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62) 선진국 벤치마킹 시대는 끝났다
온갖 문제투성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붙는 자랑스러운 수식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 중에서 보기 드물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산업화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덧붙여지는 표현이 있다. ‘초고속 압축 성장’이 바로 그것이다. 수치로 확인해 보자. 2005년 달러 가치 기준으로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07달러였다. 54년이 흐른 2014년에 이르러 그 수치는 2만 4,565 달러로 약 2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는 2.1배, 멕시코는 2.6배, 터키는 3.7배 성장하는데 그쳤다. 한국의 고도성장이 경이롭게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한국이 초고속 압축 성장에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 철저한 ‘추격전략’을 구사한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추격전략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검증된 선진국 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전력을 다해 따라잡는 전략이었다.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산업화의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
위클리 펀치(561) 새 정부 일자리 정책에 대한 박수와 우려
후보시절부터 일자리 문제를 우선으로 해결하겠다던 문재인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일자리위원회 설립 및 운영방안’을 위한 업무지시에 서명을 하였다는 소식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그 이유는 당장이라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희망을 실현시킬 듯이 빠른 속도로 일자리위원회 설치가 확정되고, 인천공항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으며, 18가지 실시간 지표를 담은 일자리 현황판이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되는 등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짧은 기간 안에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있었다. 이런 희망은 그동안 비정규직을 대량생산하는 것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전 정부들과 달리, 대통령이 직속기구를 통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빠르게 보이는 것 자체에 대한 감동에서 기인했다. 실제로 일자리 문제는 의지만으로는 해결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이겨내야 할 많은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한쪽에서는 이런 감동에 박수를,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를 함께 보내는 것이다. 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 창출 ② [...]
위클리 펀치(560)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과 ‘매칭’의 기술
얼마 전, 대학원 수업에서 교재로 앨빈 로스(Alvin E. Roth, 2012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매칭, Who Gets What - and Why』(2015)을 읽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시장에서 작동될 수 없거나 작동되어서는 안 되는 신장 이식 시스템, 고등학교 배정 방식, 구인구직 시장 등의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을 효과적으로 매칭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 갖고 있던 한국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자 선정 방식에 대한 의문점이 떠올랐다.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자 선정 방식 역시 가격이라는 일반적인 시장의 방식으로 작동될 수 없고, 정책 대상에 알맞은 입주자를 선발하려는 공급자(공공주택사업자)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싶은 수요자(주거약자)의 매칭이라는 점에서 책의 논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품고 있던 의문점은 첫째, 청년주거문제의 심각성은 주로 저소득 1인 가구(사회초년생)의 사례로 드러나면서도 정작 행복주택의 공급량은 신혼부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상황이고 둘째, 신혼부부 우선공급 물량은 혼인과 [...]
위클리 펀치(559) 드라마 [역적] 과 80년 광주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역적>)의 등장은 꽤 고무적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명 ‘사이다’ 드라마로 소개하면서 속 시원한 사극으로 호평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사극 장르는 일찍부터 한류를 일으켰던 <대장금>을 비롯하여, <뿌리깊은나무>, <육룡이나르샤>까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방영되며 오랫동안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그러하듯이 역사는 언제나 임금과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왔고,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종종 선/악 구도를 넘어서지 못 했다. 드라마 <역적>의 등장이 고무적인 이유는 바로 왕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민중 중심의 삶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 드라마 <추노> 이후 오랜만이다. 드라마 <역적>은 노비 아모개(김상중 역)의 아들로 ‘아기장수’의 힘을 갖고 태어난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 역)은 방물장수이자 왈패로 생활을 하면서 만난 민중의 고난을 목도하고 임금과 결전하는 의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홍길동은 가족, 왈패 패거리를 넘어 민중까지 구하기 위해 [...]
위클리 펀치(558) 19대 대선, 정치참여 불평등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정치참여 기회는 만인에게 평등한가? 드라마 역적에서 천민 아모개의 자식인 홍길동과 임금 연산군은 둘 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조선의 기본 교리인 성리학 그 중에서도 삼강오상(三綱五常)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단지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길동은 하늘 아래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 높낮이가 있을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하는 반면, 연산군은 자기 아래 사람들은 다 종으로 인식한다. 연산군은 종들에게 있어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등 절대적 복종의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강상죄 및 사람의 신분 차이가 당연한 조선시대에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길동과 그 의견에 동조하며 익숙한 것에 저항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드라마지만 사실 작금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낯설지만은 않다. 기다리던 19대 대통령선거가 치뤄졌다. 2016년 11월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부터 촛불 그리고 어제 치뤄진 대선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 일련의 [...]
위클리 펀치(557) 노동 밖의 노동을 상상하며
세상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두 가지 노동형태만 있는 줄 알았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안정적이고, 임금도 많고, 적어도 50대까지는 이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갈수록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진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우월하고, 정상적인 노동이라는 인식.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 비율보다 훨씬 많은데도 사회는 늘 정규직이 모든 노동의 목표인 것처럼 다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은 ‘정규직’이 아닌 다른 부류의 노동을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범주로 묶어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청소년, 청년, 장애인, 여성,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터에 있지만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늘 주변인 취급을 받아왔다. 주변인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기꺼이 감수해야하고, 본인의 의지나 체력과 상관없이 휘청거리는 노동판과 함께 출렁이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출현하게 된 계기는 IMF 이후이다. 노동 유연화와 서비스업의 확대는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기치 아래 이루어졌다. ‘철밥통’, ‘정년보장’이라는 노동환경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