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수렁 속에 있는 세계경제 안녕하세요? 경제기사를 읽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오늘은 좀 긴 숨부터 쉬어 볼까요?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세계금융위기가 드러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인생에서 5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역사로 따지자면 찰나에 불과하지만 요즘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선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우리도 이듬해, 또 외환위기가 닥치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에 떨었고, 끝을 모르고 치솟기만 할 것 같던 집값도 수그러들었지만 그 여파로 이젠 빚이 삶을 억누르는 묵지근한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설상가상으로 EU의 재정위기(이것도 사실은 수출주도와 부채주도의 결합이라는 정책기조가 문제였고 금융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다 터진 사태였습니다만)가 터졌죠. 10%의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경제도 이젠 8%를 달성하느냐 마느냐를 넘어서, 뭔가 잘못되면(이 역시 부동산과 연관된 지방정부의 빚 문제입니다)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 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당연히 우리 수출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스티글리츠가 이 문제에 대해 오랜 만에 입을 열었네요. 1) 미국과 유럽의 어느 누구도 지금 세계가 다시 번영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 나라의 GDP는 위기 전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각각 2500만명 이상으로 실업자가 늘어났다. 2) (국제결제은행 등의) 은행 자본확보율(capital requriement) 요구가 조금 늘어났고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일부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거대한 금융기관의 위험 노출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3) 약탈적이고 차별적인 대출, 낭비적인 신용카드 사업은 여전하고 은행의 거래수수료는 턱없이 높다, 쉽게 말해서 금융기관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과중한 세금을 매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4) 금융기관은 여전히 실패하기엔 너무 크고 상호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관리할 수도 없고 그들이 책임질 수도 없다. 5)
은행들은 정부의 공적 자금을 다 갚았다고 자랑하지만 실은 정부로부터 무이자로 대출을 받아 돈놀이한 결과다. 6) 미국과 EU를 합쳐서 이들이 세계에 끼친 손해는 5조 달러가 넘을 텐데 이런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7) 더구나 미국과 EU는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악화시키는 긴축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8) 부자들은 몰라도 보통 사람에게는 물잔이 3/4이나 비어 있는 상태, 즉 여전히 위기이다. 문제를 해결할 정책 전환을 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위기가 다시 닥칠 수 있다는 거죠.

옐렌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이사장으로 재닛 옐렌이 지명됐습니다. 이미 두 번에 걸쳐 소개해 드렸듯이 오바마 대통령은 내심 로렌스 서머스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학계와, 심지어 월스트리트까지 반대에 나서자 옐렌으로 선회한 겁니다. 옐렌이 지명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연준이 실업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해서 통화금융정책을 결정하리라는 걸 의미하죠. 따라서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양적 완화 축소” 정책은 조금 더 뒤로 미뤄지고 강도도 약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으로 5년 안에 세계경제 위기가 재발했을 때 이를 해결할 책임을 맡고 있는 5개 자리 중 4개를 여성이 차지할지 모른다고 전망했습니다. 세계경제의 중책 5개 자리는 미국 대통령과 연준 의장,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독일 총리입니다. 2011년부터 IMF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지난달 총선에서 승리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그리고 재닛 옐렌까지(물론 의회 인준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만) 세 자리는 이미 여성으로 채워졌죠. 여기에 만일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네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게 됩니다. 여성 지도자가 이끄는 세계 경제는 조금 나아질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들이 극심한 전 세계적 빈부격차에 남성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그리 될 겁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은 여성이 더 뛰어나니까 단순한 “희망 사항”은 아니죠. 물론 이들이 여성이라고 해도 80년대의 마거릿 대처처럼 행동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교착 국면의 미국, 소비세를 인상한 일본 경제의 흐름을 짚다 보면 경제가 결코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의회에 발목 잡혀 있죠. 공화당의 초강경 보수 정파인 티파티 계열의 소장 하원의원 20~40명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당내 지도부까지 밀어붙여 오바마 의료정책의 무력화를 요구하며 내년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다음 주로 잡혀 있는 정부부채 상한선 인상까지 막는다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한겨레 정의길 기자의 해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605843.html?_fr=mt3 한편 일본에서는 10월 1일, 내년 회계 연도(4월)부터 소비세를 현재의 5%에서 8%로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소비세 인상은 가장 확실하게 세수를 늘리는 정책이지만, 소비가 줄어들어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아주 큰 정책이기도 하죠. 전 세계에서 소비세(우리로 치면 부가가치세)를 인상하고 살아남은 정권은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1997년 하시모토 정부가 당시 3%에서 5%로 소비세를 끌어올린 후 경기는 나빠졌었고 정권을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바 있죠. 그런데도 소비세를 인상한 건 경제와 정치, 양 쪽에 대해서 모두 아베총리의 자신이 넘쳐흐른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 이미 GDP의 200%를 넘어선 일본의 국가채무는 장기 금리를 끌어올릴 테고 여차하면 일본의 국가 신인도마저 곤두박질 칠 수 있기 때문에 세수를 늘리든, 아니면 재정지출을 줄이든 어떻게든 채무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경기 위축 가능성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 정부가 선택한 것은 늘어난 세금을 저소득층에게 다시 돌려주는 정책입니다. 증액분 약 5조원 중 3조엔은 기초연금 국고부담재원으로 쓰고 나머지 2조엔 정도의 1/4에 해당하는 5,000억엔은 저소득층 보험료 경감 등에 쓸 방침인 거죠. 즉 전 국민 대상으로 간접세인 소비세를 일괄 징수해서 사회복지와 저소득층 보조에 사용하겠다는 거죠. 이런 미일의 상황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단기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이 채무상한 인상에 실패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더구나 일본의 소비마저 줄어들어 일본 경제가 다시 나빠진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 없겠죠. 요즘 우리 경기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중국경젠데요. 다음 주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박대통령의 균형외교?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박대통령은 TPP 참가에 대해 명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해서 언론은 이를 균형외교라고 평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 현명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TPP는 미국의 “아시아 귀환”(Povot to Asia), 즉 중국 봉쇄의 일환입니다. TPP 협상 국가 중 큰 나라와 이미 FTA를 맺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이 별로 없는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적극 동조할 이유는 없겠죠. 우리의 앞날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전략은 양국 사이에서 캐스팅 보우터가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을 규합하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박대통령의 이번 행보는 옳은 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TPP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외신(니혼 게이자이, 유에스 인사이드 트레이드 등)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부와 청와대는 즉각 부정했지만, 통상법에 규정된 공개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밀실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리 정부의 전통이 된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TPP 참가는 우리의 대동아시아 전략을 내비치는 시금석 역할을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의 뜻을 묻고 이에 따르는 것이 현명할 겁니다. 사기로 판명 난 기초연금 공약 “모든 어르신들께 20만원을 드리겠다”고 광고했던 박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경제의 침체, 재정상의 곤란을 이유로 해서 하위 70%의 노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지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약 포기는 세수부족에 따른 축소가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된 “사기”로 확인되었습니다. 노인 연금을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공약이 처음부터 사기였다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하는 신뢰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건호 박사의 말을 들어 보시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6164.html *본글은 언론 협동조합프레시안에 기고된 글입니다.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기를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