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 살릴 길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내 아이만’ 살릴 길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By | 2014-10-30T10:28:12+00:00 2014.05.15.|

아마도 ‘세월’을 외면하고 싶은 뻔뻔함도 있었을 것이다. 촘촘히 알파벳이 틀어박힌 685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을 정신없이 읽어내린 데는…. 지금 막 마지막 장을 덮은 책 표지에는 <21세기 자본>이라고 쓰여 있다. 요즘 전 세계, 특히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책 얘기다. 서문에 스스로 밝혔듯이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200년 되던 해,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에 피케티는 열여덟 살이었다. 이때부터 학문을 시작했다 쳐도 이제 겨우 25년, 자신의 첫 번째 저서에 감히 마르크스의 ‘자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그의 무기는 장기 시계열 통계다. 각국의 공식 국민계정, 세금환급 자료, 17세기 이후의 각종 문헌,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재산 조사 등을 꼼꼼하게 모아서 길게는 300년에 이르는 일관된 통계를 만든 것이야말로 그의 빛나는 업적이다. 그의 천재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해명하기 위해 선택한 지표에서 번득였다. 경제학과 역사학은 물론 정치학과 사회학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발자크와 오스틴의 소설까지 두루 천착했기에 찾아낸 핵심 지표, 그것은 ‘자본/소득 비율’(β=W/Y, 현재의 총자산이 국민소득 몇 배에 해당하는가)이다. 이 비율에 수익률(r)을 곱하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α=rβ)이 나오고 장기 정상상태(steady state)의 균형조건, 즉 저축률/경제성장률과 비교하면(β=s/g), 불평등의 추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오랜 성장을 통해 자본이 충분히 축적된 사회에서 어떤 이유로든 성장률이 0이 되었다고 하자. 이런 상황이라면 임금은 전혀 오르지 않을 테지만 재산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어디선가 수익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채를 고려한 순자산이 0에 가까운 사람(국민의 50%를 넘는다)과 이미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보통 상위 10%가 70% 이상을 가지고 있다)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핵심은 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격차(r-g)인데 벨에포크(유럽)나 도금시대(미국)에 이 격차와 자본/소득 비율(β)은 동시에 정점을 찍었다. 300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1914년에서 1970년까지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충격이 자본/소득 비율을 한껏 낮췄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전후의 ‘영광의 30년’이나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가능했던 것이다. 피케티의 장기 통계에 따르면 자본의 수익률은 역사적으로 4~5% 주위에서 움직였는데 현재의 인구성장률 추이를 감안하면 21세기의 경제성장률은 기껏해야 1.5% 남짓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21세기 자본주의는 19세기 말처럼 점점 더 극심한 불평등에 빠져들 것이다. 피케티가 책 곳곳에서 한탄한 대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해방과 농지개혁, 그리고 6·25 전쟁은 지주계급을 사실상 소멸시켰다. 이때 달성한 평등은 고유의 교육열과 함께 한국의 고도성장을 끌어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등이야말로 성장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부는 놀라운 속도로 집중됐고 이제 추격 성장도 한계에 다다랐다. 분배 상태를 그대로 놓고 과거의 고도성장기로 되돌아갈 방법은 없다.피케티의 해법은 자본세를 통한 자산 재분배와 누진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세월호의 비극은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는 데 있다.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은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활로는 없을까? 피케티는 ‘자본세’(우리로 치면 종부세와 종합금융세를 합친 세금)를 처방했다. 즉 r를 g에 수렴하도록 해서 얼마간이라도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만 자본세를 도입하면 국내의 자본이 유출될 것이므로 세계가 동시에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케티도 현재의 세계 정치에 비춰볼 때 이 제안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것을 안다. 해서 그는 유럽연합이나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이 먼저 이 정책을 채택해야 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친다.하지만 아시아가 더 낫지 않을까? 중국에서는 아직 대대적인 부의 집중이 이뤄지지 않았고 성장률은 그 어느 곳보다도 높다. 더구나 공산당의 자본 통제력은 여일하다. 즉 자본세율이 다른 곳보다 낮아도 되고 실행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우리도 함께 자본세를 통한 자산재분배, 누진세를 통한 소득재분배를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의 세월호를 그저 보고만 있을 것인가? 행여 우리 아이만 살릴 길을 찾으려 하지 말기를! 그 길은 어디에도 없으니.* 본 글은 시사IN Live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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