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마케팅 수업 시간에 전통시장과 대형마트를 비교하면서, 전통시장이 아무리 시설 현대화에 투자한다고 해도 전통시장에 가는 이들의 필요(needs)와 대형마트에 가는 이들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에 대형마트 고객을 전통시장으로 끌어올 수 없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이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한편으로는 전통시장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시장에서 유년기를 보냈기에 전통시장에 대한 애정이 큰 탓도 있지만, 시설 현대화 등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한낱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소한의 시설 현대화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나 그 이상,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향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전통시장은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전통’이 보존하고 이어나갈 문화의 느낌이라면 ‘재래’는 바뀌고 사라질 것의 느낌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두 용어의 어감은 상당히 다르다. 현재 전통시장이 재래시장이라고 동시에 불리는 것은 ‘전통’과 ‘재래’의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전통’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통’이라고 할 때 직결되는 이미지는 체험이다. 즉, 전통시장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체험’을 판매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서울의 전통시장 중 관광객이 붐비는 곳으로 종로구의 통인시장과 광장시장을 꼽는 경우가 많다. 통인시장의 경우 경복궁이 가깝고 한옥이 많은 서촌에 있다는 특성도 있지만, 현금을 옛날식 주화인 ‘엽전’으로 바꿔서 쿠폰처럼 사용하는 ‘도시락 카페’를 대표로 하는 전통 체험이 인기다. 마찬가지로 광장시장은 거대한 길거리 음식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의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데, 한 자리에서 그 만큼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으로 광장시장만한 곳도 없다. 이 두 시장은 공통적으로 일반적인 ‘상품’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체험’을 판매한다는 차원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의 경쟁우위에도 시사 하는 바가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며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식회사와 비교했을 때, 일반적으로 신속함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이 주식회사 방식을 따라 신속함과 효율성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마치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와 경쟁하기 위하여 시설 현대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오히려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다르게 두드러지게 제공할 수 있는 신뢰와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경쟁우위가 될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하 민달팽이)의 상황을 예로 들면, 민달팽이는 청년 1인 가구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셰어하우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격에만 집중하다보면 일반 셰어하우스 업체와 가격 경쟁에 빠져 결국 규모의 경제를 이룬 업체에게 시장을 빼앗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전통시장이 한국 문화의 체험을 판매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듯이, 민달팽이도 공동 소유와 소비를 실천하는 1인 가구 공동체의 생활문화를 판매하는 것으로 접근한다면 일반 셰어하우스 업체와 두드러지는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당장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협동조합 고유의 신뢰, 연대의식은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