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노동자가 용광로에 떨어져 죽음을 당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뉴스를 접하고 문득 한국 사회가 그리스 신화 속 제 자식을 잡아먹는 신 크로노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신탁에서 벗어나고자 자식을 삼키는, 스페인 화가 고야(Francisco de Goya)가 그린 크로노스의 광기어린 얼굴이 지금 한국 사회의 얼굴처럼 느껴진다. 낳고 키운 자식이 제 아비에게 잡아먹히는 참혹한 광경을 반복해서 지켜본 현재의 레아들이 크로노스의 자식 낳기를 포기한다고 한들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자식의 삶을 통째로 삼키는 이 사회의 거대한 서사는 사실 이미 자식들의 삶에 속속들이 침투한 미시적 패륜들의 결정적 재현이다. 즉, 노동자가 노동으로 인해 죽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강탈의 가장 심각한 징후인 것이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불안해하는 인간은 다루기가 쉬워진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지만,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강탈이 지배적이라는 점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자 수는 90,909명, 사망자수는 1,850명이었다. 산업재해로 하루에 다섯 명이 사망하고 약250명은 죽거나 다친 셈이다. 이 자료가 산업재해로 승인된 경우만을 공표한 것이며 포괄하지 않는 사실상의 산재 노동자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사회에서 노동을 하다가 죽고 다치는 일은 일상적 위험에 가깝다.
그림 1은 1982년부터 2014년까지 산업재해자 수 및 사망자 수를 나타낸 것이다. 근로자 수가 1982년 약 346만 명에서 2014년 1,700만 명으로 꾸준히 늘었으므로, 재해율은 외환위기까지 급격하게 감소하다 약간 증가하고 2003년부터 다시 조금씩 감소했다. 그러나 근로자 수가 늘었다고 재해자 수도 느는 것이 당연지사는 아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의 감소세가 그 반증이다. 게다가 사망자 수는 2003년까지도 전반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다 감소하고 있다. 늘어나고 있는 재해 원인은 업무상 질병이다.
업종별로 보면 사망자 수를 제외한 재해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산업은 경제 내 비중이 커진 3차 산업이다. 전산업에서 3,010명이 순증가한데 반해 금융및보험업을 뺀 3차 산업이라고 볼 수 있는 ‘기타의 사업’에서 순증가는 8,038명이었다. 그림 2는 ‘기타의 사업’ 내 중분류로 더 자세히 나타낸 것이다. 일자리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문인 보건및사회복지사업에서 증가폭이 가장 크다. 산업재해의 감소 추세는 한국 사회가 노동하기에 더 안전해졌음에 대한 지표라기보다 경제 및 고용 구조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3차 산업의 특징으로 인해 치명적인 재해(fatal injury)는 줄고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다른 종류의 질병이 늘어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또 다른 물리적 강탈은 노동자의 시간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긴 편이라는 사실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국가라는 위상을 오랜 기간 한국이 독차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림 3에서 보듯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한국의 노동시간은 전반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약 300시간 길다.
이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한국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2004년에 주40시간제를 실시하게 되었고 주40시간제는 다수의 OECD 국가들의 노동시간 표준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한 주에 40시간씩 일 년 간 꼬박 일을 한다면 연간 노동시간은 약 2,086시간이다. 한국의 2014년 연간 평균 노동시간 2,124시간보다 38시간 짧고 OECD 평균인 1770시간보다 316시간 긴 시간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OECD 국가들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더 짧은 탓일까? 주간 노동시간이 40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OECD 평균 64%정도(한국은 약 80%)이므로 그렇게 간단히 말 할 수는 없는 듯하다. 물론 한국의 단시간 노동자 비중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낮다는 점이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노동시간의 단위 환산을 통해 생각보다 쉽게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한 주 40시간씩 1년 내내 일을 할 때의 2,086시간 보다 1주 정도 길고 OECD 평균은 8주 가까이 짧다. 산술적으로 한국에는 주4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을 뿐더러 그들은 다른 OECD 국가의 노동자들이 평균적으로 누리는 휴일을 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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