height: 254px;”>▲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그림10>에서 보듯이 한국의 자산수익률은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물론 여기서 r과 g는 적어도 몇 십년에 이르는 장기적 추세 속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장률 그래프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의 확실한 우리의 인구증가율에 비춰 보면 r-g가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통계가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196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을 것이다. 해방 후 농지개혁을 한 데다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거의 소멸했기 때문이다. 지주들에게 돈 대신 준 지가증권이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으로 바뀌었다. 지주계급이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까지 모두 장악한 동남아나 중남미와 비교할 때 동아시아가 경제성장이 빨랐던 이유 중 하나이다.또한 70~80년대의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자산 불평등은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위의 그림들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피케티가 책 곳곳에서 되풀이한 경구대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세월호가 우리를 절망케 했던 것은 뻔히 눈뜨고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전부, 곧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케티의 주장대로 과감한 자산재분배와 소득재분배가 답일 테다. 그 스스로 “유토피아적” 해법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아이들에 대한 현재의 심정이라면 결코 못 할 일이 아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 번, 문제는 정치다.*본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되었습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추가로 진행하자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고, S&P 500은 또 사상최고치랍니다. 미국의 빈부격차가 사상최고치로 확대되어도 금융시장은 잘 버텨주고 있죠. 장하준의 말이 완전히 틀렸음이 또 한번 입증되었군요.
제가 궁금한건 이겁니다. 이런 빈부격차를 막기 위해서 새사연에서는 ‘최고임금제’도 말한 걸로 알아요. CEO의 연봉이 신입사원이ㅡ 10배이내로 하게 하자고. 좋습니다. 그렇다면 록스타들은 어떻게 막을까요?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은 어떻게 막을까요? 스포츠 스타들은요. 마이너리그 신입 연봉과 메이저리그 최우수 간판스타의 급여차이가 10배라면 아마 진보를 주장하는 분들도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까요?
하루 24시간 내내 기업을 생각한 댓가로 CEO가 1억 달러를 받으면 쌍욕을 퍼부으면서 같은 돈을 축구선수나 마돈나가 벌어들이면 왜 찍소리를 하지 못할까요? 연봉이 많아서 격차가 생기고 그게 나쁘다고 한다면 직업을 막론하고 무조건 고액연봉자는 투드려 패야 한다는 것인데, 유독 CEO만 두들기는 저의는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새사연에서 최고임금제를 주장하고 있나요? 몰랐네요. 뭐.. 하여간 CEO의 임금규제는 미국에 먼저 나왔습니다. 자유시장경제 측면에서도 너무 높은 CEO의 임금이 해가 된다고 보는 판단도 있고요..
CEO의 문제는 락스타나 스포츠 선수들과는 다르게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자신의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임금을 생산성 이상으로 결정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시장경쟁에 의한 임금보다 높게 설정되어 사회전체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기업에도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문제는 1시간당 천만원 이상을 받는 한국의 기업주들(전에 보니 최태원 회장은 한 시간에 1400만원 정도 받는 것 같던데…)이 그만큼 생산에 기여를 했는가 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주류경제학 측면에서도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정규제 씨도 이에는 동의할 것이라 봅니다. 물론 그 사람의 1시간 생산량이 1400만원의 가치를 가진다면 다른 문제겠지요… ^^ 그런가요?
선생님께서 시장을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그나마 락스타나 스포츠선수들은 자신의 생산성 범위내에서 돈을 받는다고 하시니 다행이네요. 본조비가 작년에 8900만 달러 벌었으니 평균적인 4인가족 기준 미국 중위소득인 6만 달러의 수천배다 하면서 흥분 안하시니….. 사실 CEO의 연봉도 시장범위내에서 결정되지요.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연봉 67억을 받는 삼성전자의 사장단을. 동급의 미국/유럽회사보다 적게 연봉을 번다는 건 아시죠? 삼성전자의 매출액성장률, ROE, 주가 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CEO연봉은 미국이나 유럽기업들이 볼때는 한심할 정도로, 거의 노동 착취 수준으로 받아가는 셈입니다.
