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당시 IBM 임원진은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얼마 후 인터넷을 접하기는 했으나 그걸 갖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여전히 네트워크보다는 독립적 PC에 무게 중심으로 두고 있었다. 스탠포드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들이 발명한 인터넷 검색엔진 특허권을 사줄 사람들을 물색했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둘은 1998년 구글이라는 이름의 검색 전문업체를 창업했다.
1990년대 인터넷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들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30년 동안 그 같은 큼직한 변화가 적어도 6개 정도가 우리를 스쳐갔다.
첫째 냉전 체제 해체.
초강대국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 붕괴로부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대결을 포기하고 화해하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냉전 체제 해체와 함께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일극 체제가 수립되었다. 중국이 부상해 G2체제가 수립된 건 그 다음이었다.
둘째 디지털 문명에 기초한 3차 산업혁명.
정보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지식을 생산에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 문명이 꽃을 피웠다. ICT가 모든 산업 기반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3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셋째 신자유주의 공세와 외환위기.
미국 주도 아래 금융자본 이익 극대화에 맞게 경제 환경을 최적화한 신자유주의가 일거에 세계를 점령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넷째 한국 10대 경제 대국 진입.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민주화 세력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 전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2000년대 접어들어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다.
다섯째 저출산 초고령화 시대 도래.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반면 평균 수명은 급속히 늘어나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전통적 복지 체계 유지가 힘들어졌다.
여섯째 새로운 세대의 출현.
변화된 환경의 종합적 결과로서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전혀 새로운 세대가 출현했다. 새로운 세대는 수평지향성이 매우 강했으며 권위주의에 입각한 수직적 위계질서와 정면충돌을 일으켰다. 촛불집회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새로운 문화양식이었다.
일부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하나 같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기에 충분할 정도의 거대한 변화들이었다.
민주화운동이 승리의 봉우리로 올라섰던 1987년으로 되돌아보자. 과연 그 시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6가지 현상 중 내 머리로 예상했던 게 있었던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예상을 뛰어넘어 일어난 현상들이었다. 새로운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그 맥락을 이해하기 바빴고, 상당 정도는 의미조차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넘어가야 했다. 그렇게 허둥대다보니 어느새 30년 세월이 흘렀다.
지나온 경험은 사람이 앞날을 예측하는데서 지극히 무력할 뿐만 아니라 눈앞에 벌어지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알려준다. 앞으로 30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다투어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갈 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진짜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자신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아무 고민 없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다가 그때 가서 판단하자는 건가? 아니다. 미래가 예측 불가일수록 더욱 움켜쥐고 있어야할 그 무엇이 있다.
1987년 6월민주항쟁 승리 이후로부터 지난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예기치 않았던 숱한 변화와 곡절을 겪었지만 한 가지 놓치지 않고 이루어낸 게 있었다. 민주화를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힌 것이다. 마지막 순간 민주주의가 도둑질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촛불시민혁명으로 훌륭히 지켜냈다.
우리 국민은 지난 30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갖 풍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한 시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 30년은 ‘민주 시대 30년’이었다. 앞으로 30년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가 공유해야할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새해 벽두에 던지는 큰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