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부터 경제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장기간의 불황으로 인한 각종 불안정성과 사회 깊숙이 침투한 양극화 문제는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전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전 세계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개인과 국가 모두가 불안하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과 배려가 사라지고 자신에게‘만’ 나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는 도덕적 판단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합리적 인간’, 혹은 ‘야경국가’ 등의 개념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사회 구조보다는 개인에게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곤 했다. 다시 말해, 사회에 속한 개인이 시장을 통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의 이익은 커지고, 그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귀속시킨 것이다. 역사 속에서 복지국가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시장의 주체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분석하기에는 유용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아담스미스는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부정하였고, 국가의 무상교육을 통한 보편적 교육론을 언급하기도 한다. 즉, 해당 개념들은 사회 안에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가 정립되고 공유된 상태를 가정하고 전개된 것이다. 거기에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발현 되어야 최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과정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덕분에 자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촉진된다고 주장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기심이 본질이면서도 희생과 배려가 있고, 그 사이의 사회 교환 과정을 관찰해 온 스미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를 하며 경제학을 창시하였다. 이에 기본 개념들을 다시 보며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기심(Self-interest)에 대해

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인 인간은 때론 이기적인 인간의 이음동의어처럼 사용된다. 아담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중국의 지진과 당장 내일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를 묘사하면서 이기심을 설명한다. 자세히 풀어보면, 중국에 갑작스럽게 지진이 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라를 잃게 된 상황이 벌어진다. 이 소식을 들은 유럽의 휴머니스트는 비통해하고 애도하지만, 이 비참한 소식이 막상 그날 밤 이 휴머니스트가 편안한 잠자리에 드는 것을 막을 수 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사소한 사고로 인해 내일 당장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야한다면 휴머니스트는 밤새 잠들지 못하며 불안해 할 것이다. 직접 보지 못한 수 억 명의 죽음보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앞선 예시에 따르면 사람은 마치 극단적인 이기심이 최우선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자신의 안위만이 유일한 관심사라면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운영되며 심지어는 발전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부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저녁식사에 대한 비유이다. 우리가 저녁에 먹는 음식들이 푸줏간 주인이나 빵집 주인, 혹은 양조업자가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관용을 베풀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래한 결과라는 것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을 개선시키려는 자연적인 노력이 합리적인 이기심인 것이다. 이러한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각자의 노력과 이해가 이성과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합치할 때 교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교환이 곧 경제 질서의 근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기심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개인의 상황을 좋아지게 하려는 노력은 인간을 생존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단지 이기심이란 개념은 사람들의 희생이나 배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요구 등을 설명하기엔 부족하기에 추가적인 개념이 필요하다.

공감(Sympathy)에 대해

이러한 이기심의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이기심과 정반대의 능력처럼 보이는 공감능력이다. 국부론보다 앞선 스미스의 저서인 도덕감정론은 당대 스미스를 유럽 전역에서 유명하게 한 최고의 책이었지만, 국부론의 유명세에 밀려 주목을 덜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덕감정론이 있었기에 국부론이 나올 수 있었고, 스미스가 말년에 수정을 거듭하며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도덕감정론이었다. 이 저서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간의 능력은 공감이다. 쉽게 풀어 말하면 역지사지의 자세이다. 상상력을 작용시켜 타인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킴으로서 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판단의 기초에 연결이 된다. 그 이유는 타인과 감정이 공유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평가 할 때, 타인의 감정과 평가를 추론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은 행위를 할 때 타인의 승인과 평가를 요구하고, 이러한 타인의 역할을 자신의 내부에서도 (행위를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심리적 존재한다. 이를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고 하는데, 이는 각자 내부에 자리 잡는다. 공정한 관찰자는 당사자 안, 즉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하는 주체를 속일 수 없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공정한 관찰자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그 결과가 모인 것이 일반적인 도덕이다.

여기에 스미스는 미덕(virtue)이라는 항목을 추가하여 공정한 관찰자가 납득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낮은 차원의 덕목인 신중(prudence)과, 자기 및 공공적 측면에 도움이 되는 정의(justice), 그리고 공정성을 추구하려는 자기절제(self command)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덕목 때문에 공감은 이기심과 조화를 이루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해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 이기심과 공감의 개념을 통해 개인은 하나의 차원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은 다면적이고, 도덕적으로 공정한 사회라는 바탕에서 자유로운 개인 간의 교환을 통해 부를 증대시키며, 각기 다른 개인의 만족을 얻는 것이다. 국부론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 사이에서 작용하는 확장적 통로이다. 마치 도덕감정론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조화로운 사회에서나 가능한 교환까지 가는 데에 공감능력과 내적인 도덕기준의 발현이 통로가 된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시장은 독과점이 없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워 기회가 비교적 균등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야만 개인이 시장에서 자유롭게(natural liberty) 이익을 추구했을 때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거나 노력한 만큼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구조이다. 아담스미스는 지금처럼 세계 자본의 규모가 크지 않았고,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학문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기에 살았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를 도덕적 기반에서 찾았다. 이 부분을 다시금 되새겨야할 시기이다.

 

 

참고 1) D.D. Raphael, 1997, “Smith,”in Three Great Economists, 7-104, Oxford.

참고 2) 이현주 역, 2015,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Russell Roberts, 2014,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