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이 여름철 극장가를 강타했다. 1700만 관객을 넘었다는 <명량>에서, 강동원의 외모만 빛이 난다는 평을 받은 <군도>, 산적들의 해적되기 모험기를 다룬 <해적>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계는 조선시대가 점령했다.
배경은 조선시대 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민란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건국 초기,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안정적 산업구조와 행정시스템 하에서 번영했던 조선이라는 국가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때를 우리는 “삼정의 문란”, “민란의 시대”, “아이를 팔고, 부모를 내다버리고, 굶어죽던 시대”로 배웠다. 당시, 두 차례의 전란으로 어려워진 경제에 국가의 경제-행정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도저히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내몰렸던 민중들이 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동학혁명으로 이어지던 민중의 반란은 외세를 등에 업은 지배층의 매국행위로 좌절되었다.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 비운의 배경인 것이다.
오버랩 되는 삼정의 문란과 박근혜 정부의 줄푸세
삼정의 문란에서 삼정(三政)이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環穀)을 가리키는 것으로 조선시대 국가 경제시스템의 기본 요소이다.
요즘으로 보면 세금과 군에 대한 의무, 대출과 가계부채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조세·이자·경제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조선의 암흑기가 진행되었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조세와 경제정책을 보면 흡사 조선시대 후기를 보는듯한 기시감이 든다.
전정(田政), 즉 조선의 세금제도는 전쟁 중에 토지대장이 불탄 틈을 타 양반이나 지주들이 세금을 내야할 땅을 숨긴 ‘은결(隱結)’이 늘어나면서 국고 수입이 줄자, 이를 다시 백성들에게 전가하면서 망가져갔다. 쓸모없는 땅이나 공터에 세금을 매긴 것도 부족해 돈을 내는 데 드는 운송비, 보충비, 수수료까지 꼼꼼하게 걷어갔다.
그 결과 세금을 내느니 유랑민으로 떠도는 길을 택한 인구가 폭증했다. 부자감세로 대기업과 부유층이 내는 세금은 줄고, 양극화로 인한 복지수요의 증가로 국고가 부족해지자 서민들이 내는 세금을 꼼꼼하게 올리고 있는 현 정부의 작태와 정확히 오버랩된다.
세금을 가장 많이 걷을 수 있는 상한선에 맞춘 4500원 담뱃세 인상에서부터 자동차세, 주민세, 재산세, 그리고 각종 공공요금 등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부자감세는 “줄푸세”로 이어져, 현대판 양반인 대기업과 부자들이 내는 소득세·법인세는 계속해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30년 이상 중소기업 가업상속세는 1천억 원까지 공제, 손주 교육비 1억 원까지 증여세 면제 등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을 목하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군정(軍政), 즉 군에 대한 의무는 어떠했나? 군정은 단순한 국방의 의무가 아니라 나라의 방위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의무 군역과 조세제도이다. 인당 군역을 하거나 군포를 내야하는데 이미 전정의 문란으로 유랑민이 늘면서 군역이나 군포를 낼 백성은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양반은 국방의 의무도 군포도 절대 내지 않았다. 그러자 군정은 취약해져갔고 이로 인해 죽은 사람, 어린아이, 노인, 이웃사람까지 군포를 걷어가니 차라리 도망가 유랑민이 되는 편이 나을 지경이었다.
지금은 다를까? 현재 군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 젊은이들은 “참으면 윤일병, 안 참으면 임병장”이 되고 있지만, 부유층과 정치인들의 아들들은 거의 군대를 가고 않고 있으며, 세금 부담 역시 매우 낮다.
환곡(環穀)은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 후에 받는 것으로 초기엔 백성을 위한 제도였지만 이마저도 부패하면서 백성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무이자로 춘궁기를 날 수 있게 도와주던 복지제도가 이자를 받는 조세수단으로 변한 것이다. 곡식을 의무적으로 빌려가게 하고 높은 고리대를 받는 것도 모자라, 줄 때는 모래나 겨를 섞고 받을 때는 제대로 된 쌀만 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6월 말 현재 1천40조204원으로 1년 전보다 6.2%나 증가했다. 이 중 상당수는 부동산 부양정책에 휘말려 대출로 집을 산 하우스 푸어이거나 전월세비·학자금·생활비 등 기본적 생계유지를 위해 생계대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서민들이다.
은행의 높은 예대금리(빌리는 이자와 예치할 때 이자) 차이와 돈 빌려주는 걸로 돈이 벌리는 허점을 이용, 대출을 지나치게 쉽게 해줬던 관행, 불법에 가까운 제2금융권의 고이자, 카드사의 높은 수수료 등은 가계부채를 심각하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설상가상으로 쐐기를 박았던 “집값이 오를 테니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요지의 9·1부동산대책까지. 환곡으로 인한 부채와 고리대금, 쌀과 노동력 수탈은 조선 후기를 망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는 정녕 모르는 걸까.
민초들의 삶이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의 조세·경제정책은 조선 후기 참혹한 민생파탄을 야기했던 삼정의 문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가 써야하는 돈은 늘어나는데(전쟁의 참화 극복 vs 양극화로 인한 복지수요 증가) 부유층은 돈을 내지 않고(양반과 지주 vs 기업과 고소득층) 서민들은 각종 세금을 내야만 한다. (백골징포, 황구첨정, 인징, 족징 vs 담배세, 자동차세, 주민세, 각종 공공요금) 세금은 오르고 소득은 줄어드니 빚을 내지만(환곡 vs 가계부채) 결국 은행, 부동산 부자들과 지주들의 곳간만 채워줄 뿐이다.
박근혜 정부 정책은 어떤 시대를 소환할까? 삼정의 문란은 심각한 민생파탄으로 민란의 시대를 불러왔다. 동학혁명으로 자생적 혁명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외세와 매국 지배층의 손에 나라를 잃었다.
조선 초기 찬란했던 번영과 안정적 시스템은 금방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던 대한민국의 번영과 그 뒤를 잇는 경제 양극화, 민주주의 위기, 심각한 정부 정책 실패는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박근혜 정부는 조선 후기 ‘민란의 시대’를 반면교사 삼아, 무분별한 정책추진에 앞서 정책이 초래할 미래에 대해 숙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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