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설치요? 학부모 모임 때 잠깐 얘기했는데 당연히 안할 거예요. 내년에 신입부모가 들어오면 장담은 못할 것 같아요”

‘어린이집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 의무화’가 담긴 영유아보육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나오자 어린이집마다 술렁이고 있다. 이번 안대로라면 보육실, 놀이실, 놀이터 및 식당, 강당 등에 각각 1대씩은 설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화장실과 원장실, 주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CCTV 설치는 필수라는 얘기다. 한 가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학부모 전원이 동의하면 CCTV를 달지 않아도 된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조차 올해는 넘어가겠는데, 앞으로 신입부모들의 불신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산 넘어 산’이라고 한다.

지금 같이 격앙된 분위기에서 대다수 어린이집은 CCTV설치 의무화의 길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4월 국회에서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최근에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나왔고, 7월말까지 현장의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이 안대로 9월 국회 심의과정을 거치면 올 연말 중순까지는 CCTV 설치를 싫든 좋든 완료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4만 3742개의 어린이집이 있고, 31만 1817명의 보육교사가 일하고 있다(2014년 연말 기준). 그렇다면 이대로 전국 어린이집 교실에 CCTV를 달면 아동학대는 멈출 수 있다는 건가? 다시 말해 한 어린이집 교사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국 어린이집 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고, CCTV로 감시하면 ‘아동학대’는 막을 수 있다고 ‘믿느냐’고 되묻고 싶다.

 

쉴 시간, 쉴 공간의무화가 먼저

아마도 더 큰 부작용을 걱정해야할 지도 모른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쉴 시간과 쉴 공간’을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보육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시행규칙 어디에도 교사가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먼저 보장하겠다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교실 안 CCTV 설치 이전에 담보되어야할 전제 조건이며, 교사들의 인권 문제와도 직결된 문제다. 보육과 휴식이 동시에 이뤄지는 교실 안에서 교사의 모습, 행동 등 사생활이 여과 없이 녹화되는데, 이를 노동자로서 받아들이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직장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CCTV로 일수거일투족이 녹화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쉽게 와 닿을 현실이다.

갑작스럽게 교실 안으로 들어온 CCTV가 정말 ‘아동 학대를 막을 최소한의 조치’ 라고 교사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울 지역 학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CCTV 설치에 대해 학부모들은 ‘아동의 안전’에 이어 ‘부모의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교사들은 ‘문제상황, 식별, 검거, 증거확보’를 위해서라도 인식하고 있다(김은하·손수민, “어린이집 CCTV에 대한 부모와 교사의 차이”, 한국아동교육학회, 2015.).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교사들도 똑같이 느낀 결과로 보인다.

아동학대는 어린이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치원, 학교 등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책임지는 모든 교사들과 관련되어 있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대전제를 무너뜨리고, 교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는 ‘CCTV 의무화’ 정책 수단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외국에서도 방범용으로 제한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의 CCTV 의무설치를 명문화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동학대가 빈번한 나라에서조차 교사나 아동의 사생활침해를 우려해 매우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동학대 방지에 효과적인 조건들을 정리해보면 1) 국가나 사회, 가정에서 폭력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거나, 2)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법적인 대응이 신속하고, 3)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계획이 사전에 세워져 있으며, 4) 교사와 교육에 대한 신뢰도 높은 경우로 보인다. 이러한 요건을 갖춘 나라들에서는 굳이 CCTV에 아이의 안전을 맡기지 않는다(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 기획기사, 2015.2.25. 정리).

올 초에 밝혀진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학대 영상으로 인해 학부모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관계자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정부의 대응은 너무도 편향되어 있다. ‘아이의 안전’과 ‘부모의 알권리’만 내세워 CCTV 설치의 ‘선택권’을 주기도 않고 먼저 ‘의무화’시켰다. 반면에 이로 인해 교사들의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내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은 물론 노동자의 근로기본권을 크게 위협 당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는 앞으로 당사자들이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할 우려마저 높이고 있다.

최근 대법원 판결 역시 교사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 CCTV를 설치했으나, 이에 반발한 교사가 CCTV를 비닐봉지로 막아, 해당 사안에 대한 잘잘못이 법원 판결에 맡겨진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CCTV를 통해 확보되는 영유아의 이익이 교사들이 일방적인 촬영대상이 되지 않을 이익에 무조건 우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판결의 선례를 남겼다(<연합뉴스TV> “교사 동의 없이 설치된 CCTV…훼손해도 무죄”, 2015.6.29.).

 

교사들 회의감에 현장 떠나

정부는 교사에게 덧씌워진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풀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CCTV 설치 의무화로, 영유아와 부대끼며 지내야하는 교사들에게 근무시간 내내 의식해야할 스트레스 하나를 더 얹어준 꼴이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는 시설장과 학부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에서 CCTV를 악용하는 피해사례도 자주 들려온다. 서울형어린이집을 도입하면서 CCTV의 인터넷 중계가 한창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에 중계화면을 보던 원장이나 학부모가 시시때때로 업무와 행동을 지시하는가 하면, 교사의 태도를 문제 삼거나, 업무가 끝난 후에 저장된 영상을 돌려보며 평가서를 작성하라는 등 교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보육시설 CCTV의 IPTV 중계 관련 토론회”, 2010.10.).

편향된 입장만 반영한 ‘CCTV설치 의무화’로 교사들은 하나둘 어린이집 현장을 떠나고 있다. CCTV 의무설치는 사후 사건의 증거자료는 될 수 있을지언정 예방책은 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CCTV의 사각지대 문제도 존재한다. 설치비용과 촬영내용의 보관에 따라 비용 부담이 큰데도, 정부는 지자체에 이 비용마저 떠넘길 우려마저 높다(<뉴시스>, “충북 지자체 어린이집 CCTV 설치비용 확보 ‘고심’”, 2015.6.22.). 관리 감독과 관련해 원장에게 재량권을 모두 넘기고, 공적 책임은 시행규칙에 명시하지 않았다. 논란이 되는 교사의 인권침해는 물론, 아동의 인권침해 위법성도 해결되지 못한 채 CCTV 의무화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근시안적 대응일 뿐이다.

정부는 CCTV 설치 의무화를 폐기하고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 동시에 교사의 쉴 시간과 쉴 공간부터 의무화하고, 어린이집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할 근본 방안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옳다. 정부가 정말 아동 학대를 멈출 생각이라면, 아이와 밀접하게 관계하는 보육교사의 장시간 저임금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질 높은 보육을 담보하기 위해 교사 대 아동비율을 낮추는 등의 노력과 함께, 국공립어린이집을 더 확충하겠다는 계획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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