바로 이런 지표로 비교할 수 있고요, 또 하나, CEO의 연봉은 결국 주총에서 결정되지요. 생산성 이상의 임금? 주주들이 판단해서 이 정도의 임금을 줄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 주는 겁니다. 그러다가 실적이 나빠져서 주가가 하락한다면? 해고시켜 버리면 그만이고 다른 CEO를 영입하면 됩니다. 사실 CEO는 노동조합처럼 조직화된 힘도 없고, 주주총회, 이사회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합니다. 수명도 짧고요. 길어야 10년이죠. 그런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결정되는거죠. 그 자체가 시장에서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의한 것입니다. 노조는요? 생산성. 그런거 모르죠. 그냥 쇠파이프나 휘두르지요. 그걸 비교하면 안됩니다.
제 시각은 주류경제학, 시장경제학이 시장을 보는 시각입니다만… 그 쪽은 대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잘못 생각하시고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사실… 제가 여기서 옹호하고 있는 것은 새사연의 글이 아니라 주류경제학, 시장경제학입니다. 그 쪽의 시각이야 말로 주류경제학 측면에서 볼 때 이상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시각이라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쓸 가치가…
주류경제학은 그런 학문이 아닙니다. 무조건 돈 많은 사람, CEO를 옹오하는 학문이 주류경제학이 아닙니다.
대학원에서 주류경제학을 전공했고, 여전히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찾아보니… 좋아하시는 정규재 씨보다 주류경제학 수업은 제가 더 많이 들은 것 같더군요…) 학문으로서 주류경제학은 합리성을 추구하고 모델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편협하고 기준 없는 시각은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은 결코 주류경제학, 시장경제학의 시각은 아닙니다. 정규재 씨한테 물어보세요… CEO는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받아도 되고, 노조원은 그러면 안 된다니요. 그건 뭔가요?
우리나라 많은 CEO의 임금이 CEO의 가문이 주요 주주인 주총에서 결정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신 건가요.. 아니면 알고도 그냥 그건 괜찮아라고 생각하신건지요…
기본적인 사실 관계 인식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재벌 CEO와 노조에 속한 노조원 1인이 임금결정에 있어 누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가는 뻔한 일입니다. 노조원이 더 힘이 쎄다는 것은.. (저도.. 주류경제학, 시장경제학이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잘 듣지만..) 제 입장에서 볼 때도 이는 거의 별에서 온 수준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주류, 시장경제학의 임금결정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균형가격, 균형임금에 대한 내용과 인적자본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인적자본생산성으로 부터 비롯되는 임금격차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경제학적 내용을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시장경제학적 시각이라 할 수 없을 내용입니다.
그리고 CEO임금의 경우 optimal contract 인가 rend seeking인가가 결국 주요 논점일 것입니다. 그냥 대충 시장에서 결정되었으니 시장경제학적이다라는 것이 아니라요…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인 정규재씨의 말대로, 현대차 울산공장은 연봉 1억. 미국 공장은 4천만원으로 과도한 노조의 권력으로 회사마저 좌지우지하는걸 좌파/진보는 보면서 노동자 천국이라고 박수를 치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경제학자, 경영학자들이 바라보는걸 도리어 이상하게 보는 잘못된 민주화의 페혜인 것인지도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태원회장 연봉 140억. 제가 볼 때는 충분히 그의 생산성을 고려할 때 조금 과하긴 해도 그 정도면 무난하지 않나 봅니다.. 2010년 대학 4학년 때, SK는 매출 90조였지만 2013년 기준으로 매출 111조였죠. 영업이익이나 이런 요소도 중요하고 더 분석해봐야 하지만 재계 3위로 키우고, 매출도 끌어올리고 50%가 안되는 수출비중도 50%이상으로 늘리는 등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약간 고평가 되었지만 나름 합리적이다라고 보는겁니다. 뭐 한 120억 정도 받았다면 딱 생산성만큼이라고 보고요.
