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말 당시 기업이 은행에 매도해야 될 키코 계약의 콜옵션 금액잔액은 101억 달러였다. 이 중 74.3%인 75억 달러는 중소기업이 책임져야 할 거래 잔액이었다. 당시 수출 대금 환차익으로 인해 기업이 이익을 볼 수 있는 금액은 중소기업의 경우 환차익을 감안할 때 1조 3,269억. 그러나 키코로 인해 오히려 2,533억 원을 손해 보았다. 대기업까지 고려하였을 경우 키코 거래 잔액이 거의 11조에 달해 실제 모두 이행되었을 경우 막대한 국민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환차익에 의한 이익이 수출기업이 아니라 고스란히 은행에게 귀속된 것이다. 여기에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악명 높은 경제 관료였던 강만수 전 장관조차도 키코를 은행이 기업을 상대로 사기친 투기상품으로 규정했을 정도다. 키코는 아주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옵션을 두 개 붙힌 환율 위험 회피 상품이다. 그러나 이 상품 자체가 상품을 구매한 기업에 이익을 주기 보다는 판매한 은행에만 이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어서 출생 자체부터 문제가 많은 상품이다.
오죽 했으면 2008년 이제 막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한 강만수 전 장관이 은행이 기업에게 판매한 키코를 두고, “S기”라고 하였겠는가? 여기서 S는 투기(speculation)을 뜻하는 말로 강만수 전 장관이 보기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당시 강 전 장관은 정권을 인수한 이명박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로 취임한지 2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아 그야말로 서슬이 퍼렇던 시기인데 공직에 있는 신분으로 키코가 은행이 기업을 상대로 투기하려 만든 것으로 분명히 지칭하였던 것이다.
알다시피 수출 기업 입장에서 환율만큼 기업 이익 실현에 불안감을 주는 변수도 없다. 열심히 일해 만든 상품이 환율 변동으로 인해 더 싼값에 팔리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계속해서 고환율이 유지되었다. 가령 수출기업 입장에서 3월에 1달러 당 1,000원으로 판매한 대금을 3개월 후 동일한 1달러지만 1,300원으로 받으면 그만큼 이득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고환율은 수출기업에게 나쁜 환경은 아니다. 물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자재나 중간부품소재 값이 뛰어 생산단가가 오르긴 하지만 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기 고환율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수출기업들의 수출 판매 실적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타격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줄도산이 이어진 것이다. 이는 수출 판매가 성사되지 않아서도 아니고 해외 구매기업이 수출대금을 결제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은행들이 기업들에게 팔았던 환율위험에 대한 보험이라고 속였던 키코 때문이다. 키코의 상품 계약은 어느 특정한 환율이 되면 은행이 기업으로부터 해당 환율로 자금을 매입할 권한을 갖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고환율로 이익을 보는 수혜자를 기업이 아니라 은행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었으나 기업은 고환율로 수출대금결제의 이익을 보기는커녕 은행에게 약속된 환율로 계약 규모만큼 자금을 주게 된 것이다.
은행이 이같이 될 것을 몰랐을까? 순수하게 계약을 따지는 법적 측면에서 사기가 마땅하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사기인 것은 또한 분명하다. 당시 환율수준이 이상하리만큼 저환율 기조가 오래되었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고환율로 올라갈 것이 뻔한 사정에서 고환율에서 위험을 회피할 좋은 먹이감을 은행이 찾은 것이다. 또한 2007년 당시 통화당국이 외환이 시장에 너무 많이 풀려다며 외화차입 규제안까지 발표하였다. 시장에 달러 품귀사태가 벌어진 것은 수순이었다. 따라서 은행은 향후 환율이 오를 것을 대비하고 또 외화차입 방안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는 키코는 무리해서 팔아도 될 만큼 유혹적인 상품이었던 것이다.
옵션을 두 개나 붙여 판 상품을 기업이 운용할 부서나 환율 리스크 전문가 하나 없는 상태에서 덜컥 구입한 것은 그동안 거래해온 주거래 은행의 지점장이나 부장이 안심시킨 결과다. 또 키코를 사주어야 기업에 필요한 추가 대출을 실행을 해줄 수 있다는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계속 종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경제다. 따라서 수출로 인한 경제변수에 그만큼 주의를 기울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기업에 가장 어려운 글로벌 경제 여건에서도 실행시킨 수출이 은행의 사기 때문에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은행뿐 아니라 감독당국의 책임도 분명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조선해양 플랜트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너무나 가슴 아픈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따지고 보면 조선해양 플랜트의 문제의 첫 시작은 키코에 있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 적폐를 드러낸다는 것은 단순히 키코 때문에 도산하고 지금도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어루만져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키코와 관련된 금융 적폐 해소는 나아가 조선해양 플랜트와 같은 기간산업을 지키고 수출실적을 내어 해당 지역경제와 한국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금융을 세우는 일이다.
기존 금융은 금융만의 이익을 위해서 뛰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배제의 질서가 판치는 금융이 아닌 기업을 포용하고, 지역경제와 한국경제를 포용하는 포용금융으로 거듭나야할 시기이다. 첫 단추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키코 사태를 올바르게 되돌려 놓는 일이다. 이는 사법 적폐 개혁과도 같이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관료도 인정한 일을 무위로 돌린 것이 바로 사법 적폐 권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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