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번번이 빗나가는 예상으로 인해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 곤혹을 치르고 있다. 판문점 회담 이후 남한 내 여론 지형 또한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판문점 회담 이전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78.3%에 이르렀다. 신뢰한다고 답한 경우는 14.7%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판문점 회담 이후 북한을 두고 신뢰 64.7%, 불신, 28.3%로 완전 뒤집어졌다. 변화는 모든 지역과 세대에서 고르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60대 이상에서도 북한에 대한 신뢰가 17.2%에서 58.%로 껑충 뛰었다. 보수적인 TK지역 또한 35%p 상승했다.
통일에 상대적으로 무관심으로 보이던 20대 사이에서 평양냉면 소비가 99% 급증하는 등 이전에 없던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겨레>는 2030세대 안에서 일어난 긍정적(?) 변화를 전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남과 북이 분단된 지 오래여서 문화의 차이가 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특히 김 위원장에 대해선 ‘독재’, ‘불통’ 등 편견이 있었는데 행동이나 말투를 직접 보니 역시 동포, 민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통일이란 내게 실현 가능성 없는 얘기였는데, 이젠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 국토대장정을 할 때, 강원도 고성에서 끝낸 적이 있는데 언젠가 북한 개마고원까지 가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나는 이미 군 복무를 하고 있지만 ‘내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북한의 얘기를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정상회담을 본 뒤 나뿐 아니라 다른 군인 친구들 사이에도 통일과 모병제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가 커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밖에도 경협 추진 소식에 평화가 돈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변화의 방향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비슷함 속에 숨어 있는 상이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똑 같은 현상을 놓고 세대 간 적지 않은 시선 차이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3일 <중앙일보>의 한 칼럼은 통일에 대한 20대의 시각을 전하고 있다. 비록 판문점 회담 이전 시기 이야기이지만 귀 기울여할 지점이 많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언제 봤다고 우리민족끼리냐? 같은 민족이라고 함께 살자는 주장은 동화처럼 들린다.” “통일은 소원이 아니라 선택이다. 헤어진 부부가 재결합할 때는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이다. 통일 역시 그런 전제가 있어야 한다.”, “조부모 세대가 만든 분단인데 왜 우리 젊은 세대가 통일비용을 떠안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20대 반응 중에는 “이러다가 정말 통일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다. 통일의 가능성을 불안한 시선으로 대하고 있다. 이런 시선이 20대 안에 어느 정도 비중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20대 안에 이런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이른바 86세대와 지금의 젊은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점 하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86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 성공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86세대로 하여금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도록 했다.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곧 보다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젊은 세대는 이 점에서 크게 다를 수 있다. 젊은 세대 뇌리에 새겨진 가장 큰 변화는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일어났다. 당시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환경은 좋아지기보다 더욱 나빠지는 방향으로 흘렀다. 이런 경험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변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도록 만들 여지가 많다. 통일이라는 거대란 변화를 대하는 시각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연관된 조사 결과가 있다. 서강대 연구팀이 1979년부터 2010년까지 30년을 두고 세 차례 실시한 조사에서 ‘과거와 미래 중 버릴 것’을 묻는 말에 1979년 89%, 1998년 92%, 2010년 88%가 미래보다 과거를 버린다고 응답했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런데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세 차례 실시한 조사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2013년과 2014년엔 40%였다가 2015년 47%로 상승했다. 특히 2030세대에서 미래를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뚜렷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경험은 서로 다른 시선을 낳기 마련이다. 그런 지점에서 세대 간 차이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차이를 넘어 원활한 세대 협력을 이루려면 소통을 위한 검질긴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깊이 새겨야할 지점이다. 내 생각은 무조건 옳다는 오만과 독선, 불통은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근원이다. 너무 당연하지만 거듭 거듭 강조되어야할 이야기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