SK는 덮어두고, 삼성전자를 보자면 삼성전자 등기임원들 연봉 67억인데, 그건 너무 적다는 생각 안하세요? 매출, 주가, 재무구조등을 고려함다면 670억을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정규재 씨가 울산현대차 노동자들 임금이 1억이고 미국 공장은 4천만원이라고 했나요? 그런 말은 못 찾겠던데요. 보신 칼럼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알기론 잘못된 말이라서요.
최태원 회장이 받는 연봉은 300억원대입니다. 아이고… 말씀하신 생산성에 따른 적정임금보다 두 배 이상 높네요… 그리고 생산성을 그렇게 대충 결정되는 것은 슬프기까지 하네요… 저는 감옥에 갇혀서 혹은 재판에 시간을 상당부분 보낸 그 분의 생산성이 매일 열심히 일한 일반 노동자들보다 높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군요.
한 사람의 생산성을 판단할 때 그 기업의 생산성과 동일시 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생산에 참여했는가를 분석해야지요. 등기임원만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제가 아는 분도 삼성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연봉이 1억 좀 넘지요.. 그 분 퇴근도 늦게 하시고 엄청 열심히 일하시는데… 임원이 그 분보다 67배나 일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그리고 그분도 임원이 되길 원하시는데.. 임원이 되면 그 분의 생산성이 67배나 올라가는 것도 웃기지 않나요?
임원의 67억이 이해가 안되신다면 2013년 기준으로 저스틴 비버 연봉이 5500만 달러였습니다. 550억요. 그 사람이 과연 삼성전자 CEO보다 더 생산성이 높아서 그랬을까요? 달리 생각하면 삼성전자 임원들은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컨트롤타워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 말대로라면 HP, IBM, 시스코와 같은 미국회사들은 CEO연봉이 삼성전자보다 훨씬 높습니다. 삼성전자 임원 연봉은 껌값일 정도로요. 거기에 대해서는 진보도 입을 다물대요. 왜? 미국기업인이 얼마를 받던 그건 능력이 뛰어난 것이고, 우리기업인은 무조건 악덕이라는 것이 기본 전제에 깔려있으니까 진보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하나도 제대로 된 답을 못하는 것이지요.
CEO나 임원들이 신규투자를 결정하거나, 밑에서 올라온 수많은 기획안을 검토하고, 추진력으로 밀어붙이고 하는 것은 단순히 생산성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게 아니지요. 작년에 차를 100대 만들다가 파업해서 올해 50대 만들었다면 생산성도 절반으로 줄었지만 기업경영은 그런 단순논리가 아니라 장기적 시점에서, 매출, 영업이익, 주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최소 5년이상) 그랬을 때 비로소 CEO의 급여나 이런게 눈에 보인다고 봅니다.
뭐 진보나 좌파적 시각에서 본다면 본조비의 연봉 8900만 달러도 이해가 안갈테죠. 뮤직비디오 만드는데, 카메라맨, 디자이너, 스태프들 연봉 다 합쳐도 얼마안될테니. 음반회사직원들의 공로나, 소속사 매니저, 스태프들 어쩌구 어쩌구 하면 잘못된 거라고 따지고 싶겠죠. 그게 진보/좌파니까. 하지만 그렇게 편협하게 보면 안되죠. CEO연봉이 철저하게 생산성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나 거기에 더해서 보상도 필요한 것이죠. 과거에,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고생했습니까? 그런걸 따진다면 좀 더 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막말로 해외유전을 개발했다 칩시다. 100억 달러의 이익이 기대되는데, 그 프로젝트를 추진한 CEO에게 1%. 대락 1억 달러를 성과급이나 스톡옵션으로 준다 했을 때, 그건 합리적이지요. 그 사람이 없었다면 100억 짜리 유전은 개발하지 못했을 테니까. 단순히 보면 생산성을 초과하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공로라는 점도 감안해서 보상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내 대기업들 그렇게 허당 아닙니다. 외국주주들 눈도 있고, CEO급여 진보매체가 생각하는 것처럼 엉터리로 산정 못합니다. 그렇게 엉터리라면 최태원이가 겨우 300억 받았겠어요? 미국CEO는 얼만데?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서는 답이 없고 또 다른 사실과 다른 말을 하시네요.
