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544) 대못주자, 불통정권의 오마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언젠가부터 이 속담은 청년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말로 쓰인다. 청년들이 더 이상 고생을 사서 할 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 대다수의 청년들은 높은 학비를 감내하면서 ‘일 반, 공부 반’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마친다. 그러나 졸업조차도 취업준비를 위한 휴학과 취업 실패로 유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부모세대보다 늦은 나이까지 부모님의 그늘에 있거나, 청춘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통해 각박한 취업 시장의 경쟁에서 자리를 잡으려 발버둥 친다. 한편으로는 취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청년들이 저임금 인턴이나 비정규직 등의 좋지 않은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심화되는 청년들의 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정권들 모두 다양한 정책을 선보였다. 하지만 단기적 시각으로 수치적 정책 효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불안정한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에 공감 [...]
위클리펀치(543) 보수의 붕괴는 예고된 것이었다
보수! 너무나 익숙한 용어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던 세력의 호칭이다. 어느 학자는 보수는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든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맞다. 이런 식이라면 보수는 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수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 다수를 차지하면서 큰 소리 쳐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데가 있다. 보수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는 대표적 단어들은 친일, 분단, 독재, 부패 등이다. 모두 부정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보수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온 유일한 업적은 산업화 성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엄밀하게 따지면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교육열, 높은 저축률, 중소기업들의 왕성한 투자 열기 등을 원동력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없었다면 그 누가 나섰어도 산업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보수의 위기1. ‘독재세력’이라는 낙인 [...]
위클리펀치(542) 달란트와 카르마
오래전 지중해 동쪽 끝 연안 어딘가에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종이 셋 있었는데 그가 보기에 각자 재능이 달랐다. 어느 날 부자는 멀리 떠날 일이 생기자 그 중에 제일 능력 있어 보이는 종에게 다섯 달란트, 다음으로 능력 있어 보이는 종에게 두 달란트, 그리고 나머지 종에게 한 달란트를 맡겼다.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 모으니,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열심히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문(利文)을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열심히 장사를 하여 두 달란트를 이문으로 남겼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들고 왔다.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이자라도 받았으면 조금이라도 이문이 남았을 텐데 그 종은 장사도 두렵고 원금을 떼이는 것도 두려워 그냥 땅에 묻어 두었다는 것이다. 부자는 그 종을 어두운 곳으로 내쫓고, 종에게 맡겼던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를 [...]
위클리펀치(541) 촛불시민혁명, 긴 항해를 이끌 좌표는 무엇인가?
촛불시민혁명! 너도나도 혁명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혹자는 사회구조적 변동을 수반하지 않았다하여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인 만큼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도 혁명의 가장 중요한 척도인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주체 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은 그 어떤 조직 동원과 무관하게 오로지 개인의 결심에 따라 참여한 ‘자발적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참가자의 70~90퍼센트를 치지했으며 촛불시민혁명의 전 과정을 지배했다. 시민들은 특정 리더에 의존하지 않고도 (소설가 이문열이 북한의 아리랑 축전을 보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탄탄한 연대와 통일성을 과시했다. 더불어 비폭력 평화시위를 바탕으로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대의 기구를 자신들의 통제 아래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전략 능력을 선보였다. 시민 스스로가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특정 개인이나 소수 그룹으로부터 나온다는 종전의 통념을 뒤집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촛불시민혁명은 가슴 벅찬 첫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앞날은 [...]
위클리펀치(540) 시민혁명, 민중승리의 2017년을 만들어 나갑시다
- 우리는 광장을 지킬 것이고, 끝내 이길 것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2017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늘 상투적으로 썼지만 이번만큼 우리 모두에게 이처럼 들어맞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가계, 일터, 세금, 주택 등 많은 경제 영역에서 우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고, 보여지는 수치는 양극화와 절망을 드러냈습니다. 나라의 통일과 중소기업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개성공단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폐쇄되었고, 정권은 자신들의 친일, 독재의 과거를 감추고 미화하면서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역사를 주입시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했습니다. 통일부 장관은 반통일 전선의 수장이 됐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식민지와 독재의 역사를 주창하는 선봉에 섰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격의료 등을 밀어붙이며 재벌기업들의 돈벌이에 나섰고, 문화체육부 장관은 편 가르기로 순수한 문화와 체육계 사람들을 농락했으며, 심지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련자들의 마음에 못을 박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어떤 안전도 책임지지 않았으며, 성평등을 보호해야하는 여성가족부 [...]
위클리펀치(539) 이 시대의 진정한 정치 9단, ‘시민’
촛불시민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우리는 그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 그러한 이유로 촛불시민혁명이 어떤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단정 짓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촛불시민혁명을 일으킨 중요한 정치 지형의 변화 한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종종 정치 거목들을 가리켜 정치 9단이라고 표현한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 등이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를 정치 9단으로 보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 정치 9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양자 구도 설정 능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김영삼 양김씨는 일관되게 민주 대 독재 구도를 유지했다. 민주 진영 안에서 반미 등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미국과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온갖 입력과 회유가 있었지만 민주 대 독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