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져 있듯이, 코엔 형제의 2007년 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을 제목으로 단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알려져 있듯이, 원제 ‘no country for old men’의 적절한 번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이다. 늙은 시인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들리는듯한 이 시큼한 시구는, 안타깝지만 현재 고령자가 겪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예이츠가 그리는 ‘비잔티움’과 극단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우당탕 벌어진 사건의 끝자락을 쫓는/쫓도록 되어있는 이야기 속 늙은 보안관 벨의 신세는 현실의 고령자의 삶을 함축한다. 앞으로 분석할 고령자의 노동시장 현실은,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문으로 후세대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더 젊은 세대가 함께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현 실태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다.

익숙하고 우울한 지표부터 살펴보자. 2010년 인구 10만 명당 33.5명이 자살하는 세계 최고의 자살대국 한국(OECD 평균은 12.62명)에서 특히 고령자 자살률은 압도적이다. 다음 표 1은 2005년의 연령대별 자살률을 나타낸 것인데, 한국의 55세 이상 자살률은 눈을 씻고 봐도 표 안의 다른 국가들 중에서는 비슷한 수치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이다. OECD 평균으로 봐도 65세 이상의 자살률이 가장 높으나, 연령대와 자살률 간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29개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연령대가 75세 이상인 국가의 수가 9개로 가장 많지만, 25-34세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의 수도 8개이다. 사실 OECD 평균 자살률을 한국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고연령대의 자살률은 현저히 낮아진다(마지막 행 참조). 한국에서 자살 위험은 노동시장의 핵심 연령대(25-54세)를 넘어서면 연령구간마다 2배씩 커진다.

OECD 다른 회원국들과는 달리 한국의 자살률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다른 국가들의 자살률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자살률은 1990년 초를 지나며 꾸준히 늘었다. 상기하였듯이 더 최근 자료에서는 33.5명으로, 상승 추이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 추이는 고령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림 2는 15세부터 5세 간격으로 연령 구간을 나누어 자살률의 추이를 살펴본 것이다. 범례를 표시하지 않았으나 2013년 현재 가장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고연령 구간이다. 따라서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80세 이상이다. 그러나 자살률과 연령대의 이러한 관계가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증가하였으나, 고연령대에서 자살률의 증가폭이 훨씬 컸던 결과이다. 한국 사회는 예전부터 고령자들이 살기 힘든 사회였던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 유난히 고령자에게 더욱 혹독해졌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고령자의 삶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단 말인가?

고령자 자살률과 함께 언급되는 또 하나의 심각한 지표는 바로 빈곤율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이전소득을 포함한 세후 소득의 중위 50%를 빈곤선으로 정의할 때 65세 이상의 빈곤율은 2011년 현재 48.6%로 회원국 내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해당 년도 평균인 11.6%의 네 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한국의 고령자들을 자살로 내모는 상황을 경제적인 이유로 환원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 빈곤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또한 고령자에 대한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social expenditure) 비중이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 2.1%였다는 사실은 한국의 고령자 빈곤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고령자의 다수가 빈곤하고 빈곤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노동시장 내 고령자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킨다. 표 2는 60세 이상의 고령자 임금노동자 평균 임금이 59세 이하의 임금노동자 평균 임금과 비교하여 어땠는지를 배율로 나타낸 것이다. 임금 노동자 중 고령자의 비중은 대체로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연공서열제로 특징지어지는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고령자의 임금은 평균을 끌어올리는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위치로 변하였다. 이는 상용직 5인 이상의 사업장만을 표본으로 하는 자료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다수의 고령자가 노동시장 내에서 주변부 위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유선(2014)의 분석에 따르면 35세 이상의 비정규직 비율은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높고, 남성은 60세 이상에서 크게 높아지는 반면 여성은 비교적 완만하게 꾸준히 높아진다. 60-64세의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은 67.4%, 여성은 86.1%이다.

다음의 그림 3은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를 산출 기반인 로렌츠 곡선(Lorenz curve)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린 분리 곡선(segregation curve)이다. 그래프 양축의 숫자는 관리직부터 단순노무직까지 직종군을 의미하며,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얼마나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는지를 보인 것이다. 즉 45°선에 빨간 색의 분리 곡선이 가까울수록 직종별로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 초중반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비교한 1988년과 1998년의 분리 곡선은 언뜻 보기에도 1998년에 분리가 심화된 듯 보인다. 45°선과 분리 곡선 사이의 넓이가 더 넓어진 것은 더 작은 숫자로 표현되는 고위 직종군에 더 적은 비중의 고령자가 분포하고 최하위 직종군에 쏠려있음을 의미한다. 지니계수와 같이 상이함을 하나의 숫자로 나타내는 상이지수(Dissimilarity index)는 1988년에 0.4237이었으나 1998년에는 0.5260으로, 고령자의 직종 분리는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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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91)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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