일단 정규재 씨의 말이 정확한 것인가를 물은 것은 정규재 씨가 사실과 다른 말을 했나 아니면 그 쪽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정규재 씨를 파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후자 같군요. 예 뭐.. 일단 알겠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미국 CEO들의 높은 임금에 대해서는 진보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많은 주류경제학자들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CEO 연봉이 생산성 이상으로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계속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문제시 되는 부분은 CEO의 임금이 optimal contracting의 결과물인가라는 부분입니다. 최근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임원, CEO의 경우 rent seeking 행위로 인해 시장에서의 적정 수준 임금, 생산성에 따른 임금보다 높은 임금이 결정되고 있으면 그것은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데로 생산성을 측정하기는 어려우니 투명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그것에 맞춰 주자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들 원하고 있는 부분이겠지요…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나… 부정적인 이득을 올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요… ^^
“과거에,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고생했습니까? 그런걸 따진다면 좀 더 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라는 말은 참…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뭐.. 주류경제학적, 시장경제학적 시각은 아니란 건 아실테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뭐..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어쩌겠나요.. ^^
노동자들은 안되고 CEO는 생산성만큼은 아니라도 높은 임금을 받아도 된다는 말을 반복되네요. 중요한 것은 이런 주장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은 주류경제학, 시장주의 경제학의 시각이란 것입니다. 제가 그 쪽 주장을 반대하는 것은 임금이 노동한계생산물가치와 일치하지 않을 경우를 용인하는 것은 주류적 시작, 시장경제학적 시각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류경제학은 임금결정에 있어 노동조합과 함께 효율성임금이나 rent seeking 행위로 인한 높은 임금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CEO의 높은 임금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optimal contracting vs rent seeking 등의 논쟁이 진행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sk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국내 대기업이 허당도 아니고 외국 주주들이 서슬 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감옥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돈을 받다니요.. sk도 그렇고 한화도 그렇고요..
아. 한가지 더. CEO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은 그 회사 구성원들의 동기부여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사장이 되었더니 연봉이 한겨레나 좌파가 주장하는대로 최고임금제를 시행해서 신입사원의 12배더라. 얼마나 한탄스럽고, 열심히 일한 자신을 바보라고 원망할까요? 연봉이 높아야 더 열심히 일할 동기가 주어지죠. 가령 부장연봉이 1억. 이사 연봉이 1억 2천이면, 언제 짤릴지 모르는 이사 누가 할까요? 이사 2억, 상무 4억, 전무 6억 이런 식의 고액구조가 이어져야 승진도 하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 금액자체가 생산성하고도 연동되어야 함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사회가 고액연봉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과민하게 변하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조지 소로스 봐요. 헤지펀드 매니저해서 연봉이 30억 달러 이런데, 아무도 뭐라하지 않죠. 능력만큼 벌었으니까. 그런 제도, 그런 사회적 인식을 가진 나라가 좋은거죠. 우리처럼 부자라면 쌍심지 켜고, 최고임금제 운운하고, 부자증세에 핏대세우는 꼴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도 사농공상의 시대인가 싶을 정도로요
CEO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알겠습니다. ^^ 그럼 그 전에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셔야겠지요. 지금 현실에서 재벌가가 아니면 대기업 CEO는 힘들잖아요.
지금 재벌가 CEO들이 몇 십억, 몇 백억 씩 가져가는 것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 회사 구성원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뭐… 본인은 반드시 CEO가 될 것이란 믿음으로 사시면 물론 그렇지 않으시겠지요.. 괜한 질문이네요. ^^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사농공상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만… 최근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은 불평등 자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주로.. 밑에도 써 놓았지만.. 그 쪽이 바라는 상하간 신분간 이동이 잘 되는 현실이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CEO가 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좌파와 진보측이 싸우고 있는 것이지요…
일례를 하나 들어서 신문에도 나온 건데 한샘이라는 회사가 있죠. 가구회사. 거기 CEO연봉이 15억입니다. 매우 높죠. 일반 사원급들하고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면 그게 잘못되었느냐? 한샘의 매출성장률, 주가성장률(보시면 알겠죠), 이런 지표들을 장기로 본다면 CEO연봉 15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것 아실수 있을겁니다.
