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기세등등하던 신자유주의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러자 진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신자유주의 이전 자본주의 황금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황금기를 지배하던 케인스의 이론도 다시 주목받았다. ‘포스트케인즈언’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신자유주의가 말썽을 피우면서 더 이상 해답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진 시점에서 한 때 잘 나갔던 시절이 떠올려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그 당시 처방을 다시금 끄집어내면 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경제학자들이 이 지점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각자 이론 틀에 갇혀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 그 결과는 전혀 다른 체질의 사람에게 동일한 처방을 내림으로써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일 수 있다.

크게 달라진 환경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과 북미지역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먼저 오랫동안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하던 자유방임주의가 완전 후퇴했다. 1929년 대공황은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자 했던 자유방임주의 교리를 일거에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대공황은 시장 기능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그 반작용으로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국가 개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모두 대공황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생존 능력을 과시하면서 동유럽 일원으로 판도를 확대시킨 소련 사회주의권은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끊었던 유일한 나라인 소련이 대공황으로부터 안전하였다는 사실은 국가의 시장 개입과 통제에 대한 믿음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 주었다. 대공황 시기 소련이 사회주의 공업화를 통해 극적인 약진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에 보다 확실한 종지부를 찍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유방임주의 관점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국가 주도 ‘계획’과 ‘개입’, ‘통제’가 강력한 설득력을 얻었다.

팽창하는 소련의 존재는 과거에는 그 여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계급대타협을 강제하였다. 자본주의 입장에서 볼 때 동독마저 사회주의권에 편입된 상황에서 사회주의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척에 있는 그 무엇이었다. 선진 자본주의 역시 언제 사회주의 혁명이 집어삼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혁명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적극적 타협을 통해 노동자 계급을 체제 안에 묶어두는 것뿐이었다. 그로부터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계급대타협은 자연스런 흐름을 탔다. 먼 훗날 소련 사회주의권 붕괴로 사회주의에 대한 냉소가 팽배한 상황에서 일부 논자들이 사회주의가 총량적 관점에서 인류 사회 진보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 지형 교체는 이러한 변화를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 노동대중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뚜렷하게 좌파적 색채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서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 계열 좌파 정당들이 대거 집권에 성공했다. 영국 노동대중 역시 전쟁 영웅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을 버리고 노동당 정부를 선택했다. 이로써 좌파 정당들이 강조해 온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이 현실화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황금기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

1950년에서 1960년대 말까지 대략 20여 년에 걸쳐 지본주의 황금기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공산품 생산량은 4배로 늘었으며 공산품 세계 교역량은 10배로 확대되었다. 일찍이 찾아보기 힘들었던 놀라운 팽창의 대부분은 선진 자본주의의 번영에 따른 것이었다. 전 세계 생산고의 4분의 3과 공산품 수출액 80%를 미국, 서유럽,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차지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서독과 일본의 성장률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서독의 경우 1950년에서 1960년에 이르는 동안 연평균 8.6% 성장했고 국민총생산은 10년 새 두 배로 성장했다.

도대체 황금기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무엇인가. 이를 둘러싼 학자들 의견은 분분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성장 동력이 왕성하게 살아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성장 동력으로서는 신산업 출현, 생산성 증가, 교역 확대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자본주의 황금기는 바로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동했던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 군사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은 종전과 함께 민간 산업으로 이전되었다. 그에 따라 전기전자, 화학, 기계 등 분야에서 신산업이 연속적으로 창출되었다. 포드사에서 처음 확립된 테일러-포드 시스템은 종전과 함께 거의 모든 산업으로 일반화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다. 달러가 기축 통화로 확립되고 GATT 체제 수립되면서 국제 교역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학자들 사이에서 덜 주목받았지만 자본주의 황금기를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요소로서 공급과 수요 간 균형 회복을 들 수 있다. 자본의 부단한 축적과 낮은 수준의 노동자 임금은 공급과 수요 사이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러한 불균형은 자본의 과잉 축적을 초래하면서 성장을 억제한다. 급기야 1929년처럼 파멸적인 대공황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과잉 축적된 자본이 대거 파괴됨에 따라 불균형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안정적 성장이 가능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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