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 더 많은 ‘장그래’ 만들어

해가 바뀌어도 비정규직, 기간제, 무기계약직, 3~4년 계약직 등 또 다른 이름으로 고용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2년 기간제 비정규직을 4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해법으로 내놓으면서 각계의 비난이 거세다. 일명 ‘장그래 양산법’이라는 비난을 맞고 있다.

장그래는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의 2년 계약직 사원으로,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결국 해고되었다. 이렇듯 정부안은 고용 불안을 1~2년 유예한 것에 불과하며, 이게 과연 제대로 된 비정규직 대책인가에 대해 다수 국민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방문간호사, 하루아침에 대량 해고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의 보건소 건강관리사업을 수행하던 방문간호사 수백 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새해를 앞두고 전국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을 기대했던 방문간호사들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취약계층의 최소한의 복지 안전망도 일정기한 공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동안 방문간호사들은 직접 가정으로 찾아가 건강을 살피고, 추가로 필요한 의료가 있으면 연계하고, 일상에 대해 마음으로 소통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시기보다 건강관리가 필요한 동절기에,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부담을 이유로 숙련된 방문간호사는 거리로 내몰리고, 공공이 담보해야할 취약계층의 복지는 사각지대에 놓였다.

‘고용유연화-근시안적 보건의료 정책-돌봄가치 평가절하’의 결과

방문간호사 해고 사태는 예산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첫째,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고용 정책의 방향으로 잡고 있는 이상 지자체 결정에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공기관부터 시급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게 박근혜 정부 출발부터다. 2014년 하반기에 고용노동부는 2015년까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6만5천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최근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은 이와 크게 배치되는데다, 궁색하기마저 해 이번 사태에 이렇다 할 대응안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둘째, ‘무기계약직’ 역시 고용 안정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라는 데에 여전한 한계가 있다. 2007년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 기간제를 대신할 ‘무기계약직’이 등장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문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무기계약직은 주관적인 업무 평가나 예산절감 등 다양한 이유로 언제든 내쫒길 수 있는 불안감이 늘 따라다니고 있다.

셋째, 고용 보장과 연계되지 못한 건강사업은 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예방과 관리에 중점을 둔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고용 안정을 뒷받침하지 않는 건강사업은 지속가능성이 낮다. 올해로 방문건강사업은 8년차를 맞고 있으나, 고용을 보장한 지자체는 서울시 노원구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연말 방문간호사를 포함한 방문건강관리사업 계약 이 만료된 90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우는 노원구 10명뿐이며, 기간제로 재계약된 대상자는 31명, 49명은 해고된 것으로 조사됐다(<뉴시스> “서울 방문건강관리 전문 인력 10명 중 1명 정규직화…절반 해고”>.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연말 해고된 방문간호사만 전국적으로 508명에 이르고 있다.

넷째, 현대사회가 ‘돌봄의 위기에 처했다’라는 진단까지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의 전달체계에서 핵심인 돌봄의 전문성은 오히려 평가 절하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파스칼 몰리니에 파리13대학 교수는 “돌봄의 노동 가치가 너무나도 평가 절하됐다”며 “돌봄이 없다면 우리의 안녕도 없다. 그러므로 비기술적이고 비숙련적인 일로 인식되는 돌봄을 재평가하고 전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험에서 쌓인 돌봄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돌봄의 공백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위기에 대응하기는 힘들다.

이처럼 ‘고용시장 유연화 방향제고-고용보장과 연계된 보건의료사업으로 전환-숙련된 돌봄노동의 중요성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제2, 제3의 방문간호사, 혹은 장그래는 필연적으로 잉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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