같은 논리로 삼성전자. 얼마나 실적 많이 냈나요. 매년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죠. 그렇다면 오히려 회사의 발전에 기여한 임원들 고작 67억이 뭡니까? 같은 사이즈의 미국기업들은 열배도 더 받아가는데. 막말로 저스틴 비버보다 덜 기여했습니까? 더 주어야지요. 저는 그런걸 말하는 것이지요. SK는(그렇게 SK를 좋아하시니) 고액급여(생산성이상으로)를 주니 매출은 늘어도 영업이익은 급감하는 등 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인과응보지요.
정규재 칼럼/민경국 교수 칼럼 보면 피케티가 얼마나 자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 한낱 치기어린 좌파의 순진한 발상에서 나온 건지 너무나 명약관화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한국경제신문을 참고해보시면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뭐.. 이론적으로 시장에서 그렇게 임금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학 기본교과서만 봐도 아실테니.. 일단 그쪽의 말을 따르더라도 기업의 매출성장률과 주가성장률이 높으면 그 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비버 무시하시나요? 언젠 최고라고 하시더니.. 기여도 측면에서도 당연히 비버가 높다고 봅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임원만 되면 어떻게 갑자기 60억, 70억씩 기여하는지 모르겠네요. 같은 사람이 임원만 되면.. ^^
그리고 피케티를 사람들이 읽는 것은 이유가 있겠지요. 저도 피케티의 생각에 무조건적 동의하지는 않는 입장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뭐.. 사실.. 정규재나 민경국 교수 칼럼보다는 양질의 많은 비판들이 나오고 있으니 그것을 보세요… 어떻게 그런 글보고 피케티의 책을 “한낱 치기어린 좌파의 순진한 발상”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가 이해가 안가네요. 책은 읽어 보시고 그런 말을 하시는건가요?.. 한국경제신문말고도 글도 보세요. 뉴욕타임즈만 해도 요즘 멘큐, 크루그먼 등 저명한 학자들이 나서서피케티의 주장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평가는 스스로 책을 읽고 하시고요…
논쟁은 CEO의 연봉이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의 능력과 성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합리적인 연봉산정 방식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덧 많이 받으니까 나쁜놈이라는 걸 옹호하는 측과 왜 많이 받는게 때려죽일놈이냐는 그 반대논리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삼성의 예를 다시 들어본다면, 삼성전자 등기임원들 연봉이 60억 70억입니다. 하지만 동종업계인 휴렛팩커드나 시스코, IBM등과 비교해본다면 적은건 사실입니다. 그건 인정하시겠죠. 삼성전자의 전략, 방향설정 등부터 시작해서 가령 부장때 연봉 1억 받고 100억어치 생산성을 올렸다면 임원 달았을 때 60억 줘도 괜찮을 겁니다. 생산성이라는게 올해만의 spot을 봐야 하는게 아니라 cumulative한 누적 생산성을 봐야하기 때문이죠. 아마 선생님은 본인보다 공부도 못한 녀석들이 대기업가서 CEO되고 돈 많이 버는 모습이 눈꼴시려워서 그런지는 모르나, 저스틴 비버의 높은 연봉이 100% 정당한만큼 CEO의 연봉도 100% 정확한 것이죠. 한번 비교해 볼까요?
