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의 시대
한국 사회는 빈부격차와 소득격차, 재벌과 대중소기업, 노동조합과 경제민주주의, 복지국가와 빈곤 등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10월 말부터 서울 광화문 거리는 대규모 촛불시위로 뒤덮였다. 11월 12일에는 광화문에서 시청, 종로의 거리를 뒤덮은 1백만 촛불과 함께 ‘김제동의 헌법학 개론’을 들었다. 1987년 6월의 뜨거운 거리에서 최루탄 가스와 백골단에 맞서 피눈물 흘렸던 과거와는 달리, 엄청나게 큰 거리 축제의 웃음꽃 분위기였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점이 있었다. 이 나라 역사가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다시 한 번 맞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11월 8일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고 당선되었다. 8년째 계속되는 세계경제 대불황의 여파로 미국의 기성 정치판이 뒤집어진 것이다. 세계사 역시 칼 폴라니의 책 제목 그대로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된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대위기에 새롭게 조명받은 책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자유시장(시장 자율) 원리에 입각한 경제질서란‘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고 주장한다. 인간ㆍ자연ㆍ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여 ‘시장의 자율’에 맡겨두면 결국 근대 계몽주의가 소중히 여긴 인간의 자유와 개성이 일체 파괴되는 커다란 비극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폴라니는 1930년대의 대공황과 그에 이은 대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경제질서가 탄생하는 ‘거대한 전환’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오늘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가 거대한 전환의 과정을 밟고 있다. 8년째 계속되는 세계경제 대불황(Great Recession)은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대지진을 낳고 있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했고,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둘 다 1930년대에 나치즘과 파시즘이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내세우면서 ‘좌절하고 분노한 하층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프랑스에서도 인종주의적 국수주의자인 민족전선(Front National)의 정치적 세력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만약 2017년 4월 프랑스 선거에서 민족전선이 집권 또는 제2당으로 성장하여 프랑스마저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유럽과 세계의 정치경제는 미국 트럼프 당선보다 더 커다란 격변을 겪게 될 듯하다.

오늘날 세계 역사의 대전환의 배경에는 ‘좌절한 사람들’이 있다. 차별당하고 빼앗겨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이제 그 좌절을 분노로, 기득권 정치판으로부터의 일탈과 반란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한 반란이 일어나고있는 것이다. 수백만 명이 촛불시위로 일어선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돈이 실력인 세상에서 돈 없는 평민은 개·돼지
박근혜를 둘러싼 최순실과 정유라, 최순득과 장시호, 그리고 최태민의 비밀스런 과거 행적과 그들 사이의 밀회, 그리고 그들의 ‘출생의 비밀’에 관한 온갖 소문과 이야기들은 수년 전 TV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밀회>와 <출생의 비밀>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그들은 수천억, 수조 원의 재산을 부정과 편법으로 축재하고 국가를 사유재산처럼 취급하였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을 신흥 왕족 또는 최상위 귀족으로 여기면서 유아독존과 안하무인의 태도로 세상 사람들과 아랫사람들을 하찮은 존재로, 개돼지로 취급하였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자신의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고 썼다. 이 말에 분노한 많은 중고생들과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그 분노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고 ‘돈 많은 것도 실력’이라는 말은 사실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TV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정유라와 장시호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집권당에 포진한 보수적 시장주의자들은 본래부터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말하면서 불평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그것의 긍정성을 칭찬해온 자들이다. 19세기 말의 자유주의자인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Herbet Spencer, 1820-1903)는 “빈부격차의 심화는 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며, 기업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종의 자연적 진화를 국가가 가로 막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국가공동체가 돕는 것은 인류의 자연적 진보 과정을 심하게 방해”하는 것이며, 인간 사회 역시 자연과 마찬가지로, ‘양육강식의 적자생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펜서의 사상을 이어받은 미국의 윌리암 섬너(William Sumner, 1840-1910) 역시 ‘백만장자는 자연도태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섬너에 따르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돈 있는 부모 만난 실력’으로 한국 사회의 강자로, 지배자로 선택(자연선택!)되는 것이 필연적이며 더구나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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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152) 샌더스의 꿈, 우리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