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80)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주택가격
지난 주 목요일인 10월 12일에 마포시민협력플랫폼과 대안주택포럼(가칭) 공동주최로 ‘제2차 공유를 부르는 토지와 주택 포럼’이 열렸다. 약 세 시간에 걸쳐 ‘함께주택협동조합 지불가능가격 원칙잡기’와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주택가격’이라는 주제의 발제와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전은호 토지+자유연구소 시민자산화지원센터장은 발제를 통해 지불가능가격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주택가격을 정하는 기준을 크게 시세기준, 원가기준, 소득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시장논리에 따라 시세기준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세를 사람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없다면 결코 ‘합리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은호 센터장은 ‘주거비용을 부담하고 난 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을 뜻하는 ‘잔여소득기준’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제 ‘사람을 중심에 둔’ 주택가격을 살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경제를 논함에 있어서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 생소한데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애덤 [...]
위클리 펀치(579) 온전한 노동권 실현의 두 가지 길
내가 인생 황금기였던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은 분야는 노동운동이었다. 당시 관심이 집중되었던 곳은 대규모 사업장이었다. 대규모 사업장은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었던 탓으로 지축을 흔들 만큼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란 바로 이들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운 좋게 철도와 기아자동차 노동자들과 비교적 손쉽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문제는 두 사업장 모두 역사적 뿌리가 깊은 대표적인 어용 노조가 버티고 있는 곳이었다. 이들 노조를 민주화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활동가들이 상당한 희생을 겪으면서도 연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역사 교실’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역사교실은 한국현대사를 5, 6차례에 걸쳐 풀어내는 강좌였다. 철도 사업장이 전국에 분산되어 있었기에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진행했다. 노동자들의 호응은 상당히 좋았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
위클리 펀치(578) 다시 보는 2012년 리보 금리 사기 사건
2012년 영국과 스위스, 미국 금융당국은 라보은행과 UBS, 바클레이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등 10여 개 은행이 담합하여 수년간 리보금리를 낮춘 사실이 조사하여 밝혀내고 100억 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했다. 리보 금리 사기 사건은 2012년 밝혀진 대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춘 글로벌 대형은행들이 전세계를 상대로 수년에 걸쳐 벌인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리보금리는 런던 은행 간 거래 금리로, 전세계 금융 거래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금리이다. 리보금리는 한 나라의 재정 지출이나 이자 비용 같은 것에도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리이다. 이런 맥락에서 리보금리는 대단히 중요한 실물경제 지표이다. 리보금리 사기 사건이 밝혀지면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글로벌 거대 은행의 딜링룸에 있는 은행원들이 채팅을 통해 ‘페라리 자동차를 선물로 주겠다’ 등의 말을 주고받으며 ‘금리 조작을 통해 이익을 챙겨보자는 말’이 오고 갔었다. 시티 은행의 경우 최고위층의 경영인사까지 이 행위에 연류된 것으로 [...]
위클리 펀치(577)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불리던 남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안 보일 때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때렸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알리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에, 아무에게 알리지 못 했다. 그때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는 길이 무서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괴롭힘은 멈췄다. 대신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나를 괴롭히던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남자 아이들은 원래 좋아하면 괴롭히는 거라고 했다.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그때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나만 겪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다. 남자 아이들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거나, XX년, 병신과 같은 말을 여학생들에게 쉽게 했다. 최근 보도되는 학교 기사를 보면 섬뜩할 때가 많다. 선생님에게는 포르노에 나오는 대사를 날리며 성희롱 하거나, (친구)엄마를 [...]
위클리 펀치(576) 금융적폐, 키코 사태로 다시 보다
2008년 6월말 당시 기업이 은행에 매도해야 될 키코 계약의 콜옵션 금액잔액은 101억 달러였다. 이 중 74.3%인 75억 달러는 중소기업이 책임져야 할 거래 잔액이었다. 당시 수출 대금 환차익으로 인해 기업이 이익을 볼 수 있는 금액은 중소기업의 경우 환차익을 감안할 때 1조 3,269억. 그러나 키코로 인해 오히려 2,533억 원을 손해 보았다. 대기업까지 고려하였을 경우 키코 거래 잔액이 거의 11조에 달해 실제 모두 이행되었을 경우 막대한 국민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환차익에 의한 이익이 수출기업이 아니라 고스란히 은행에게 귀속된 것이다. 여기에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악명 높은 경제 관료였던 강만수 전 장관조차도 키코를 은행이 기업을 상대로 사기친 투기상품으로 규정했을 정도다. 키코는 아주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옵션을 두 개 붙힌 환율 위험 [...]
위클리 펀치(575) 우리들의 시지프스 바위 ‘성장’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 중에 시지프스 이야기가 있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시지프스는 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 위까지 밀어 올려야만 했다. 바위는 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시지프스는 그 바위를 다시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시지프스 신화는 사람들에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런 굴레는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한 예로 근대 이후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해 온 ‘성장’을 들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에서 성장 문제는 종종 치열한 시비꺼리가 되어 왔다. 과거 산업화 시절 성장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지상 가치로 간주되었다. 성장을 위해 재벌 체제도 용인되었고 분배도 최대한 억제되었다. 그러다 보니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는 성장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정서적 거부감이 자리 잡았다. 생태계 보전이 중요 의제로 부상하면서 성장을 절대시하는 관점은 새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