레코드사에서 비버에게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도록 개런티 제공하고, 부가수익을 제공하도록 합의했죠. 회사도 마찬가지랍니다. 주주, 이사회 결의에서 합의했지요, 콘서트 티켓요금이 100% 합리적이지 않아서 조금 과하게 금액이 책정되어 초과이익을 얻었다면, 기업도 마찬가지겠죠. 그 초과이익을 사원, 임원에게 나누어주다보니 연봉차이 생기지요
앞으로 가수생활 얼마나 더할지 모르지 미리 더 받아서 챙기려고 할 수도 있죠. CEO도 언제 재선임될지 모르니 미리 받아서 노후대비 해야죠. 결국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CEO시장, 음반시장이라는 틀에서 고객(팬)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윤을 챙기는 것이지요. 삼성전자보다 덩치도 작고 수익도 빈약한 미국기업들이 미국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CEO나 임원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삼성전자는 보상이 적다고 봐야죠. 삼성전자 임원들이 못나서 미국기업보다 월급을 적게받는다는(님의 논리) 왜 미국기업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겠습니까? 어차피 락스타는 내 능력으로 안되니 얼마를 받든 알바 아니지만 CEO는 나랑 같이 대학원 다닌 녀석이 되어서 돈받는다니 눈꼴시려서 그렇다라면 안되지요. 정규재가 비판한 주자학에 찌들어서 관료들이 내놓는게 경제민주화(공부못한 회사원급여가 더 높으니 화딱지 났다는)라면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지요. 진보라면 오히려 유능한 사람에게 돈을 많이 벌 기회를 가지게 해야지 왜 개천에서 용나는걸 스스로 막아버리고 그걸 진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오히려 보수는 개천에서 용이 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신분제도를 고착화하고 한번 부자는 영원히 부자로 만드는게 진보인지도 궁금하군요. 무조건 능력있어서 돈잘버는 사람 깎아내리고 강제로 끌어내리는, 아 소련이 그랬
습죠. 소련이 진보의 이상사회라면 안되는겁니다. 오히려 비버 같은 가수들처럼 실력이 도태되어서 도이상 고객을 끌지 못하면 해고하고, 고객을 끌어들일 ?는 인센티브를 듬뿍 주어서 개인의 능력을 이끌어내야지(노동자, 관리직, 사무직, 임원, CEO다 예외없이요) 너는 CEO인데 왜 단순 고졸 생산직보다 많이 버느냐, 너는 왜 알바생보다 많이 버느냐. 세금 90% 내놔라. 최고임금제하자는 식의 멍청한 규제는 안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SK최태원회장이 과도한 급여를 받았다. 그 결과 지금 어떻습니까? SK는 외형만 커지지 4년 전보다 영업이익도 줄고 사세가 흔들리고 있지요. 다 그렇게 인과응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가 떨어지고 그러면 최태원씨는 연봉 몇십억 더 받다가 재산가치가 몇천억이 날아갈테니 벌을 받겠죠. 2005년도인가? 중앙이코노미스트 편집국장 칼럼 기사가 생각나네요. 일본경제가 장기침체를 겪는 원인 중에 CEO의 낮은 급여가 있다고 하죠. 미국처럼 스톡옵션이나 고액연봉으로 돈을 벌지 못하니까 일본 대기업 CEO연봉이 고작 미국 대기업 말단 임원 수준이니 근로의욕도 떨어지고 대충대충 일하려는 풍조가 만연하다고요. 능력있는사람에게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는 것을 눈꼴시려하는 동양권의 특수성이 자본주의발전을 저해한다고요. 맞는 말입니다. 미국보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대기업 입사해 CEO가 되고, 연봉 받아서 헬리콥터로 부모님 모시러
가는 그런 부자들이 생겨났죠. 진보가 그걸 눈꼴시려한다면 안된다고 봅니다. 제 논리는 간단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자. 기업은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외국인주주도 많아서 옛날처럼 엉터리로 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IMF영향으로 우리의 주총이 웬만한 선진국보다 더 깨끗합니다), 매출액증가, 영업이익증가, 주가상승률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합리적으로 산정할 것이고, 본조비나 포이즌은 빌보드 Hot1001위 기록, 연간 음반판매량, 콘서트 수익등으로 합리적으로 배분받으니 둘 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분배가 어떻고 불평등이 어떻고 같은 허접한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하긴. 어느덧 이 나라는 CEO는 죽일놈이 되었고, 대기업은 무조건 찢어발겨야 된다는 사람들이 국회를 장악했으니 정규재나 민경국 교수 같은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이 외면받는 시대가 온 것이죠.
뭐 할 수 없죠. 아인슈타인 버금가는 학자도 연봉 몇십억 주고 데려온다고 하면 쌍심지 켜고, 젊은 연구원들이 한달에 50만원 받아가며 하루 15시간씩 연구실에서 일해야만 기특한 대한의 건아라고 칭찬하는 이 나라에서, 아무리 능력이 있고, 중소기업을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운 CEO조차도 18평 주공에서 살아야 제대로 된 평등이라고 떠드는게 대한민국이거늘
아. 그리고 이 주제와는 상관없지만 노동문제에 대해서 진보에게 늘 묻고 싶은게 있는데, 해고는 살인이라고 늘 주장하면서 노동자 보호를 외치면서 정작, 임원승진 못한 부장급등 사무관리직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구는 건 뭐죠? 생산직만 노동자이고 관리직은 어차피 넥타이 부대라 자기편도 아니니까 마구 내다버리는 겁니까? 과도하게 생산직 정규직만 보호해서 기업으로 하여금 비정규직을 양산케 하고, 생산직 근로자들 노동시간이 어쩌네 저녁이 없는 삶이네 운운하면서 과도한 근로를 하는 사무관리직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 안하더군요. 오히려 보수/경제신문들이 그런 넥타이부대의 애환을 더 잘알고 해결해주려고 고심하더군요. 일방적으로 귀족노조라 불리는 사람들의 편만 들고 진짜 힘든 약자는 눈꼽만큼도 배려하지 않는게 과연 진보이고, 진보가 늘 주장하는 시대정신인가? 관리직이 되면 임원 못달면 45살에 짤리는게 너무 당연하고, 생산직은 놀기만 해도 무조건 정년보장시키고, 터무니없는 요구도 100%들어주어야만 한다고 박박 우기는 것이 진보의 숙제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지요. 실제로 그렇게 해왔죠. 특히 노무현 정권때. 그러니 기업의 중간관리자들. 넥타이부대가 철저하게 진보에 등 돌린거죠.
drebin이란 분은 정말 같은 말만 반복하시네요. CEO의 연봉이 합리적인가라는 논의가 바로 현 CEO의 연봉이 optial contracting의 결과냐 아니면 rent seeking의 결과냐 하는 것이라고 계속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이 논의는 누굴 옹호하고 말고의 논의가 아니라 지금 말씀하시는 적정한 임금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로, 미국에서도 주류경제학자들도 참여해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입니다..) 미국 CEO와의 비교를 통해 삼성임원도 많이 받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시는데..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rent seeking 행위로 인해 고임금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그 말은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 드는 생각이 이 분의 글을 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그것을 좌파 혹은 진보라 부르는 것 같아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양 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분명한 사실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하네요. 실수라고 하기에는 …
일단 저의 경우 진보가 아니라 주류경제학적 입장에서 지금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계셔서 글을 적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주류경제학, 시장주의(보수주의)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잘못된 시각이라서 글 적고 있습니다.. 저는 주류를 전공해서 좌파, 진보경제학은 잘 몰라요…
엄밀하게 말한다면 Optima과 rent seeking이 모두 혼합된 것이겠죠. 가령 빌 그로스라는 핌코의 채권매니저의 경우, 독일의 알리안츠가 핌코를 인수할때 그를 붙잡기 위해 연봉 4천만 달러를 보장했다고 한다면 그건 rent개념이겠죠. 하지만 그가 실제로 실력이 있었고, 그 결과 그가 떠나는게 손실이라고 본다면 Optimal이겠죠.
일단 CEO고액연봉 운운하기 전에 한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CEO연봉이 단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점. 그렇다면 빌게이츠 재산이 800억 달러인 것도 쌍욕해야죠. 빈부격차 키운다고.ㅋㅋ 요즘 피케티가 어쩌고 하다보니 고액연봉자=때려죽일놈 이라는 마인드가 사회에 암처럼 퍼지는데, 본조비가 연봉으로 8천만 달러를 받아도 아무도 빈부격차를 키운다고 욕하지 않듯, CEO도 유능하면 8천만 달러를 받아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제대로된 토의가 이루어지겠죠.
만약 님 말대로 rent seeking으로 인해 문제가 된다면 최저임금도 일종의 rent seeking이므로 용납되어서는 안되죠. 시간당 2천원 어치 생산성을 가진 사람에게 생활임금 따위 운운하며 6천원 주라고 한다면 정신나간 짓이겠죠.
엄밀하게? 혼합된? ㅎㅎ 관련 논쟁에서 optimal은 rent seeking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rent seeking이 존재한다면 지금 CEO들의 고액연봉은 생산성 이상의 임금이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drebin님이 하신 말은 rent seeking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편의 의견과 동일합니다. 즉, CEO 고액연봉 잘못 되었다는 주장이지요.
그렇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보통 CEO 고액연봉에 대해 단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정하신 것처럼) 생산성 이상의 임금에 대한 비판,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여러 사회적 문제, 경제성장에 있어서의 부정적 효과까지 다각도로 비판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스티글리츠 책도 한 번 보시길… 그리고 피케티 책은 읽고 피케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길 빌겠습니다. 상대편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잘 모르면서… 심지어는 책도 읽지 않고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주류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 반대합니다. 최저임금을 rent seeking 문제로 보시나요? rent seeking이 곧 생산성과 임금의 불일치를 뜻하는 것은 아닌데요… 흠.. 보통은 노조의 개입으로 인한 고임금을 rent seeking으로 말하곤 하지요.. 하여간 주류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준의 기업 이윤(=정상이윤)을 남기고 나머지를 임금으로 하였을 때 과연 노동자들의 임금이 최저임금 미만이 나올지는 생각해볼 문제겠지요.
CEO의 고액연봉에 대해서 생산성 측면에서만 비판해야 옳죠. 사실 불평등 이런건 논할 가치도 없죠. 그렇다면 마돈나가 8천만 달러를 벌었으니 불평등심화다라고 한다면 똥개도 웃을 일이지요. 저스틴 비버가 5천만 달러 받는다고 홍대 인디밴드들이 분개해하지도 않고요.
마치 유명 락스타들이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지나치게 높은 콘서트 공연료를 부르거나 하면 결국 콘서트 티켓이 안팔려서 손해를 보게 되고,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처럼 rent seeking으로 CEO가 생산성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면 그 회사가 손해를 보게 되어 결국 내년도 연봉이 삭감되거나 기업의 주가하락 등으로 생산성을 상회하는 급여를 지불한 댓가를 치르게 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나친 고액연봉이냐 아니냐가 결정되겠죠. 가령 GM처럼 현대차 귀족노조 뺨치는 귀족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노조천국을 이룩한 결과 쫄딱 망해서 파산절차까지 밟았죠. 그렇게 결과적으로 천벌을 받는 것이지요. 생산성 이상으로 돈을 지불하면요.
아직 피케티 책은 못읽었죠. 허나 한국경제신문을 통해서 피케티의 논리를 완벽하게 이해한 민경국 교수나 정규재씨의 글을 통해서 피케티의 주장이 얼마나 오해에 근거한 것인지는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장하준인가 하는 케임브리지 시간강사가 그랬죠. “빈부격차가 너무 커진 결과로 생겼다”라고. 그런데 Oops~~ 미국의 빈부격차와 상위1%로의 부의 집중도는 2007년도보다 훨~~씬 더 높은데도, 다우지수는 사상최고치, 부동산 폭락은 노래하던 좌파/진보들을 하루아침에 바보 멍텅구리로 만들정도로 미국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죠. 덕분에 80조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가 되었지요. 빈부격차가 크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헛소리를 남발했던 그 잘난 자칭 진보 경제학자들 어디있나요.
경제가 무너져야 하는 신자유주의 미국은 주가도 사상최고치에 계속 번성하고, 복지복지를 해댄 유럽국가들은 또 재정위기, 주가폭락, 청년실업으로 3류국가가 되어가고 있으니. 진보경제학은 그냥 사이비일 따름입니다. 이론은 그럴듯 해도 현실을 단 0.0001%도 설명하지 못하지요. 종이낭비요, 칠판 낭비일 따름이랍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평등이나 빈부격차 같은 전통적인 좌파/진보의 논리는 이제 폐기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요? 경제신문을 보며 느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